[뉴스워치= 칼럼] “최강 미모로 손꼽히는 걸그룹 멤버 A와 모 그룹 멤버 C가 교제하는 모습이 누차 목격되었다는 기사가 증권가 찌라시에 돌고 있다”. 항간에 떠도는 연예인 관련 ‘∽카더라’ 뉴스의 진원지로 지목되는 「증권가 찌라시」. 2014년에 개봉된 〈찌라시:위험한 소문〉은 영화 제목처럼 「증권가 찌라시」로 루머에 휘말린 여배우가 안타깝게 목숨을 잃는 이야기입니다.

‘찌라시(チラシ, ちらし)’는 딱 봐도 일본어이지만, 일본에서는 루머라는 의미로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찌라시’는 ‘1. 여기저기 흩어지다, 따로따로 흩어지게 하다. 2. 마음을 흐트러트리다, 마음이 어수선하다. 3. 어지럽히다. 4. 말을 퍼트리다.’ 등의 의미인 일본어 동사, ‘찌라수(散らす, ちらす)’의 명사형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찌라시’를 루머라는 의미로 사용하게 된 것은 ‘찌라수(散らす)’에 ‘소문을 내다’라는 뜻이 들어있어서일 겁니다.

일본에서 가타카나로 표기되는 ‘찌라시(チラシ)’는 홍보를 위해 만들어지는 광고지를 말합니다. 일본에서의 ‘찌라시’ 제작 역사는 에도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에는 ‘찌라시’가 아니라 ‘히키후다(引札, ひきふだ)’라고 불렀습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히쿠(引)’가 ‘잡아당긴다.’, ‘후다’(札)가 ‘문서, 공문서’ 등의 의미이니 손님을 끌어당긴다고 해서 광고지라는 의미로 사용된 게 아닌가 합니다. 기록에 의하면 1683년, 미츠이에치고(三井越後屋)라는 기모노 집이 니혼바시(日本橋)로 옮겨서 재개방한다며 화려한 색채의 목판화(浮世絵) 광고지를 돌렸습니다. 이게 일본 최초의 ‘히키후다’일 겁니다.

이 기모노 가게를 오늘날 일본을 대표하는 미쓰코시 백화점으로 성장하는 계기를 만들어준 이 광고지에는 당시 사람들의 상식을 뒤집는 “呉服物現金安売無掛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기모노를 현금으로 사면 싸게 해준다는 의미입니다’. 당시 돈 많은 귀족이나 무사 계급은 물건 구매비를 바로 지급하지 않고 1년 치를 모아서 지급했습니다. 부유층은 물건값을 흥정하거나 물어보는 것이 천박하다고 생각했고, 상인들도 돈을 달라고 하기가 불편하니 한꺼번에 받은 거죠. 그런데 현금을 내면 싸게 해준다는 이 파격적인 공약은 엄청난 히트를 합니다. 그것이 오늘날 미쓰코시 백화점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당시에는 대량으로 히키후다를 찍어놓고 상호는 공백으로 두었다고 합니다. 일종의 기획제작인 셈이죠. 광고 속 그림과 광고내용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광고지 속 미인들은 당대를 풍미하던 게이샤들이었으니 받는 사람도 기분은 좋았을 겁니다. 광고의 효과를 본 상점들은 광고지에 열을 올리기 시작합니다. 기록에는 어떤 기모노 집은 〈창고정리(蔵ざらえ,くらざらえ)〉라는 한다면서 광고지를 5만 장 찍어 돌렸다고 하는데, 당시 도쿄 가옥이 7만 채 정도였다고 하니 기모노를 사 입는 거의 모든 여성이 이 ‘찌라시’를 봤다는 거죠. 에도시대의 ‘찌라시’에는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많이 등장합니다.

위의 그림은 사실 광고지는 아닙니다. 혹사이가 그린 《후지 36경(富嶽三十六景)》인데 그림에는 에치고(越後)라는 글자와 현금이라는 글자가 또렷하게 보입니다. 그림 속 PPL인거죠. 《후지 36경(富嶽三十六景)》은 책으로 만들어져 어마어마하게 팔렸으니 이보다 좋은 광고는 없었을 겁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연말이면 어김없이 은행이나 기업, 학교 등이 달력을 만들어 돌립니다. 이런 방법은 에도시대에 고안된 것으로 이걸 히키후다 고요미(引札暦, ひきふだこよみ)라고 합니다. 달력을 넣으면 광고지를 버리지 않고 붙여놓고 사용할 테니까 광고주로서는 오랫동안 광고할 수 있는 굿 아이디어인 셈이죠. 예전에는 미용실이나 사우나, 식당에 가면 광고가 붙어있는 거울이 있었는데, 대중목욕탕이 유행한 에도시대에 등장한 광고방식이라는군요. 자기 PR이 넘쳐나는 시대, 우리는 어떻게 자신을 광고해야 할까요. 살짝 고민되는군요.

최유경 교수
최유경 교수

◆ 프로필

◇ 이화여자대학 졸업

◇ 오사카부립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 서울대, 성균관대 등 다수대학에서 강의

◇ 서울대인문학연구원, 명지대 연구교수, 학술교수

※ 외부인사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뉴스워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