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칼럼] 8월 29일은 경술국치일이다. 반민족행위자 이완용과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8월 22일에 체결한 '한국병합에 관한 조약'이 1910년 8월 29일 공표되고, 대한제국은 이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이로부터 35년에 걸친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었다. 이 35년이라는, 강산이 두 번 반이 바뀌는 긴 기간 동안 한국인의 조상들은 일본인으로 살아야 했다.

그리고 1945년 8월 15일에야, 일본의 패전으로 한국은 독립하였다. 독립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가운데, 1943년 12월 1일, 중국의 장제스는 연합국 대표를 설득하여 '한국 인민의 노예 상태를 유념해 적절한 시기에 자유와 독립을 결의한다.'라고 명시한, 특별조항을 담은 카이로선언이 공포되었고 이에 따라 한국은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당연히 식민지 기간, 일본에 충성하고 조국과 동포에게 만행을 저지른 일부 친일파의 친일 행적이 문제가 되어 1948년 반민특위가 구성되었다. 그러나 툭위는 당시 실권을 잡은 친일파에 의해 무산되었다. 국회 프락치 사건으로 친일파 척결의 주도세력이었던 소장파의원들을 간첩혐의로 체포함으로써 반민특위를 위축시켰고, 특위 산하 특경대를 경찰이 습격하여 반민특위의 폐기법안을 통과시키게 함으로써 민족반역자에 대한 처벌이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후 친일파 청산은 우리 민족의 과제가 되었다.

그리고 독립을 쟁취한 지 어언 77년이 지났다. 문민정부 이후만 따져도 수십 년간 친일파 청산을 부르짖었다. 정권교체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런데도 아직도 누가 친일파라며 새로운 사실을 찾아내고 이를 근거로 후손을 공격하는 일은 반복되고 있다. 친일파의 자손이라느니, 묻힌 친일파라느니, 새로이 친일 행적이 나타났다느니 하면서 일부 인사들이 거론되었고 정치적인 쟁점이 되어 등장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기간에 일정 이상의 직위에 있었다면 친일파라는 주장도 나왔다.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한 친일파 청산이 정치공세로 둔갑하여 정적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전락, 도리어 민족정기를 훼손하는 일도 있었다.

지난 대선에도 더불어민주당의 모 의원은 국민의힘의 한 대선후보의 조부를 두고 "만주군이 항일투사로 둔갑한 것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애국가를 둘러싼 친일파 논쟁도 단골로 등장하는 시빗거리 중의 하나다. 애국가의 ‘동해 물과 백두산이’ 부분 곡조가 불가리아 민요를 그대로 베꼈다는 것은 이미 56년 전에 불거졌던 이야기인데 당시 광복회 회장이라는 이가 다시 주장하는 바람에 화제가 된 적도 있었다. 그 인사는 자신의 어머니를 김구 선생보다 더 비중 있게 그려 사람들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이승만, 박정희, 백선엽 등등… 국립묘지에 안장한, 그들이 주장하는 친일파의 파묘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간행한 ‘친일인명사전’에 많은 친일파가 수록되어 있어 그간 친일파의 판단기준이 되어왔다, 그런데 보도를 보니 여기에 수록된 문화 예술 쪽 인사는 문학 41명, 음악 무용 43명, 미술 26명, 연극 영화 64명, 교육 학술 62명, 언론 출판 44명 등인데, 이 중에는 학창시절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쟁쟁한 분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다. 훌륭한 문화인 예술가라고 알고 있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친일파, 민족반역자로 바뀌었다.

그런데 변절자 처리에 있어 우리가 모범으로 삼는 프랑스는 1940년부터 5년이라는 기간 동안 국권을 상실하였다. 비교적 단기간의 일이라 변절자를 색출하고 처벌도 쉬웠다. 대상도 명확하고 비난 가능성도 컸다. 그런데 한국은 35년간이라는 기간을 일본의 강제점령하에 있었다. 그 기나긴 기간, 국가는 전혀 국민을 보호하지 못했다. 홍난파는 1898년생이다. 12살 때 국가가 식민지가 되었다. 그리고 그가 사망한 날까지 그의 국적은 일본이었다. 김소월은 1902년생으로 그가 8살 때 국적이 일본이 되었다. 많은 사람이 어릴 때부터 자신이 일본인으로 생각하고 살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이들에 대한 비난 가능성은 희박해진다. 게다가 1930년대 일본 제국주의는 민족말살정책을 실시했다. 파친코라는 드라마에서 보듯, 이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조선인으로서의 감정을 이야기할 수조차 없었다.

아리랑의 주인공인 김산의 본명은 장지락이다. 누구도 이분의 항일 운동을 부정하지 못한다. 그러한 그도 친일파로 몰렸다. 1938년 산간닝변구보안처[陝甘寧邊區保安處]에 의해 반역자, 일본 스파이, 트로츠키주의자로 낙인찍혀 비밀리에 처형을 당하였다.

박성호 동덕여대교수
박성호 동덕여대교수

친일청산은 우리가 올바른 국가관을 갖는 데 필요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친일청산을 다른 목적을 위해 악용하는 것은 정말 좋지 못하다. 조선이 일본에 의해 식민지화된 것은 이러한 정쟁 때문이었다. 정쟁이라면 열과 성을 다해 몰입하는 행위야말로 민족과 국가의 앞날을 가로막는 매국노의 행위라 생각한다. 인간을 평할 때 공과를 따져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평가하면 족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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