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칼럼] 드디어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는 8월입니다. 요즘처럼 에어컨이 대중화되기 이전에는 여름만 되면 방송사에서 앞다투어 소위 ‘납량특집’ 방송을 내보냈습니다. KBS의 ‘전설의 고향’에서는 ‘납량특집’ 방송으로 어김없이 에서 구미호, 처녀 귀신 등을 방영하곤 했지요, 때론 손가락 사이로 보인 TV 속 무서운 장면이 생각나 악몽을 꾸기도 했었습니다. 바로 요즘 10∼20대에게는 매우 생소한 단어인, ‘납량특집’으로 ‘납량’하면 등골이 오싹한, 무서운 이야기라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나가이 키오나가(鳥居清長), 『오카와바타유스즈미(大川端夕涼み,おおかわばたゆうすずみ)』 스미다강(隅田川)에서 더위를 식히다.
나가이 키오나가(鳥居清長), 『오카와바타유스즈미(大川端夕涼み,おおかわばたゆうすずみ)』 스미다강(隅田川)에서 더위를 식히다.

발음하기도 어려운 '납량특집'은 도대체 무슨 뜻이고 언제부터 사용한 말일까요? 일본말로 노료(のうりょう)라고 하는 납량(納涼)은 거두어들일 납(納)에, 마시면 '시원한' 느낌을 주는 청량음료의 양에도 사용하는 서늘할 량(涼) 자를 씁니다. 더위를 집어넣고 시원한 것을 끌어들인다, 즉 '서늘함을 들여온다.'라는 뜻으로 무서운 이야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말입니다.

‘납량(納涼)’은 명치 시대에 만들어진 조어는 아니지만, 근대이전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던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1880년경부터 ‘납량(納涼)’이라는 말이 조금씩 등장하기 시작하더니 1900년경부터는 소위 하이칼라한 단어로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더위를 식힌다는 의미의 유스즈미(夕涼み) 보다 ‘납량(納涼)’이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되게 되었습니다. 피서는 더위를 피하고자 시원한 곳으로 떠나는 거지만, 납량은 어딘가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집 가까운 곳에서 더위를 피하는 거죠. 그런 장소로 사용되었던 것이 백화점이나 카페, 영화관, 아니면 조그만 강물을 끼고 있는 선술집이었습니다.

원래 습도가 높아 후덥지근한 일본은 특히나 여름을 보내는 것이 힘이 듭니다. 그래서 그런지 예로부터 여름을 보내는 다양한 풍물이 발전하였습니다. 주로 여름용 기모노인 유카타(浴衣. ゆかた)를 입고 부채를 들고 저녁 바람을 쐬곤 했는데 그것을 유스즈미(夕涼み)라고 했습니다. 주변에 강이 있다면 강물에 발을 담그거나 강바람을 쏘이는 가와스즈키(川涼み)를 하며 더위를 식혔습니다. 그래서 에도시대 서민들의 유스즈미(夕涼み) 풍속을 그린 우키요에(浮世絵)는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위의 그림에서 유카타를 입은 여성들이 들고 있는 동그란 부채는 우치와(団扇, うちわ)라고 하는데 서양인들은 이를 일본부채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부채이죠.

오늘날에도 오사카, 도쿄, 우즈, 히로시마 등 커다란 강이 있는 도시에서는, 어김없이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여름날 저녁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 불꽃놀이가 벌어집니다. 그리고 강에는 유람선도 띄웠습니다. 이런 풍습은 에도시대부터 이어져 온 것으로 올해는 전국에서 코로나로 지친 시민들을 위해 불꽃놀이에 시원한 음료, 유람선, 공연 등이 펼쳐지는 납량 제, 즉 노료사이(納涼祭)가 개최된다고 합니다. 도쿄만(東京湾)에서도 3년 만에 7월1일부터 9월11일까지 납량선(納涼船)을 띄운다고 합니다. 코로나 확산 새로 어디 멀리 가는 것이 조심스러워, 저도 그냥 집에서 에어컨을 틀고 맛있는 맥주 한잔하며 납량을 즐겨볼까 합니다.

최유경 교수
최유경 교수

◆ 프로필

◇ 이화여자대학 졸업

◇ 오사카부립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 서울대, 성균관대 등 다수대학에서 강의

◇ 서울대인문학연구원, 명지대 연구교수, 학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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