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칼럼] 많은 의뢰인들이 변호사를 찾을 때 승소율을 궁금해합니다. 저도 승소율이 어떻게 되냐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그럴 때 저는 이렇게 답을 합니다.

“변호사는 지는 사건도 해야 할 때가 있다. 오히려 다들 안 된다는 사건에 대해 패소 가능성을 충분히 설명하되 승소를 위한 대안 역시 아울러 제시하는 변호사가 더 유능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 변호사라면 오히려 패소할 사건을 더 많이 수행할 수도 있다. 그 뿐만 아니라 당사자도 패소할 것을 알면서도 시간을 끄는 것 자체가 이익이므로 그 시간을 벌기 위해서 변호사를 선임하는 경우도 있다. 이 때 변호사가 패소 가능성을 이유로 수임을 거절 할 수는 없지 않는가. 그렇기 때문에 승소율을 계산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다만 이렇게만 얘기하면 의뢰인의 입장에서는 납득이 안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변호사가 질 가능성이 높은 사건을 맡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바로 패소 가능성에 대한 설명이고, 둘째는 그 상황에 맞는 적정한 변호사 보수의 제시입니다.

저는 지금껏 패소 가능성에 대한 설명을 잘해왔다고 생각합니다. 비단 저뿐만이 아니라 대다수의 변호사는 패소 가능성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합니다. 위임사무는 결과에 책임지는 사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의뢰인들은 변호사에게 결과를 기대하고, 변호사 역시 ‘돈값’을 하기 위해서는 결과에 책임감을 갖기 마련이지요. 그렇기에 결국 설명은 많이 보수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기적 같이 승소가 계속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당사자가 다른 사건들이 연달아 이기는 경우도 있지만 유독 특정 의뢰인의 사건이 연달아 승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은 후자의 얘기를 합니다.

첫 시작은 언제나 사건에 대한 보수적인 시각을 제시하며 시작합니다. 그런데 한 의뢰인과의 사건이 계속 이기는 상황이 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저야 일을 하는 입장이니 여전히 보수적인 시각을 유지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의뢰인은 처음과 많이 달라집니다. 늘 이겨왔으니 이번에도 이기지 않겠냐. 패소 가능성에 대한 설명은 의례 하는 일에 불과하고, 실제로 이번에도 사건을 맡겠다고 한 이유는 변호사가 볼 때 이길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 아니겠냐. 이런 생각을 하는 듯 합니다.

결국 영원할 수는 없습니다. 언젠가는 패소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이미 사건이 계속되는 의뢰인의 경우 항상 분쟁을 달고 다니는 자이므로, 항상 본인에게 유리한 상황만을 맞이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이때가 의뢰인과의 관계에서 가장 위기입니다. 의뢰인은 깊은 실망감으로 변호사를 대합니다. 이길 수 있었던 것 아니냐고 묻습니다. 변호사 역시 100% 진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므로 일을 시작한 것은 맞습니다. 허나 결과에 더 말을 할 수 없습니다.

항소 가능성을 논의합니다. 사정이 바뀌어 항소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변호사가 이룬 과거의 공은 논해지지 않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물음이 됩니다.

이 과정을 잘 극복하면 오히려 일이 무난히 지나갑니다. 의뢰인도 변호사에 대해 지나친 기대를 갖기 보다는 변호사를 도구로 잘 활용할 줄 알게 되고, 변호사도 계속 조심성을 갖고 일을 하게 되며, 서로 감정 소모 없이 정말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계속된 승소가 독이 되어, 많은 경우에 첫 패소의 순간을 쉽게 넘어가지 못합니다. 의뢰인은 당연히 변호사에게 항의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항의의 내용은 결국 변호사의 탓으로 귀결됩니다. 이길 수 있었으므로 사건을 맡은 것 아니냐. 네가 잘못해서 진 것 아니냐. 이렇게 됩니다.

변호사는 그동안의 공이 모두 무시되는 것 같아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패소 가능성을 충분히 설명했다고 여길 때는 더욱 그러합니다. 엄연히 지금의 패소와 이전의 승소는 별개지만 변호사 역시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경우를 맞이합니다.

그러다보면 실제로는 이번의 패소가 문제된 것임에도 서로 다른 이유를 들어 상대방과 더 일을 못하는 상황을 만듭니다. 계속 승소가 있었던 과거를 살피면 변호사와 의뢰인의 궁합이 참 좋은 경우였다고 할 수 있음에도 당장 모든 관계를 종료합니다.

결국 변호사와 의뢰인의 관계도 인간 관계를 넘지 아니합니다. 일로 만난 사이라고 하더라도 많은 경우 그 종료는 감정이 원인이 될 때가 많습니다. 의뢰인과의 관계만을 놓고 보면 저는 아직도 연이은 승소 끝에 맞이하는 첫 패소의 순간이 가장 어렵습니다.

다른 관계를 예로 들면, 제게는 첫 사건부터 패소했던 의뢰인이 있습니다. 그 의뢰인은 제가 패소한 후에도 계속 저에게 의뢰를 하였고, 그 과정에서 승패를 거듭했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의뢰인들 중에 승률이 안 좋은 편에 오히려 속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 의뢰인은 경찰이 의뢰인에 대해 47억원의 업무상횡령 혐의로 기소의견 송치한 사건마저도 제게 의뢰하였고, 저는 검찰 단계에서 이 금액을 1억 7천여만 원으로 줄인 뒤 공판에 가서는 최종적으로 전부 무죄를 받았습니다. 제가 잘한 것이 아니라 의뢰인의 저에 대한 믿음이 좋은 결과를 불러온 것이라고 여깁니다.

이와 같은 경험이 있기에 연이은 승소 끝에 첫 패소를 맞이하는 의뢰인은 더욱 안타깝습니다. 변호사와 좀 더 깊은 유대를 갖게 되면 틀림없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의 아쉬움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김연기 변호사
김연기 변호사

- 연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우수 졸업

- 채널A 뉴스TOP10 고정 패널

- 수원지방법원 민사조정위원

- 법률사무소 이김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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