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칼럼] 어김없이 2월 14일이 되면 거리에는 핑크 하트 문양이 걸리고, 마트에는 예쁜 상자에 넣어진 초콜릿(チョコレート)이 가득히 쌓여 있는 풍경을 보게 됩니다. 매년 발렌타인 시즌이 되면 거리 거리에는 많은 종류의 초콜릿이 판매됩니다.

올해는 예년처럼 화려한 이벤트를 볼 수 없지만, 여전히 2월 14일은 여성이 남성에게 초콜릿을 주고, 사랑을 고백하는 날로 사랑받는 ‘발렌타인 데이’(バレンタインデー) 날이죠.

모리나가의 역초코(逆チョコ)
모리나가의 역초코(逆チョコ)

아시다시피 발렌타인 데이는 로마 제국 황제 클라우디우스 2세가 사랑하는 사람을 고향에 두고 온 병사가 있으면 사기가 저하된다는 이유로 병사들의 혼인을 금지했을 당시 그런 정책에 반대해 몰래 병사들을 결혼시켰다가 2월 14일에 처형된 사제 발렌티누스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교회에서 발렌티노 사제의 용기 있는 행동을 기념하며 2월 14일을 ‘Saint Valentine’s Day’(=성 발렌타인의 날)로 정해 기념했는데, 14세기경부터 2월 14일은 연인끼리가 선물을 교환하는 이벤트의 날로 정착해 간 거죠.

우리와 달리 서양의 나라들은 ‘발렌타인 데이’를 남성이 여성에서 선물하는 날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이날 프러포즈를 하고 결혼을 약속하는 연인이 많다고 합니다. 영국에서는 연인들이 선물을 나누는 ‘연인들의 날’로 축하 되는 기념일입니다.

연인에게 초콜릿을 선물할 수도 있지만, 발렌타인의 스테디셀러 선물은 꽃이나 쥬얼리, 거기에 살짝 곁들인 카드라고 합니다. 초콜릿은 어디까지나 곁들여지는 선물인 거죠.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왜 ‘발렌타인 데이’라고 하면 여성이 남성에게 그것도 굳이 초콜릿을 주는 날로 생각하는 걸까요. ‘발렌타인 데이’=초콜릿이라는 공식이 성립된 것은 ‘빼빼로 데이’와 마찬가지로 1980년대 일본에서 유래된 겁니다. 일본에서는 초콜릿 연간 소비량의 약 20%가 2월 14일에 소비되고 있습니다.

그럼 일본은 언제부터 ‘발렌타인 데이’(バレンタインデー)를 연인들의 행사로 지내게 되었을까요. 사랑의 마음을 초콜릿으로 표현하는 것은 19세기 영국에서 시작됐다고 하는데, 이걸 일본에 들여온 것은 1935년 고베의 모로조프(モロゾフ) 제과업체입니다.

이 과자 회사가 ‘당신의 발렌타인에게 초콜릿을 선물하자’(あなたのバレンタインにチョコレートを贈りましょう)'라고 광고해 ‘발렌타인데이’는 초콜릿을 선물하는 날이라는 이미지가 일본에서 생겨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반인들까지 ‘발렌타인 데이’를 지키거나 ‘발렌타인 데이’에 초콜릿을 주고받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은 1956년 ‘발렌타인 세일’이라는 광고가 신문에 게재됐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죠.

이 무렵까지 ‘발렌타인 데이’=초콜릿, 그리고 여성이 남성에게 선물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가족이나 친구에게 화장품이나 옷 등을 서로 선물(贈り物,おくりもの)을 주는 날 정도였던 거죠.

그런데 1960년 일본 모리나가제과(森永製菓)가 여성들에게 초콜릿을 통한 ‘사랑기프트 캠페인’(バレンタイン・ギフト・キャンペーン)을 벌이며 ‘발렌타인초코’(バレンタインチョコ)를 판매합니다.

그리고 2월14일에 ‘모리나가발렌타인쇼’(森永バレンタイン・ショウ)가 후지텔레비젼에서 방송되면서 ‘발렌타인 데이’는 여성이 좋아하는 남성에게 초콜릿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날이라는 일본식 ‘발렌타인 데이’가 정착한 거죠.

모리나가 제과는 2009년 ‘발렌타인 데이’에 남성도 좋아하는 여성에게 초콜릿을 주자라는 캠페인을 벌이며 초콜릿 상표 인쇄가 거꾸로 새겨진 이른바 ‘역초코’(逆チョコ,ぎゃくちょこ) 시리즈, 그리고 남자끼리 초콜릿을 선물하는 ‘남자친구초코’(男友チョコ,だんともちょこ) 등을 발매했습니다.

그런데 공동체 의식을 중시하는 일본다운 발상은 좋아하는 사람이나 연인만이 아니라 남사친(남자사람친구)나 직장의 남성 동료, 남자동급생들에게도 초콜릿을 주는 ‘기리초코’, 즉 의리 초코(義理チョコ)일 겁니다.

1980년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초콜릿을 받지 못한 남자들에 대한 배려차원에서 시작된 거죠. 초콜릿을 의리로 준다고 해서 의리 초코(義理チョコ,ぎりちょこ)라고 합니다. 언제부턴가 일본에서는 의리 초코가 마치 의무화됐습니다.

의리 초코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회사, 혹은 학교 내의 커뮤니케이션의 하나로 여성은 평소에 신세를 진 상사나 동료, 친구에게 일 년에 한 번 감사한 마음을 표할 수 있고, 남성은 ‘올해는 몇 개나 받을까’하고 은근히 기대되는 행사라는 거죠. 그리고 이렇게 받은 초콜릿은 화이트데이의 사탕으로 돌려주니 삶의 소소한 즐거움, 그야말로 소확행이 된다는 겁니다.

하지만 의리 초콜릿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여성은 초콜릿을 준비해야 한다는 압박감, 지출에 대한 고민으로 이 시즌이 되면 매년 우울해진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특히 여성이 적고 남성이 많은 직장에서는 지출만 수만 엔에 달해 고민하는 여성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건 남성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여성에게 초콜릿을 받은 경우, 화이트데이에 상당히 많은 지출이 부담스럽다는 거죠. 그래서 의리 초콜릿 습관을 금지하는 회사도 나오고 있습니다. 단순히 금지하는 것만이 아니라 발렌타인 초콜릿만큼의 돈을 모아 자선단체 등에 기부하는 곳도 있습니다.

비록 ‘발렌타인 데이’가 일본에서 초콜릿 판매 촉진을 목적이라는 상업적인 배경에서 생겨난 상술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마음을 전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에게 초콜릿을 건네주는 것만으로 자신의 마음을 전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을 수는 없지 않을까요?

전 개인적으로 달콤하고 쌉싸름함 속에 달콤함이 깃든 다크 초콜릿이 좋습니다. 마냥 행복하지도, 우울하지도 않은 그런 기분을 선사해주니까요. 여러분은 어떤 초콜릿을 좋아하시나요?

최유경 교수
최유경 교수

◆ 프로필

◇ 이화여자대학 졸업

◇ 오사카부립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 서울대, 성균관대 등 다수대학에서 강의

◇ 서울대인문학연구원, 명지대 연구교수, 학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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