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칼럼]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한해를 끝맺음하는 12월 31일을 일본에서는 ‘오미소카’(大晦日, おおみそか)라고 합니다. 여기서 사용하는 한자, 晦는 그믐 회(晦, みそ)자이니 ‘오미소카’(大晦日)는 큰 그믐날이라는 뜻이겠죠.

우리나라에서도 12월 31일을 섣달그믐이라고 하는데, 묵은 설이라고도 하여 저녁 식사 후 일가 어른들에게 묵은세배를 드리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믐(晦)은 음력으로 달의 마지막 날인 29일 또는 30일을 의미하는데, 달이 가장 작아진 날입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그믐을 츠코모리(つごもり)라고도 하는데, 그 의미는 ‘달이 숨었다’(月隠り, つきごもり)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오미소카’(大晦日)를 양력으로 지내고 있으니 달의 모양과는 상관이 없어졌습니다.

그림 박서하
그림 박서하

‘오미소카’의 풍습은 헤이안 시대(平安時代)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오미소카’는 정월에 오시는 토시가미사마(歳神様, としがみさま)를 맞을 준비를 하는 날입니다. 세신(歳神), 즉 ‘토시가미’(歳神)는 벼농사의 풍작을 가져다주는 농경 신으로 농작물 수확을 도와줘, 인간이 먹을 것에 부족함 없이 잘 살 수 있도록 해 주는 신입니다. 또한, 가정을 지켜주는 조상신으로도 여겨져 일반 가정에서 극진히 모셔온 신이기도 합니다.

소중한 손님인 ‘토시가미’를 맞이할 때 집안을 꼼꼼히 청소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일 것입니다. ‘오소우지’, 즉 대청소(大掃除, おおそうじ)를 하는 날은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12월 13일부터 시작하여 새해 전날까지 끝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다만 12월 29일은 숫자 9(く)의 발음이 일본어의 고통(苦痛, くつう)의 고(苦, く)자와 발음이 같아서 이날에 청소하는 것은 피하고 있습니다. 재수가 없는 날, ‘엔기가와루이’(縁起が悪い, えんぎがわるい)한 날에는 청소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한 해의 마지막 청소를 하키오사메(掃き納め)라고 하는데, 새해 첫날에 청소하면 모처럼 오신 ‘토시가미’도 쓸어버리게 되기 때문에 이를 피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하루가 밤에 시작되어 아침까지 이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한 해의 마지막 날의 해가 지기 시작하면 새해가 시작되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새해 전날 밤에는 ‘토시가미’를 기다리며 새벽녘에 닭이 울 때까지 잠을 자지 않고 새해를 맞이해야 합니다. 혹시라도 잠이 들면 백발이 되고 주름이 생긴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미소카」에 일본인들이 꼭 먹는 음식이 있습니다. 바로 ‘토시코시소바’(年越し蕎麦, としこしそば)입니다. 여기서 ‘토시코시’(年越し)란 한 해(年)를 넘긴다(越し)는 의미로 “한 해를 보내면서 먹는 메밀국수”라는 뜻입니다.

연말에 따뜻한 메밀국수를 먹는 풍습은 가마쿠라 시대부터라고 하기도 하고 에도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라고도 합니다. 어쨌든 아주 오래전부터 「오미소카」에는 메밀국수를 먹은 거죠. 메밀국수를 먹는 이유는 메밀의 면이 가늘고 길어서 수명을 늘려주고 가운(家運)을 좋게 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메밀은 거센 비바람에도 거친 땅에도 잘 자라는 곡물입니다. 그래서 메밀처럼 강건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도 담겨있습니다. 또한, 메밀은 잘 끊어져 '1년의 재앙을 끊어낸다.'라는 의미도 들어있습니다. 이처럼 메밀은 의미도 좋고 몸에도 좋은 엔기모노(縁起物)음식인 겁니다.

‘토시코시소바’(年越しそば)라는 명칭이 전국적으로 알려진 것은 메이지 이후로 일부 지역에서는 메밀 대신 우동을 먹는 곳도 있습니다만 대체로 장수와 건강을 기원하며 메밀국수를 먹습니다.

최유경 교수
최유경 교수

‘토시코시소바(年越し蕎麦)’는 제야의 종소리가 들리기 시작할 때 먹습니다.

그런데 제야의 종(除夜の鐘, じょやのかね)은 ‘오미소카’의 밤에 사원에서 신자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범종을 치는 일본 불교 행사 중 하나로, 「除」라는 한자에는 ‘오래된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옮긴다.’라는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지난해의 모든 어려움을 버리고 평안한 신년을 맞고 싶다는 담은 종소리입니다.

제야의 종의 횟수는 불교에서 말하는 사람의 번뇌(煩悩)의 수를 나타내는 108회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고통을 주고 괴롭히고 아프게 하는 번뇌는 집착에서 시작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번뇌는 우리의 눈, 귀, 코, 혀, 몸, 의지(意)에서 일어나는 욕심에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라고 하니 새롭게 시작되는 새해에는 추운 겨울 하늘 아래에서 울려 퍼지는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모든 번뇌를 2021년에 두고 맑고 정갈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시기를 기원합니다.

◆ 프로필

◇ 이화여자대학 졸업

◇ 오사카부립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 서울대, 성균관대 등 다수대학에서 강의

◇ 서울대인문학연구원, 명지대 연구교수, 학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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