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김웅식 기자] 기부천사 김달봉 씨가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다고 한다. 사실 김달봉이란 이름은 실명인지 가명인지 알 수는 없다. 2016년부터 이 이름으로 전북 부안군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하러 오는 남성이 “김달봉 씨의 대리인”이라며 돈다발을 놓고 갈 뿐이다. 지난 3일에도 찾아온 그는 종이 쇼핑백에 1억2000만 원의 성금을 넣어 왔다.

김달봉 씨는 지난해에는 마스크 20만 장(5800만 원어치)도 기부했다. 김달봉 씨의 기부와는 별개로 부안군청에는 2016년 이후 지금까지 매년 누적돼 온 익명의 기부가 2억3000만 원에 이른다. 부안군 측은 “이전까지 익명의 기부가 없었기 때문에 이 기부도 김달봉 씨가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며, “이것까지 합하면 그의 기부액은 지금까지 6억9800만 원”이라고 밝혔다. 

한때 우리 재벌 회장들은 경영권 후계 작업을 하다 배임·횡령죄로 구속이라는 위기를 맞는다. 그때 그들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여론 무마용으로 ‘1조원 사재 출연’이라는 ‘통 큰’ 약속을 한다. 물의를 빚으면 고개를 숙이고 ‘여론무마용 사재출연’을 약속했던 재벌 회장들이다.

회장의 기부 약속은 공익재단을 통해 기업의 이윤을 사회에 돌려주겠다는 것인데, 본래 취지와 달리 실제로는 오너 일가를 위해 악용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거액의 ‘통 큰 기부 약속’이 공익재단 출연으로 이어지고, 공익재단의 재산은 이후 자식에게 승계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부문화의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가수 임영웅의 생일(6월 16일)을 기념하는 팬들의 기부행렬이 전국 곳곳에서 이어졌다고 한다. 팬들이 임영웅의 생일을 의미 있게 기념하기 위해서 뜻을 모은 결과다. 용돈을 내놓은 분, 여행자금을 내놓은 분, 저금통을 내놓은 분 등 다양한 정성들이 모였다고 한다.

고(故) 정진석 추기경은 지난 4월 선종하면서 "항상 행복하세요. 행복이 하느님의 뜻입니다"라는 유언과 함께 전 재산 800만원의 예금 통장과 자신의 각막까지 기증해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한국의 기부문화는 빠르게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재산 절반 이상 기부를 약속한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김봉진 배달의민족 창업자 등은 맨바닥에서 굴지의 기업을 일궈낸 자수성가형 사업가들이다.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유산을 물려받은 삼성 일가는 1조 원의 기부금과 함께 국보급 미술품 수만 점을 기부해 한국의 문화 수준을 단번에 끌어올렸다.

외국의 기업가나 유명인은 평소에 사회공헌에 적극적이다. 거액을 기부하면서도 생색을 내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같이 기부를 ‘부자의 덕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는 올바른 기부문화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몇 년 전 딸이 태어났을 때 재산의 99%를 생전에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재산 대신 좋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다”는 저커버그의 뜻은 세계인에게 깊은 울림을 주기에 충분하다.

80·90년대 홍콩 영화를 통해 잘 알려진 영화배우 주윤발은 큰 부를 가졌으면서도 평범한 소시민의 삶을 사는 사람이었다. 그가 호텔 식당이나 고급 리무진을 이용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사실은 정반대였다. 주윤발은 소시민들이 즐겨 찾는 허름한 만두집이나 지하철을 애용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몇 해 전에 전 재산 56억 홍콩달러(약 8100억원)를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주윤발은 말한다. “그 돈은 내 것이 아닙니다. 잠시 보관하고 있는 것뿐이지요. 돈은 행복의 원천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내 꿈은 행복하고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힘든 것은 돈을 얼마나 버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평화적인 사고방식을 유지하고, 걱정 없이 남은 인생을 살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기부천사 김달봉 씨가 본인인지 아니면 진짜 대리인인지 그 누구인지는 알 수가 없다. 모금회 직원 중 둘 다를 만나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궁금한 것은 김달봉 씨가 과연 한 명인가 하는 것이다. 2016년 인천의 구청 3곳에 각각 5000만 원을 놓고 사라졌던 기부자의 이름도 김달봉이었다. 구호단체들에도 정체를 숨긴 김달봉이란 이름의 후원이 잇따른다.

우리나라 기부 규모는 2019년 기준 연 14조5000억원이다. 한 푼 두 푼 정성을 모으는 개인 기부가 65%로 기업이 내는 돈보다 훨씬 많다. IMF 사태로 모두가 힘들던 1998년부터 개인이 기업을 앞지르고 있다.

사회심리학자들은 개인 기부가 늘어나는 것을 두고 “어려움을 겪을 때 오히려 주변을 살피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코로나 사태가 이를 증명했다.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작년 12월 연말연시 기부 캠페인을 시작하며 잡았던 목표액은 3500억원이었다. 실제 들어온 돈은 4000억원이 넘었다. 연간 모금액도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한 8400여 억원이었다.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 서기 위해 돈을 버는 사람이 많아지면 세상은 더 힘들어질 것이다. 부자에 대한 부러움 때문이 아니라 돈으로 얻는 ‘선한 영향력’이 아름다워서 부자를 꿈꾸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김웅식 편집국장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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