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칼럼]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의 시행으로 일상회복을 하는가 싶더니 우리의 일상은 전보다 더 많은 제약을 받아야 할 만큼 위기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1년을 마무리하기 위한 송년 모임은 어김없이 행해지고 있나 봅니다.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을 서로 나누고 묵은 감정을 털어내, 좋은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자”(新年を迎えよう)라는 뜻에서 행해지는 송년회는 몇 년 전까지만 하여도 일본식으로 ‘망년회’(忘年会), 즉 보넨카이(ぼうねんかい)라고 불리었습니다.

그림 박서하.
그림 박서하.

망년회(忘年会)의 망(忘)은 ‘잊을 망’자로 일본어 음독으로는 ‘보우’(ぼう), 훈독으로는 ‘わすれる’라고 합니다. 한 해 동안 괴롭고 힘들었던 나쁜 일(嫌なこと)들을 모두 잊어버리자는 의미로, 가까운 지인들과 술 모임(飲み会)이나 식사 모임(食事会)을 갖는 거지요. 물론, 그건 구실이고 실은 망년회를 핑계로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 한잔하자는 거겠지만, 이 시기만 아니라면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늦게까지 모임을 갖는 대신 망년회를 점심으로 대신하는 ‘앗사리’(あっさり)파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합니다. 앗사리(あっさり)는 ‘담백하다’, ‘깨끗하다’라는 의미로 ‘앗사리한 요리’(あっさりした料理), ‘앗사리한 성격이다’(あっさりした性格だ) 등으로 사용합니다. 가벼운 식사로 망년회를 하든, 늦게까지 향연을 즐기든, 한 해 동안 힘들었던 기억을 모두 지우고 내년에는 제발 좋은 일만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두 같을 겁니다.

일본에서 망년회의 기원은 가마쿠라시대(鎌倉時代)의 열린 “토시 와스레카이”(年忘れ會, としわすれかい)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 해를 잊자”라는 의미의 이 모임은 지금처럼 술을 마시는 모임이 아니라, 원래는 귀족이나 무사들이 한 해가 끝나갈 무렵에 모여 일본의 전통 시가(詩歌)인 렌가(連歌)를 읊는 모임이었다고 합니다. 망년회가 지금의 형태로 정착하게 된 것은 에도시대(江戸時代)부터로 서민들은 1년 동안의 고된 노동을 잊기 위해 술잔을 주고받는(酌み交わす, くみかわす) 모임을 열었다고 합니다. 무사(武士) 계급은 망년회는 하지 않았고, 대신 새해에도 주군에게 충성을 맹세하겠다는 의미로 신년회(新年会)를 중시하였다고 전해집니다.

망년회가 지금처럼 연중행사로 정착하게 된 것은 메이지 시대(明治 時代)입니다. 연말에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학생이나 연말 보너스를 두둑이 받은 관료들이 망년회라는 모임을 가졌다는 것이지요. 당시에는 이러한 모임이 서양의 연말 파티처럼 문명개화라고 생각했다고 하더군요.

최유경 교수
최유경 교수

일본 근대, 망년회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본으로 잘 알려진 나츠메 소우세키(夏目漱石)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吾輩は猫である, わがはいはねこである)입니다. 이 소설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합니다.

“그날은 무코지마의 지인 집에서 망년회 겸 연주회가 있어서 저도 거기에 바이올린을 가지고 갔습니다. 열다섯 여섯 명 정도의 아가씨들과 영부인이 모인 꽤 성대한 모임으로...”(その日は向島(むこうじま)の知人の家(うち)で忘年会兼合奏会がありまして私もそれへヴァイオリンを携えて行きました。十五、六人令嬢やら令夫人が集ってなかなか盛会で...)

망년회로 연주회를 열었다고 하니, 역시 망년회를 연말 파티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2021년이 저물고 있습니다. 모임의 형태가 어떠하든 한 해에 있었던 안 좋은 기억들을 털어낼 수만 있다만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겁니다.

2021년, 좋은 사람들과 따뜻한 마음을 나누었던 추억을 생각하며 망년회의 사전적 의미 “한해의 노고를 잊기 위해 연말에 개최하는 연회”처럼 이 한해를 위해 수고해주신 많은 분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남은 2주 잘 마무리하길 바랍니다.

◆ 프로필

◇ 이화여자대학 졸업

◇ 오사카부립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 서울대, 성균관대 등 다수대학에서 강의

◇ 서울대인문학연구원, 명지대 연구교수, 학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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