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칼럼]  12월이 되면 일본에서는 한 해 동안 신세 진 분들께 “올해 1년 감사했습니다.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今年1年間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また 来年もよろしくお願いします)”라는 마음을 담아 회사 상사나 거래처에 선물을 보냅니다.

최근에는 가족이나 친한 친구, 지인에게도 오세보를 보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세모(歲暮)’는 해(歲, 年)가 끝나갈(暮) 무렵이나 설을 앞둔 섣달그믐(음력 12월 30일)을 일컫는 말에 미화어, 오(お)를 붙인 말입니다.

오세보.
오세보.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풍습은 있습니다. 세모(歳暮)와 의미는 같지만, 한자는 ‘저물 모(暮)’ 대신 ‘끝말(末)’을 써서 ‘세말(歳末)’이라고 하기도 하고, 조선 시대에는 세의(歲儀)라는 풍속이 있어 한 해가 저물 때 지방특산물을 신세 진 분들께 선물로 보냈다는 기록이 전해집니다. 요즘은 ‘끝말(末)’을 우리말로 바꾸어 ‘세밑’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오세보를 보내는 풍습은 중국 도교에서 유래합니다. 도교에서는 음력 1월15일을 「상원(上元)」, 음력 7월 15일을 「중원(中元)」, 음력 10월15일을 「하원(下元)」이라 하여, 신들의 생일로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는데, 신들께 드리는 제사를 사람에게 하게 된 거죠. 일본에서도 우리처럼 설날에 돌아가신 조상님을 맞이하는 「미타마 마쓰리(御霊祭り, みたままつり)라는 행사를 집안에서 행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네 제사와 다른 것은 시집간 딸이나 분가한 자식들이 신들의 술안주가 될 만한 소금에 절인 연어(塩鮭)나 방어(ブリ), 말린 청어 알(数の子), 말린 오징어(するめ) 등을 가지고 와서 제상에 올렸다고 하네요. 이처럼 집을 떠났던 자식들이 신께 바칠 음식을 가져오는 풍습에서 오세보(お歳暮)가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연말의 혼잡을 피하려고 11월 말에 오세보(お歳暮)를 보내는 분들도 있지만, 12월 중순에 도착하도록 보내는 것이 예의입니다. 보통 10개 이상 보내는 가정이 많다 보니 우리나라 명절 선물과 비슷하게 3만 원에서 5만 원 사이의 물품들이 배부분입니다. 주로 화과자(和菓子)나 햄이나 가공식품, 생선, 과일 등을 보내지요.

그런데 일본에서 절기, 혹은 특별한 날에 보내는 선물에는 정해진 포장지에, 정해진 모양과 색의 끈을 사용해야 합니다. 선물 포장지는 꼭 흰색이어야 하는데 그 종이를 ‘덮는 종이’라는 의미로 가케가미(かけ紙)라고 합니다.

이 포장 종이에는 2종류의 묶음을 합니다. 하나는 몇 번이라도 생기기를 바라는 좋은 일을 축하(祝い事)할 때는 우리가 흔히 보는 리본 묶음을 합니다. 이것을 ‘나비 묶음(蝶結び, ちょうむすび)’이라고 하는데, 이 매듭은 잡아당기면 풀어지니 여러 번 다시 묶을 수 있어 좋은 일이 많이 생기기를 바란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결혼이나 장례식처럼 인생에 단 한 번만 있는 일, 혹은 있기를 바라는 일에 사용하는 묶음으로 한 번 묶으면 더는 풀어지지 않는다는 의미의 무스비끼리(結びきり)로 묶습니다. 다른 말로 마무스비(真結び, まむすび), 혹은 아와비무스비(あわび結び)라고도 하는데, 이때 묶음은 위를 향하게 합니다. 묶음으로 사용하는 실을 미즈히키(水引, みずひき)라고 하는데, 경사(慶事)일 때는 홍백, 조사(弔事)일 때에는 흑백을 사용하고, 짙은 색이 보는 방향의 오른쪽에 오도록 합니다.

미츠히키로 묶는 것(結び)으로 선물 포장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림에서 보시면 무스비(結び) 위에 벚꽃 모양의 네모난 장식을 붙어있는 것이 보이실 겁니다. 이걸 노시(のし)라고 합니다. 이 장식 자체가 ‘경사(慶事, けいじ)’를 의미하기 때문에, 조사면 노시없이 무스비만 붙입니다. 미즈히키(水引)와 노시(のし)를 인쇄한 종이를 노시가미(のし紙)라고 합니다.

내용물도 중요하지만, 어차피 버려질 포장하는 종이, 끈 하나도 중요시하는 일본인의 삶의 태도는 비합리적으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보내는 사람의 정갈한 마음이 받는 사람의 눈에 보이게 정성을 다하는 이러한 행위가 그들의 삶을 대하는 자세일지도 모릅니다.

잔잔한 바람 한 줄기가 삶의 활력을 주듯 우리의 삶은 이런 소소한 것들에 위로받으며 오늘을 살아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저도 올 한 해 마음을 나눠주신 분들에게 자그마한 선물이라도 드려야겠습니다. 

최유경 교수
최유경 교수

◆ 프로필

◇  이화여자대학 졸업

◇오사카부립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 서울대, 성균관대 등 다수대학에서 강의

◇ 서울대인문학연구원, 명지대 연구교수, 학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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