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김웅식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이 기업집단 밖으로 일감을 나눠 주도록 정책방향을 잡자 일부 기업은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대기업집단에 속한 기업들 중 일부는 내부거래 비중이 업계 평균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재계 순위 30위 권인 모 그룹의 회장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아들에게 물려준 회사에 ‘일감 몰아주기’를 해오다 당국의 제재를 받았다. 공정위는 지난 10월 공정거래법상 ‘부당 지원과 사익 편취’ 혐의로 이 회사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48억8800만원을 부과했다. 일감 몰아주기는 총수 일가가 회사 재산을 이용해 사익을 챙기는 불법행위로 엄중한 제재를 받게 돼 있다. 

해당 그룹은 두 차례 공정위의 제재를 받은 데 이어, 최근에는 국세청이 해당 그룹 계열사인 A사에 대한 특별세무조사에 돌입했다. 회장의 장남은 A사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이번 세무조사는 비정기 특별세무조사 전담팀인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이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세무조사가 90일가량 진행된다는 점에서 국세청 조사는 해를 넘길 것으로 보인다.

일감 몰아주기는 재벌이 우리 경제에 끼치는 아주 큰 해악 중 하나다. 총수 일가가 소유한 기업에 계열사들이 일감을 몰아주다 보니 같은 업종의 중소기업들은 처음부터 경쟁 기회를 박탈당한다. 중소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다. 

또 회사 재산을 이용해 부와 경영권을 편법으로 세습한다는 점에서 시장경제의 근간을 뒤흔드는 행위다. 이런 점 때문에 현행 공정거래법은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 3년 이하 징역형 등 형사처벌까지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창업주 한 명에서 시작된 재벌 기업의 자손이 이젠 수백 명으로 늘어났다. 챙겨야 할 재벌가의 자식과 손자 손녀는 왜 이리 많은가.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출도 재벌가의 가족환경 변화에서 비롯되는 게 아닌가 싶다.

국내 건설업의 쇠퇴는 ‘불공정한 구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감 몰아주기’인 내부거래다. 건설업의 경우 계열사나 기업 총수와 특별한 관계에 있는 회사를 상대로 하는 거래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런 정황은 중견 건설사에 제기되는 기업 쪼개기가 대표적이다. 주택법상 주택사업자는 자본금 3억원 이상, 건축분야 기술자 1인 이상, 사무실 면적 22㎡ 이상 요건만 갖추면 사업을 할 수 있다. 또 추첨으로 사업 계약자를 선정하기 때문에 계열사를 늘려 벌떼 입찰을 하는 방식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실제로 2014년 말에 실시된 광주전남혁신 3-3구역 택지 청약에 J건설 31개를 비롯해 H건설 19개, U건설 18개, D건설 13개, Y건설 10개 등 5개 건설사가 81개 계열사를 동원했다. '벌떼 입찰'은 공공택지에 중견 브랜드 아파트만 들어서게 해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시키지만 중견 건설사로서는 수익을 확보하는 방법이다.

D건설은 올해 자산 5조~10조 원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신규 지정되면서 정부의 규제 울타리 안으로 들어왔다. 이 건설사는 그동안 내부거래가 과도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D건설은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배당을 실시해 오너가의 주머니를 채웠다. 이 회사는 2015년 80억원을 배당한 후 2016년 166억원, 이후 매년 20억원씩 배당했다. D건설의 최근 6년간 배당금은 326억원이다. 이 건설사에는 규제 사각지대에 있는 계열사가 36개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는 지난달 초 공시대상 기업집단 가운데 총수 일가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 사각지대에 있는 회사 수를 집계해 발표했다. 발표에 따르면 일감 몰아주기 규제 사각지대에 있는 기업은 444곳으로 지난해보다 56개 증가했다.

조직의 특성상 영업비밀이나 보안 문제 때문에 계열사만 수행할 수 있는 업무가 있긴 하지만, 과도한 내부거래는 기업집단을 부실하게 만들거나 다른 기업과의 경쟁을 저해하는 문제를 낳기도 한다.

건설사들은 영업실적이 안 좋을수록 수익회복을 위해 내부거래를 늘린다. 모그룹이나 계열사로부터 수의계약으로 일감을 받아 실적을 쌓는 식이다. 

문제는 일감 몰아주기 확대가 장기적으로 볼 때, 건설산업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점이다. 국내 대형 건설사들은 내부거래로 혁신 경쟁이 설 자리를 잃게 만든다. 수의계약으로 이뤄지는 내부거래는 혁신에 대한 의욕을 떨어뜨리고 새로운 기업들의 성장을 억누른다. 경쟁이 없는 곳에 혁신이 있을 수 없다.

김웅식 편집국장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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