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김웅식 기자] 끝난 게 끝난 것이 아니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학생들은 편히 쉬지도 못하고 논술고사를 보기 위해 또 다시 여러 대학을 오가며 고투해야 한다. 학부모들의 염려와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올해 수능시험은 ‘희대의 불수능’ ‘용암 수능’이라는 평이 나온다. 가채점 결과 최상위권을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어렵고 까다로웠다고 한다. 코로나19로 인한 2년간의 수업결손을 간과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난이도 논란은 매년 되풀이되는 교육당국의 숙명이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우리의 수능시험을 조명하면서 한국의 수험생을 두고 “세상에서 가장 힘든 시험을 봐야 한다”고 보도했다.

방송에 출연한 한 학생은 “입시교육 자체가 ‘수능 못 보면 실패한 사람이 아닐까’ ‘내가 이 정도로 가치가 없는 능력이 없는 사람인가’를 느끼게 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와 함께 “그러나 수능 성적이 말해준다”며 “수능 성적밖에 없다”고 덧붙이면서 풀이 죽은 모습을 보였다.

BBC는 “한국의 고교생이 8시간 동안의 험난한 ‘마라톤 시험’인 수능에 응시했다”며 “대학 배정, 직업 및 미래 등을 보장받기 위해 수능을 잘 치러야 한다는 생각 탓에 상당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겠지만, 예전엔 지금처럼 공부를 고통스럽게 하지는 않았다. 사교육을 받지 않고 교과서 위주로 공부해 대학에 갈 수 있었다. 대학 입시도 교과서 중심으로 출제되는 학력고사를 한 번 치르면 해결할 수 있었다. 가끔 영화도 보고 여행도 가고, 만화도 보고 소설을 찾아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엔 신경 써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컨설팅을 받아야 할 정도로 대학입시는 복잡하고 어렵게 돼 있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은 재미있어야 건강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재미 예찬론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사는 게 재미있고 유쾌한 사람은 창조적이 된다”라고 말한다. 재미가 삶을 살게 하는 에너지의 근원이며 행복의 원천이라고 강조한다. 백번 공감되는 말이다. ‘공부’라는 기술을 이용해 행복한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학생들 부담을 덜고 통합사고력을 기르기 위해 1993년부터 수능시험이 도입됐다. 시행 첫해 8월과 11월 두 차례로 진행됐지만 난이도 차가 커 말이 많았다. 94학번을 ‘저주받은 학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듬해부터 수능이 다시 한 차례로 바뀌었지만 공교육 황폐화와 재수생 양산, 사교육 팽창이라는 부작용은 여전하다. 

교육당국과 대학들이 대입간소화 방안을 마련해 추진하고 있으나 대입 수요자들의 체감지수와는 격차가 너무 크다. 교육당국이 입시 간소화에 나서는 걸 보면 대입제도가 복잡하기는 복잡한 모양이다. 

대학입시와 주택청약의 공통점 중 하나는 쉽고 단순했던 내용이 나중에 수정되고 보태지다 보니 ‘난수표’가 돼 혼란스럽고 헷갈리게 됐다는 점이다. 대학입시와 주택청약 제도는 조변석개(朝變夕改)식 변화를 반복해 전문가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대학 갈 수 있는 방법을 조합하면 몇 백 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우리나라 수험생들은 수능시험 하나를 위해 12년간 학창시절을 보낸다. 학교를 마치면 곧바로 학원에 가야 하는 현실이 거대한 벽처럼 막아 서 있다. 놀이를 즐길 시간 자체가 모자랄뿐더러 설사 있더라도 놀이를 할 동네 골목은 거의 없고 놀이터도 변변치 않다.

최근 인천의 한 아파트 입주자대표가 자기네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를 사용한 외부 아이들을 기물파손 혐의로 신고했다는 뉴스는, 마음껏 놀 곳을 찾지 못한 채 '놀이터 난민'이 되어 떠돌 수밖에 없는 우리 아이들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국에서 대학입시가 차지하는 중요성은 다른 어떤 교육정책보다 강력하다. 대입제도의 변경은 전국 고교의 교육과정에 영향을 주고, 심지어 중학교와 초등학교 재학생과 학부모들에게도 파급력이 크다. 사교육에 미치는 영향력도 상당하다. 입시제도 개편 발표 이후 부동산 시장이 술렁이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한국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것은 교육이 정반대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학생들은 하루 15시간 이상을 학교와 학원에서, 자신들이 살아갈 미래에 필요하지 않은 지식을 배우기 위해 그리고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제3의 물결'과 '부의 미래'의 저자로 잘 알려진 고 앨빈 토플러 박사가 2007년 방한 시 한국사회를 진단하며 남긴 뼈아픈 지적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미래학자의 신랄한 경고가 무색하게도, 지난 20년간의 크고 작은 입시제도 및 교육과정 개편 시도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오락가락 요란하게 변죽만 울렸을 뿐 입시지옥과 사교육비 문제는 날로 심화하고 있다. 

수능시험 성적에 따른 대학 서열화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개선하지 못한 채, 정치적 의도를 수반한 정책들을 쏟아내며 중등교육 기관만 흔들어대니 학생과 학부모는 물론 교사와 학교의 혼란과 갈등만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네 삶의 목적이 마치 대학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만큼 대학 진학에 쏟는 에너지와 비용은 엄청나다. 백년대계(百年大計)인 교육정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요동쳤다. 그런데도 달라진 건 없고, 교육현장의 ‘원성’만 높아지고 있다.

젊은이들이 힘든 건 전적으로 기성세대 탓이 크다. 국민의 삶을 혼란스럽고 어렵게 하는 규정과 제도는 또 하나의 적폐다. 국민과 유리된 규정과 제도는 바로잡아야 한다. 삶의 수단이 목적이 돼서는 안 될 것이다. 

김웅식 편집국장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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