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히 뉴스 tv 장면 
아사히 뉴스 tv 장면 

[뉴스워치= 칼럼]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는 정치인들을 자주 목격합니다. 특히, 일본의 정치인들이나 기업인들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만이 아니라 뭔가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을 때도, 사건 당사자, 사건 관계자, 그 일과 관련 있는 사람들 모두, 약속이나 한 듯 기자회견장에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의미의 ‘이칸니오모우(遺憾に思う, いかんにおもう)’, 혹은 ‘유감의 뜻을 표합니다’라는 의미로 ‘이칸노이오시메수(遺憾の意を示す, いかんのいをしめす)’라고 말하곤 합니다.

유명인사들과는 달리 일반인들은 “좀 유감스럽네요” 혹은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해” 등 유감을 마음에 응어리라는 의미로 사용하곤 하죠. 유감이란 말은 중국이나 한국 고전에는 거의 나오지 않는 단어입니다. 『일본국어사전』에 의하면, ‘유감(遺憾)’이 일본 문헌에 처음 나온 것은 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라고 합니다. 당시에도 ‘안타깝다’, ‘마음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아 마음이 좋지 못하다’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답니다. 그런데 1960년대부터 일본의 정치인들이 정치적 관용어, 외교적 수사로 사용하면서 대중적인 정치용어로 자리 잡았고 그 말이 그대로 한국에도 들어와 사용되고 있는 거죠.

그런데 의구심이 드는 것은 ‘유감(遺憾, いかん)’이라는 말에 사과(謝罪, しゃざい)의 의미가 들어 있는가 하는 겁니다. 태평양전쟁으로 자국민은 물론 인근 국가의 수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쇼와 천황(昭和 天皇)은 1945년 9월 27일, 맥아더 장군을 만난 자리에서 전쟁으로 막대한 희생이 발생한 것에 대하여 “내가 가장 유감스러워하는 점(自分の最も遺憾とするところ)”이라고 대답합니다. 글쎄 이걸 유감으로 끝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닌가요? 전쟁 총책임자의 입에서 ‘유감’이 아닌 ‘사죄’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20년 6월, 자민당 현역 국회의원이 뇌물수수로 체포됩니다. 그러자 기자들이 아베에게 어떻게 책임을 질 거냐고 묻자, 아베 역시, 법무 대신으로 임명한 자신으로서는 “매우 유감스럽습니다(大変遺憾であります)”라고 답합니다.

그래서 유감에 사죄의 의미가 있는지 찾아봤습니다. ‘유감(遺憾)’은 「남기다, 잃는다」라는 의미의 유(遺), 「섭섭하다, 원망하다」라는 의미의 감(憾)자를 씁니다. 그러니까 섭섭하고 원망스러운 마음을 남긴다는 거겠죠. ‘유감’의 우리말의 사전적 정의도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으로 뭔가 성에 차지 않는다는 의미인 건 마찬가지입니다.

최유경 교수
최유경 교수

그런데도 유명인사들은 자신, 혹은 측근이 저지른 잘못에 ‘유감(遺憾)’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잘못을 흐리고 나는 아무 상관이 없는 제삼자라는 인상을 주면서 본질을 흐리는 거죠. 이건 독도를 자국 영토라고 우기는 일본에 대해 한국 정부는 늘 ‘유감’을 표하고, 한국 정부의 태도에 일본 정부도 똑같이 늘 ‘유감스럽다’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 안타깝네요”라고 말은 하는데, 도대체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알 수도 없는 모호한 말인 거죠.

사과할 때는 사과를 해야 하고, 잘못한 것이 있으면 책임을 져야 하지 않을까요? ‘유감’이라는 모호하고 오염된 말로 본질을 흐려서는 벌어진 일에 대하여 아무도 책임지지 않을 겁니다. 격해진 선거전으로 각종 비리, 의혹이 터져 나오고 있지만, 아무도 명확한 답을 주지 않으면서 그저 유감스럽다고만 합니다. 그런 정치인들만 있는 것이 아닐 거라는 일말의 기대조차 갖지 못하게 하는 그런 행동들이 정말 유감스럽습니다. 

◆ 프로필

◇ 이화여자대학 졸업

◇ 오사카부립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 서울대, 성균관대 등 다수대학에서 강의

◇ 서울대인문학연구원, 명지대 연구교수, 학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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