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김웅식 기자]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온라인 공연을 보려고 전 세계 팬들이 동시에 70만 명 이상이 접속한다. BTS 팬 가운데 한글을 배워 한국 노래를 제대로 즐기려는 충정을 발휘하는 이들도 많다. 외국의 수많은 젊은이가 우리말로 된 가사를 단체로 부르는 등 방탄소년단은 한류뿐만 아니라 한글 확산에도 기여하고 있다.

요즘 코로나19 시기에 자주 듣는 말 중 하나는 ‘부스터 샷’이다. 전문용어인 것 같긴 한데, 얼핏 들어서는 무슨 의미인지 제대로 파악이 안 된다. ‘부스터 샷’ 대신 ‘추가접종’이라고 하면 남녀노소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대형건설사 홈페이지에 소개돼 있는 건설현장 직원의 통화 내용이다. 

A과장: “김 기사, 계단 오도리바랑 샤끼리 청소 좀 하고, 사시낑 제대로 뽑으라 그래.”
신입사원: “잘 못 들었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해주세요.”

A과장: “오도리바 옆에 사시낑 제대로 뽑고, 샤끼리 삿뽀도 하고, 면끼 손 좀 보라고!”
신입사원: “(이 무슨 소리지), 과장님 어디 계세요?”

이 정체불명의 ‘외계어’ 대화는 무슨 뜻일까? ‘계단참과 경사진 부분 사이의 이음 철근 시공을 손보고, 경사 부분 아래쪽 동바리 받침을 제대로 하고, 측면에 못을 더 박으라’는 뜻이다. 

A과장은 그동안 작업하면서 써오던 말을 ‘편하다’는 이유로 신입사원에게 별 생각 없이 사용했을 듯하다. 물론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한 대화이겠지만, 건설현장의 언어생활 풍경을 엿보게 하는 한 예라 할 수 있다. 

거리를 오가다 보면 말글생활을 어지럽히는 게시물을 보게 된다. 어려운 한자어나 외래어, 잘 쓰지 않는 말을 사용해 보는 이를 주눅 들게 하는 것이 많다. ‘내가 배움이 부족해서 이해를 못하나’라는 자괴감마저 느끼게 한다. 고압적인 어휘와 어투로 ‘이렇게 정했으니 무조건 따라 오라’는 식이다. 이런 글들은 남을 배려하지 않은 것이다. 

언어생활을 흐리게 하는 흐름들이 늘어나고 있다. 올바른 우리 말글로 바로잡아야 할 말의 ‘잡풀’이 여기저기서 자라고 있는 것이다. 영문으로 된 기업 이름이 거리를 점령해 버린 지는 오래됐다. 이게 그것 같고, 그게 이것 같아 헷갈린다. ‘영문으로 회사 이름을 표기하는 것은 이미지 향상과 세계화 전략의 하나’라는 그럴싸한 명분을 내걸긴 하지만 이해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우리 말글에 대한 국민의 이해도가 낮다는 조사 결과는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그만큼 우리 말글에 대한 의식이 흐려져 있다는 말이 된다. 우리 것을 버리면서까지 남의 것을 따라간 결과일 것이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새겨볼 일이다. 

몇 년 전부터 어렵고 낯선 용어를 쉬운 우리말로 순화하려는 움직임들이 이어지고 있다. 어떻게 보면 건설업자를 건설사업자로 바꾼 것도 언어순화의 한 성과라고 볼 수 있겠다. 입법부, 행정부에 이어 국방부도 군대에서 통용되는 부적절한 언어와 어려운 행정 용어를 퇴출하는 ‘올바른 공공언어 사용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건설업도 용어순화가 절실한 분야 중 하나로 꼽힌다. 업무란 말보다 ‘노가다’, 끝보다 ‘시마이’란 단어가 실생활에도 쓰일 정도로 고착화돼 있다. 순화해야 할 건설 관련 일본식 용어가 어림잡아 300개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엔 산하 유네스코(UNESCO)에서 제정한 ‘세종대왕상’이 있다. 정식 이름은 ‘세종대왕문맹퇴치상’으로 한글 창제에 담긴 세종대왕의 정신을 기리고 문맹퇴치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나 단체를 격려하기 위한 상이라고 한다. 

상 이름을 ‘세종대왕상’이라 붙인 것은 전 세계인이 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한글)’의 우수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인이 세종대왕을 추앙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못한 일을 했기 때문이다. 세종대왕은 한자를 빌려 쓰던 불편을 없애고 백성들 누구나 쉽게 읽고 씀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안겨주었다. 한글 창제에는 이렇게 백성이 소통하는 데 겪는 어려움을 풀겠다는 세종대왕의 애민(愛民)정신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세종대왕이 품었던 애민정신이 지금 우리의 언어생활에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은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내일은 575돌 한글날이다. 한글 창제를 기념하고 우리 글자의 우수성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날이다. 우여곡절 끝에 한글날을 국경일과 함께 공휴일로 정한 데에는 ‘언어문화’를 바라보는 국민의 생각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김웅식 편집국장 newswatch@newswatch.kr

저작권자 © 뉴스워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