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일본 포스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일본 포스터

[뉴스워치= 칼럼] 사건, 사고, 재해 등으로 어떤 사람에게 한동안 연락이 되지 않는 상황을 행방불명(行方不明)이라고 하죠? 한자식 표현대로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는 의미인데 일본에서는 ‘유쿠에후메이(行方不明, ゆくえふめい)’, 즉 행방불명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말은 근대 이후 만들어진 법률용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상적으로는 ‘누가 사라졌다’, 혹은 ‘누가 없어졌다’라고 하는 것처럼 일본에서도 행방불명과는 별도로 오래전부터 가미가쿠시(神隠し, かみかくし)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2002년 한국에서 2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 돌풍을 일으킨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원래 제목은 ‘센토치히로노 가미카구시(千と千尋の神隠し, せんとちひろのかみかくし)’입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치히로(千尋)'는 주인공 여자아이의 인간 세계의 이름이고, 센(千尋)은 신들이 재충전하는 목욕탕의 주인, 유바바(湯婆婆)가 ‘질문하다(尋ねる, たずねる)’라는 의미의 심(尋)을 떼어버리고 만든 신의 세계의 이름입니다. 영화의 제목에서 ‘행방불명’으로 번역된 일본어는 ‘가미가쿠시(神隠し, かみかくし)’로 이 말은 특히 아이들이 갑자기 사라질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일본에서 전해 내려오는 민간전승 중 하나인 가미가쿠시(神隠し)는 ‘가미(神,かみ,신)+가쿠수(隠す かくす,숨기다)’로 신이 숨겼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신이 숨기는 것과 아이가 행방불명이 되는 것이 무슨 상관일까요? 일본에서는 예로부터 우리가 지금 사는 세상 외에도 신들이 사는 이계(異界, いかい)가 우리 사회에 공존한다고 믿었습니다. 이계(異界)는 주로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산과 깊은 숲에 있는데 신들은 나무나 바위, 꽃, 물, 때로는 비와 바람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자신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신 중에는 인간을 이계로 데려가는 신이 있습니다. 도시와 마을에서 어린아이가 사라지거나 집에 돌아오지 않으면 신이 딴 세계로 데려갔다고 믿었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기 때문에 가미가 사는 이공간(異空間)으로 그 아이를 데려간 거로 생각한 거죠. 옛날부터, 텐구(天狗, てんぐ)는 산신(山の神)으로 추앙받았습니다. 그래서 산을 비집고 들어간 사람이 실종되면 ‘텐구가쿠시(天狗隠し, てんぐかくし)’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 밖에서도 오니(鬼)는 사람을 잡아먹는 바케모노(化け物, 변신괴물)라고 생각해서 행방불명(神隠し)을 "오니가쿠시(鬼隠し), 즉 오니가 숨긴 거라고 말하는 예도 있습니다.

최유경 교수
최유경 교수

이렇게 가미나 오니가 사람을 데려가는 예도 있지만 때로는 인간 스스로 금기를 깨고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의 사츠키가 토토로가 사는 신의 영역(神域)에 들어갔던 것처럼 신의 공간에 발을 디디기도 합니다. 그런데 인간이 이계에 잘못 발을 들여놓으면 다시는 인간들이 사는 곳으로 돌아올 수 없게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원인 불명의 실종자들은 신의 경내에 들어선 탓에 사라진 거로 생각했습니다.

물질세계에서의 단순한 물리적 사라짐만이 아니라 현세를 떠나 이세계(異世界)로 영혼의 사라지는 경우도 가미의 세계에 들어갔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가미가쿠시에는 사람들, 그중에서도 아이들을 유괴하는 부정적인 이미지도 있지만 살기 힘든 현재의 세상보다 더 좋은 신의 세계에게 신의 보호 아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남겨진 사람들이 견딜 수 없으므로 생겨난 자기 위안이겠죠. 그것이 무엇이든, 이계가 아무리 좋아도 아무도 가미의 세계로 사라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프로필

◇ 이화여자대학 졸업

◇ 오사카부립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 서울대, 성균관대 등 다수대학에서 강의

◇ 서울대인문학연구원, 명지대 연구교수, 학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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