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칼럼] 이제 9월 가을의 시작입니다. 한낮에는 여전히 볕이 뜨겁지만, 아침저녁으로는 가을바람이 불어 제법 선선한 게 그 길고 무더웠던 여름도 끝이 났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기에도 좋은 계절이기도 하지만 저는 2021년, 시작부터 극장가를 뜨겁게 달군 〈키메츠노야이바(鬼滅の刃, きめつのやいば): 귀멸의 칼날〉에 이어 또 다른 일본애니메이션, 〈신게키노쿄진, 進撃の巨人, しんげきのきょじん, 진격의 거인〉을 보고 있습니다.

이 만화는 2009년부터 무려 11년간 이어온 대하(大河) 만화입니다. 이 만화는 초대형 거인들이 인간이 사는 성으로 넘어와 인간을 산 채로 잔혹하게 씹어먹는(人間を食らう) 충격적인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날 인류는 생각이 났다. 그놈들에게 지배당했던 공포를(その日人類は思い出した. やつらに支配されていた恐怖を)”이라는 절망적인 내레이션이 흐릅니다. 그리고 15살의 주인공 에렌(エレン)은 건물 잔해에 깔린 어머니(母親)를 구하려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 어머니가 거인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바라보아야만 했죠.

이날 에렌은 거인을 향한 복수를 다짐하며 훈련병(訓練兵)에 자원합니다. 그래서 거인을 죽이는 전투기술을 익히고 거인들과의 전투를 벌이게 되죠. 인류를 위협하는 악의 세력, 거인(巨人)과 이들과 맞서 싸우는 소년 영웅. 흔히 일본 애니에서 흔히 보는 설정입니다.

그런데 이 만화가 다른 만화와 다른 것은 선과 악, 친구와 적이 불분명하고, 그 경계가 매우 모호하다는 점입니다. 이 만화의 등장인물이나 설정에는 너무나 많은 수수께끼(謎, なぞ)와 미스테리한 점이 많아 결국 끝까지 다 보고 싶어지게 만드는 힘이 있지만 간략하게 이야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주 오래전, ‘에르디아’의 초대 왕은 거인을 만들어 전 세계를 지배합니다. 그런데 적대국, 마에(マ‽レ) 국에서 거인이 될 수 있는 전통이 있는 부족의 범죄자들을 진화시켜 전투용 거인들을 만들고 이 거인들을 이용하여 마침내 에르디아를 붕괴시킵니다. 전투에서 살아남은 에르디아인들은 자신들의 거인들을 시켜 마에 국의 전투 거인의 공격을 피하기 위한 50m 두께의 삼중 성을 건축합니다. 그 성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에르디아인들은 마레인들에게 억압과 차별을 받으며 살아가는데, 주인공, 에렌의 부모도 그들 중 하나입니다.

최유경 교수
최유경 교수

세상을 지배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거인에게 위협을 받은 인간은 성안에 갇혀 살아가야만 하고 그마저도 거인에게 함락당할 위기에 처하자 에렌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마레가 보유한 거인 화의 능력을 갖추게 하는 약을 투약하고 아들, 에런은 그 능력을 거인을 죽이는 일에 사용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만든 거인을 제거하기 위해 스스로 거인이 되어 그 거인과 전투를 벌이는데, 등장인물들은 서로가 상대방이 악인지, 선인지, 내 편인지, 아닌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거인을 제거해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가진 인류들은 저마다 다른 말을 쏟아내며 전혀 말이 통하지 않고 동료를 죽이는데 거리낌이 없습니다. 

만화에서는 거대한 권력을 지닌 세력, 혹은 거인을 보며 무력해지는 인간군상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또한, 끝없이 자신의 신념을 의심하고 사회에서 고립되고 배제된 사람들도 자주 등장합니다. 인류애, 민족애, 공동체 등을 주장하는 폐쇄적인 인종주의자들이 만들어내는 왜곡되고 불온한 민족주의가 내 안에 거인을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드리워봅니다. 

◆ 프로필

◇  이화여자대학 졸업

◇  오사카부립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 서울대, 성균관대 등 다수대학에서 강의

◇ 서울대인문학연구원, 명지대 연구교수, 학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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