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김웅식 기자] 대선을 앞둔 시기라서 그런지 우리 사회에 막말이 넘치고 있다. 이렇게 저급한 언어문화를 확산시키는 최전선에는 정치인이 포진해 있고, 이들을 추종하는 지지자들도 빠지지 않는다.​

갈등 확산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인자를 뽑는다면 정치인의 막말을 들 수 있다. 교통사고가 나면 핏대부터 세우고 보는 습성의 연장인지, 아니면 막말로 인지도를 높이려는 전략 때문인지는 몰라도 정치인들은 문제가 생기면 목소리부터 높이고 본다.

‘개에게 물린 사람은 반나절 치료받고, 뱀에게 물린 사람은 3일 치료받고 집으로 돌아가지만, 사람의 말에 물린 사람은 아직도 입원 중’이라는 문장은 잘못된 말이 갖는 피해의 심각성과 함께 평상시 신중한 언행(言行)을 강조하고 있다. 

말이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지옥’과 ‘천당’을 오갈 수 있고,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는 위험한 무기임에는 틀림이 없다.

최근 논란 끝에 물러난 경기관광공사 사장 내정자는 사퇴를 요구한 같은 당 소속 예비 대선 후보에게 “정치생명을 끊어 놓겠다” “(그쪽 사람들은) 인간이 아닌 짐승”이라는 등의 막말을 쏟아냈다. 

똑같은 사람, 사물, 현상을 놓고도 어떤 이름을 붙이느냐에 따라 그 의미는 사뭇 달라진다. 

현 정부 들어 정권 실세와 지지자들은 불리한 상황을 호도하고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상습적으로 ‘말 꼼수’를 부려 왔다.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 사건과 관련해서 피해자의 절규를 ‘오해 가능성’으로 치부하고,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으로 지칭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전 정권 뺨치는 ‘퇴출 명단’을 만들어 두고 ‘자기편 아니면 쫓아냈다’는 증거가 나오자 청와대는 "블랙리스트가 아니라 체크리스트"라고 했다. 

탈원전 정책으로 국내 원전 생태계를 무너뜨려 놓고는 탈원전이 아니라 '에너지 전환'이라고 했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고 미사일이라고 밝히는데도 우리 정부에선 "불상 발사체"라고 둘러댔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측이 검찰 압수수색 전 연구실 PC를 빼내 숨긴 것을 두고, 친정부의 한 유명 유투버는 "증거 인멸이 아니라 증거 보전"이라고 했다. 이후 재판에서 증거 인멸 혐의는 유죄로 인정됐다. ‘말 꼼수’가 실은 진실을 감추고 국민을 속이려 했다는 것이 드러난 셈이다. 

부적절한 언행 때문에 곤혹을 치르는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이른바 ‘갑질 발언’으로 설화(舌禍)를 겪는 기업 최고경영자(CEO)나 유력 정치인은 비일비재하다. 이들은 잘못 내뱉은 말 때문에 위기를 자초하기도 한다. 

유명 제약회사 모 회장은 직원들에게 상습적으로 폭언과 욕설을 일삼았다가 곤혹을 치렀다. 그 회장은 결국 공개사과를 하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자숙의 시간을 갖고 있다. 

모 재단 이사장은 20대 남성에 대한 발언으로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의 말은 20대 남성들이 여성에 대해 역차별과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는 취지로 풀이됐지만, 당시 남성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사실상 20대 남성을 조롱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쏟아지기도 했다. 

일부 지지자는 문제 있는 정치인에 대해서도 ‘우리 편’이면 눈감아주고 도리어 응원하기도 한다. 이런 행태가 최근 인터넷과 SNS를 타고 더욱 극렬해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여당 초선 의원 5명은 지난 4·7 재보궐선거 후 이른바 ‘조국 사과문’을 발표했다가 “배신자”, “배은망덕” 문자폭탄에 두 손을 든 바 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은 베트남 축구대표팀 박항서 감독에게 딱 들어맞을 것 같다. 박 감독은 평소 겸손한 자세로 품격 높은 언행을 실천하고 있다. 

“저를 사랑해주시는 만큼, 내 조국 대한민국도 사랑해 달라.” 

몇 해 전 베트남 축구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고 베트남 국민으로부터 사랑을 받을 때, 박 감독이 방송에서 한 이 말은 한국과 베트남 국민 간 심리적 거리를 가깝게 만들었다. 박 감독이 외교관 수십 명 몫을 혼자서 해냈다고 평가해도 무리는 없을 듯하다.

김웅식 편집국장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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