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칼럼] 요즘 토론회다 발표회다 참 말이 많습니다. 그 사람의 능력이나 자격을 검증하는데 있어 말이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이런 자리의 요구가 있는 듯 합니다. 어쩌면 말을 잘하는 것만이 어떠한 사람의 능력과 자격의 절대 지표인 것처럼 포장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제가 의뢰인과 상담을 할 때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수임을 위해서는 말을 정말 잘해야 하는구나.’라는 것입니다. 의뢰인은 각양각색이고, 사건 상담을 하면서 듣고자 하는 바도 다양하지요.

혹자는 오히려 사건의 전망에 대해 보수적으로 얘기하는 변호사를 선호합니다. 혹자는 이유와 상관없이 오로지 이긴다는 얘기 하나에 안심하기도 하고요. 저야 제 양심에 따라 솔직하게 상담을 합니다만 제가 충분히 알고 있는 것조차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여 사건 수임에 이르지 못하면 당연히 안타깝게 여기게 됩니다.

의뢰인은 말 잘하는 변호사를 선호할까요? 제가 의뢰인이 되어보지는 않았으니 정확히 알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의뢰인들 중에는 제가 상담 때는 말을 시원시원하게 잘했는데 막상 법정에서는 말을 너무 하지 않아서 답답했다고 하는 의뢰인이 있습니다.

혹자는 오히려 제가 의뢰인을 혼내고 야단치고 의뢰인이 하는 말이 틀렸다고 하였기 때문에 재판에서도 판사를 상대로 지지 않고 그렇게 말해줄 것을 기대하여 사건을 맡겼다는 분도 계십니다. 어떤 의미로든 말이 중요하긴 할 것입니다.

그러한 기대에는 변호사가 말을 잘하면 일도 잘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전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말 잘하는 변호사가 일도 잘할까요? 말을 잘한다는 것은 그만큼 사건에 대한 본인의 이해가 높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조리있게 말을 잘할 수 있다면 적어도 이해 그 자체는 높다고 볼 수도 있겠죠.

허나 우리가 느끼는 ‘말 잘한다.’는 늘 이해가 높을 때의 모습으로만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어떤 경우엔 같은 말을 다른 말로 포장하여 얘기하는 것을 ‘말 잘한다.’라고 느끼기도 하고, 단순한 윽박과 야단을 가지고 카리스마 있다고 착각하기도 하며,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것을 갖고 정곡을 찔렀다고 잘못 받아들이고는 합니다.

그런데 변호사가 수행하는 모든 사건은 한 순간에 끝나지 않으므로 기일에 순간의 말을 잘하고 못하고가 결정적이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일반적입니다. 실제로 저는 제가 잘 이해하고 있는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판사님께 ‘추후 정리하여 서면으로 제출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립니다. 순간의 순발력을 과신하다가 사건을 망칠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오히려 정말 변호사가 일을 잘하려면 사건의 구도를 파악하고, 관련 법리가 무엇인지 리서치를 많이 하고, 의뢰인과 충분히 소통하여 적합한 증거가 무엇인지 살피고 이를 구해달라고 적극 요청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소위 품을 많이 들여야 하는 것이지요. 일을 잘하는데 있어서 오히려 말은 아주 부차적입니다.

미디어 시대가 되면서 말을 잘하는 사람은 스마트하고, 일도 잘하고, 능력이 있다라는 인식이 생긴 것 같습니다. 저는 단언코 이는 잘못된 편견이라고 여깁니다.

사람을 파악하는데 있어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무슨 일을 어떻게 해왔는지를 살피는 것입니다. 해온 일의 결과는 어떠한 경우에도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반면 말만 있는 자리에서는 항상 거짓이 함께 하기 마련이지요.

말 잘하는 변호사가 정말 일도 잘한다면, 모든 의뢰인들은 토론회나 발표회를 거쳐 변호사를 찾음이 옳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고, 변호사가 지금까지 수행한 사건이 무엇인지를 찾습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심지어 변호사 스스로 본인의 말재주를 과신해서 기일에 말로 상황을 지배하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종의 쇼맨십을 보이는 것인데 이렇게 백 번 천 번 얘기한다고 하더라도 조서에 기재되지 않는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주장을 잘 정리하였고 증거 역시 충분하여 사건에 자신이 있다면 굳이 재판 날에 길게 얘기할 이유가 없습니다. 기존 서면의 내용과 같다면 말은 부연에 불과하고, 기존 서면의 내용과 다르다면 말과 서면 중 하나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 될 뿐이니까요.

한편 본인의 말재주를 착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윽박지르고 꼬투리 잡고, 상대를 몰아세우고, 상대방의 주장을 왜곡하여 원만한 토론이 이뤄지지 아니하는 상황을 갖고, 본인이 상대방을 압도하였다고 여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김연기 변호사
김연기 변호사

그런데 그 과정은 상대방만이 보는 것이 아니라 심판자인 판사가 그것을 지켜보지요. 얼토당토 말도 안되는 얘기는 결국 판결에 의하여 다 배척되기 마련입니다. 순간의 쇼맨십을 보인 것 이상의 만족이 없는 것인데 그것을 마치 능력인 양 착각하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당장의 상황 하에서 거짓말이 검증되지 않는다고 해서 사실과 다른 얘기를 마구 늘어놓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중에 다 밝혀질 것이 분명함에도 일단 거짓말을 하여 상황의 우위를 확보하는 것입니다. 진실을 밝히는 절차는 결코 순간에 끝나지 않고 과정을 거치기 마련인데, 이러한 거짓말이 발각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는 것 자체가 참으로 우스운 일입니다. 

비단 변호사의 업무에 국한하지 아니하고, 그 사람이 정말로 일을 잘하는지, 자격이 있는지 여부는 그 사람이 말을 얼마나 잘하는지 여부와는 오히려 무관합니다. 그럼에도 토론회니 발표회니 하면서 말하는 자리로 사람을 검증할 수 있다고 여기는 자가 있다면 그 자는 진정으로 일을 해본 적이 없는 자에 불과합니다. 혹시라도 변호사를 찾으신다면 그러한 자는 꼭 피하시기를 바랍니다.

◆ 프로필

-연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우수 졸업

-아주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부동산)

-MBC시사매거진2580, 수원 T브로드, 경향신문 등에 자문

-現) 수원지방법원 민사조정위원

-現) 법률사무소 이김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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