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김웅식 기자] 고(故) 이건희 회장이 ‘정치는 4류’라고 한 지 26년이 흘렀건만 변한 게 없다. 외려 공인(公人)의 책임감도, 사인(私人)의 부끄러움도 상실한 ‘정치 건달들’이 더욱 판친다. 그들이 조선 예송논쟁 하듯 아무 말 대잔치와 말꼬리 잡기로 허송한 세월이 얼마인가. 

검증(檢證)이라는 미명하에 여야 간에 또 경선 중인 같은 당 후보들끼리 ‘네거티브’가 벌써 시작됐다. 선거는 상대를 떨어뜨려야 내가 되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이즈음 여권 대선주자들이 일종의 휴전 선언을 한 것은 네거티브 공방이 위험수위에 이르렀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예비경선 초반 방어 모드였던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바지’ 발언 등으로 수세에 몰렸다. 그러다 지난달 “방어만 하다 반칙을 당했다”며 역공에 나서면서 이낙연 전 대표 측과의 공방은 거칠어졌다. 

사람들은 부정적이고 자극적인 정보를 더 주목하고 오래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선거에 나선 후보들이 네거티브 캠페인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선거 때만 큰절하고 선거만 끝나면 유권자를 하대하는 정치인이 어디 한둘인가. 세상은 이미 저만큼 앞서가고 있는데 우리만 우물 안 개구리처럼 철 지난 ‘제왕적 정치인들’에게 국가의 운명을 맡기고 있는 불편한 진실이 안타깝게 다가온다. 

선거철이 되면 정치인들은 공약(公約)이 아닌 공약(空約)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런 것이 유권자들에게 먹혀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젠 예삿일이 돼 새롭지도 않다. 이는 바로 우리 정치의 후진성이라 할 수 있다.

요즘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들이 청년들에게 뭉텅이 현금을 주자는 약속을 쏟아내고 있다. 4·7 재·보궐선거에서 이반현상이 뚜렷해진 20대, 특히 ‘이대남’을 어르려는 거다. 

이재명 지사는 “대학 안 가는 청년들에게 해외여행비 1000만원을 지원해 주는 건 어떤가”라고 제안했고, 이낙연 전 대표는 “제대할 때 사회출발자금 같은 것을 한 3000만원 장만해 드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출생 때부터 20년간 국가가 적립해 사회초년생이 될 때 1억원짜리 통장을 만들어주자고 한다.

지난 수년간 우리나라의 가계·기업·정부 각 부문은 채무 급증을 경험했다. 이는 근본적으로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및 부동산 정책실패가 가져온 참담한 결과다. 거듭된 실패에도 정부가 정책 개선은커녕 '퍼주기'에만 급급하면서 가계와 기업을 '빚내기'로 몰아갔기 때문이다.

대선에 두 번 출마했던 모 후보는 결혼하면 1억원을,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100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공약했다. 또 “외교관보다 연예인이 더 나라를 알린다. 주택이 없다면 주택을 지원해주고 아파트가 없으면 작은 평수라도 한 채씩 지원하겠다.” 연예인 생일에 10만원씩 주고, 생일케이크는 택배로 배달해 주겠다고도 했다. 

국민을 섬기는 훌륭한 지도자는 동서고금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모두 스스로에게 리더인 사람들이었다. 리더는 자신의 일생 언행을 통해 묵묵히 보여주는 자다. 

우루과이 대통령을 지낸 호세 무히카(86)는 재임 시절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불렸다. 그는 취임 첫해인 2010년 본인 재산이 1800달러(203만원) 상당의 자동차 1대뿐이라고 신고했다. 이 차는 낡아빠진 1987년형 폭스바겐 ‘비틀’이었다.​

스웨덴의 타게 엘란데르 전 총리도 올바른 지도자를 이야기할 때 많이 거론되는 인물이다. 다음은 이정규 스웨덴 대사가 최근 SNS에 올린 내용이다. 

“그는 운동권 출신이었지만 23년간 총리를 하면서 각계각층 인물들과 스스럼없이 만나 대화와 타협을 했다. 11번 선거에서 승리했으나 권력의 절정에서 물러났다. 1969년 득표율 50%를 넘는 압승을 거두자 ‘지금은 새 인물이 필요하다’며 스스로 걸어 내려왔다. 그는 총리 관저에서 공식 집무만 보고 임대주택에 거주했다. 

막상 총리에서 퇴임하자 살 집이 없었다. 이를 안 국민들이 한적한 시골 마을에 별장을 지어주었다. 55년간 해로한 부인 아이나도 검소했다. 남편이 총리였지만 고등학교 화학교사를 계속했다. 그녀는 남편이 퇴임한 후 한 뭉치의 볼펜을 들고 총무 담당 장관을 찾아가 건네주었다. 볼펜에는 ‘스웨덴 정부’ 마크가 새겨져 있었다. 그녀는 ‘남편이 총리 때 쓰던 볼펜인데 이제 정부에 돌려주는 것이 맞다’고 했다.” 

내년 본선까지 여야 대선 주자들의 페어플레이를 기대해 본다.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경쟁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선거 당일에 많은 유권자가 투표에 참여해 국민 위에 군림하는 ‘제왕적 대통령’이 아닌,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는 ‘국민 머슴’ 지도자가 선택됐으면 한다. 

김웅식 편집국장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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