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김웅식 기자] 2000년대 들어 우리 건설사들은 해외사업에서 발생한 미청구공사 때문에 수천억 원에 달하는 손실을 기록한 바 있다. 건설사들이 해외에서 출혈경쟁을 벌이다 보니 터무니없는 낮은 가격으로 공사를 수주해 온 것이 탈이었다. 

건설사들이 저가 수주금액을 훌쩍 초과한 실제 공사비를 발주사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면 미청구공사는 증가한다. 미청구공사 상당 부분은 발주사들이 지급을 거절하면 결국 수천억원의 손실로 이어진다. 건설사들은 지난 수년 동안 해외사업의 부실을 털어내기 위해 허리띠를 조이며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기업의 실적 발표 때가 되면 수주기업의 미청구공사가 관심을 끈다. 잠재 리스크 중 하나로 여겨지는 미청구공사의 증감에 언론이 관심을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겠다.

잠재 부실 가능성이 있는 미청구공사의 증가는 기업의 재무 건전성에 위험을 알리는 적신호라 할 수 있다. 

건설업과 같은 수주기업은 매출채권을 통상적인 기업처럼 받는 게 어렵다. 업종 특성상 공사기간이 길기 때문이다. 일반 기업처럼 공사가 완료돼야만 돈을 받을 수 있다면, 공사가 진행 중인 기간에는 공사에 들어가는 모든 금액이 적자로 표현될 수가 있다. 

그래서 건설사와 같은 수주기업들은 ‘진행률에 따른 중도금을 매출로 계산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쉽게 말해 공사가 완료되지 않아도 현재 공사 진행률에 따라 그때그때 매출로 인정해주는 것이다.  

회계상 미청구공사는 매출로 인식된다. 동시에 손실 가능성도 갖고 있다. 시공사가 정해진 기간 안에 진행률 100%를 달성한다면 미청구공사는 매출채권으로 바뀌어 매출로 계상된다. 만약에 진행률이 100%를 초과하거나, 추가 공사금액이 들어갈 경우엔 손실로 뒤바뀔 가능성도 있다. 

수주금액 150억원, 총공사 예정액 100억원 공사를 예로 들어보자. 시공사에 문제가 생겨 공사 진행률이 110%가 된다면, 이 경우 시공사가 받아야 할 매출은 165억원이 된다. 

하지만 발주처 입장에서 진행률은 100%가 최대다. 발주처 입장에서 진행률 100%를 바탕으로 한 매출은 당초 수주금액 150억원이기 때문이다. 이때 입장 차이가 나는 미청구공사는 15억원이다. 미청구공사 15억원은 시공사에 손실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 2015년 대형 건설사들의 미청구공사 규모가 커져 부실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중동지역에서 저가수주 문제가 지적됐을 때다. 이때 많은 대형 건설사가 대규모 손실을 기록했고 이후 미청구공사는 건설사의 재무 건전성을 판별하는 중요한 변수가 됐다.

미청구공사가 수주기업에 위험요소로 작용하는지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악성 미청구공사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부실 폭탄’으로 간주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론 매출액 대비 일정 비율로 관리를 하면 문제될 게 없다는 설명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과거 몇몇 기업의 미청구공사액이 쌓여 대규모 적자를 발생시킨 일 때문에 미청구공사는 아예 있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치부하는 경우도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장사를 하면 외상값이 늘어나듯 미청구공사도 공사를 하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미청구공사는 공정률에 따라 기성금을 수령하는 건설사에 필요악이다. 예를 들어 기자재 조달 등 일시적으로 증가한 사업비가 기성금에 반영되지 않을 경우 미청구공사액이 증가하지만, 이는 사업 진행에 따라 자연스럽게 해소된다. 

반면에 간접비 등 발주처와 협의가 안 된 추가 사업비용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경우 발주처와의 협의를 통해 당초 계약금액 이상을 받아내야 하는데, 성공하지 못하면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개별 프로젝트의 계약 조건에 따라 미청구공사액이 늘어나는 경우도 있다. 일례로 발전소 건설의 경우, 터빈 등 주요 기자재는 발전소 부지에 설치가 돼야 발주처에 대금 청구가 가능해 터빈 자체를 제작하는 데 들어가는 초기비용은 한동안 미청구공사액으로 계상하게 된다.

현대건설은 수년 동안 미청구공사를 줄이며 부실위험을 털어내 왔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현대건설의 분기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올해 3월 말 미청구공사는 1조7814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 1조9763억원에 비해 9.9% 감소한 금액이다.  

중동지역 건설현장은 상대적으로 잠재적 부실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는데, 현대건설은 쿠웨이트,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지역 공사 미청구공사액을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업계에서는 전년 매출 대비 미청구공사 비중이 25%를 넘을 경우 위험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9조3201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매출 대비 미청구공사 비중은 19.8%로, 전년(19.9%) 대비 0.1%p 줄었다. 

대우건설의 미청구공사는 2015년 1조7200억원으로 정점을 찍었는데, 당시 자기자본(2조7933억원)과 비교했을 때 비중이 61.6%에 달했다. 하지만 이후 꾸준히 줄면서 2018년에는 9386억원으로 1조원 밑으로 내려갔고, 올해 1분기 말엔 8652억원까지 감소했다. 자기자본 대비 미청구공사액이 차지하는 비중도 30.2%로 개선됐다.

그간 대우건설의 약점으로 해외사업 리스크가 지목된 것은 해외사업 부실로 쓴맛을 본 탓이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는 평가다. 우선 부실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미청구공사 규모가 크게 줄어들었다. 일반적으로 수주기업에서 미청구공사가 줄어드는 것은 사업 진행이 순조로워 재무 건전성이 좋아지는 것으로 이해된다. 

미청구공사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영업이익이 증가하려면 매출을 늘려야 하고, 매출이 늘어나면 미청구공사도 자연적으로 증가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일시적인 미청구공사를 무조건 사업 리스크와 동일시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현행 기업회계의 원칙으로 보자면, 수주기업은 공사 도중 예상 손실을 합리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면 즉각 반영해야 한다. 하지만 건설사들은 실적발표 때 시장과 투자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되도록이면 좋은 면을 부각시키려고 애를 쓴다. 

한 기업의 전문 경영인(CEO)은 실적으로 본인의 경영능력이 평가받는다고 생각하기에 보다 나은 실적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지난 수년 동안 벌어진 일과 같이 CEO가 눈앞의 실적 때문에 ‘부실의 폭탄’을 키우는 경우는 없어야 할 것이다. 과욕은 화를 부를 수 있다. 

김웅식 편집국장 newswatch@newswatch.kr

저작권자 © 뉴스워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