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진열돼있는 계란 제품. /사진=연합뉴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진열돼있는 계란 제품. /사진=연합뉴스

[뉴스워치=김주경 기자]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계란 가격의 오름세가 좀처럼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불과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대형마트 전단지에 ‘계란 한 판에 3500원’ 자주 등장할 정도였다. 그 때는 아까운 줄 모르고 다이어트 할 때마다 사다 놓고, 상하면 버리곤 했다. 그만큼 누구나 좋아하고 쉽게 사먹을 수 있던 계란도 이제는 몇 번을 고민해 겨우 산다.

지난해 11월 한 농장에서 발생한 AI 여파로 계란값은 올 1월 7000원대로 급등한 이후 7개월 내내 비슷한 가격대를 이어가는 모습이다. 서민들의 단짝 식품 이었던 계란은 이제 2배 뛴 몸값을 자랑한다. 내 월급은 그대로인데, 계란 값만 오르니 박탈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해 AI 발생 이후 살처분된 산란계는 1700만 마리에 이른다. 이는 계란을 생산할 수 있는 산란계가 살처분되면서 계란 공급이 부족해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산란계가 알을 낳을 수 있으려면 6개월 이상 걸리는 만큼 계란값 안정에는 시간이 더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22일 소비자시민모임에 따르면 7월 셋째 주 대형마트에서 판매되는 계란 81개 가운데 38개(46.9%) 제품의 가격이 두달 전인 5월 셋째 주보다 최소 1.6%에서 최대 20.2%까지 치솟은 것으로 나타났다. 14개 제품은 가격 상승폭이 10%를 넘었다.

해당 기간 가격을 올리지 않은 43개 제품 중 32개 제품(39.5%)은 가격이 똑같았다. 쉽게 말해 지난 겨울부터 지속적으로 상승한 가격이 그대로 유지된 셈이다. 조금이나마(0.5~10.7%) 가격이 떨어진 제품은 11개(13.6%)에 그쳤다.

통계청 소비자물가 데이터 자료에서 비슷한 흐름세를 보이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6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달걀 가격은 1년 전과 비교해 무려 54.9%나 폭등한 상태다.

이는 당초 6월 말이면 가격이 안정세에 접어들 것이라는 예측과 정반대되는 모양새다. 앞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산하 농업관측본부는 ‘산란계 관측 6월호’에서 계란 가격이 6월 말이면 내려갈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은 바 있다.

계란값이 크게 뛰자 그제서야 정부는 부랴부랴 미국산 계란 수입에 나서고 20%를 할인하는 소비 쿠폰 지원에까지 나섰으나 그나마도 역부족인 상황이다.

정부가 계란 수입에 나선 건 AI 여파로 계란 한판 가격이 1만원을 웃돌았던 지난 2017년 이후 4년 만이다. 정부는 당초 6월 말 종료 예정이었던 수입 계란에 대한 무관세 조치도 연말까지 연장했다.

통계청이 이날 발표한 ‘2분기 가축동향 조사 결과’에 따르면 6월 기준 산란계 사육 마릿수는 6587만1000마리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3월(6211만)보다는 증가했지만 전년동기(7492만1000마리)에 비해서는 여전히 크게 부족한 수준이다.

더 큰 문제는 태어난 지 6개월(6개월령)이상인 산란계의 수다. 산란계는 5~6개월령부터 알을 낳는다. 2분기 6개월령 이상 산란계는 4846만 마리로, 평년(5338만 마리)의 90%가량이다. AI 사태 이후 빈 자리를 병아리 넣어 키우고 있지만, 아직 계란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엔 역부족인 어린 닭이 많다는 얘기다.

계란을 낳을 수 있는 산란계 월령은 6개월 이상인 만큼 지금부터 닭 입식(사육)이 늘어나도 계란 공급량이 정상화되는 데는 시간이 더 걸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실 우리가 모르는 진실이 하나 있다. 계란값 3000원 대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들여다봐야 한다. 계란은 우리나라 농축산물 가운데 100% 자급자족할 수 있는 식품이다. 그만큼 공급량이 넉넉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인지 중간유통상이나 유통업체들은 가격 결정권을 쥐고 있다 보니 항상 ‘갑’이었던 반면 농가들은 항상 ‘을’ 이어야만 했다. 계란 한판에 3000원이라는 가격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천정부지로 치솟는 계란값 안정화를 위해 기껏 내놓은 대책이 하반기 계란 수입을 상반기보다 수입 물량을 더 확대해 계란값 안정화를 이뤄내겠다는 것이다. 계란값을 잡으려 결국 정부가 고민한 것이 미국산 계란 수입이라니... 허무하기 이를데 없다.

정부는 올 1월부터 월별로 계속해 수입 물량을 확대하며 상반기에만 2억개가 넘는 계란을 들여왔다. 이에 하반기 계란 수입물량은 최소 2억개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물가 안정을 조정하는 역할을 맡은 기재부와 정부당국의 대응도 논란이다. 결국 2017년 계란 파동 당시 내놓은 외국산(태국산) 계란 수입을 재탕하는 것에 불과하다.

지난 21일 기재부 한 관계자는 상반기 수입란이 부족한 계란 공급을 보충하면서 가격이 더 올라가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했다면 하반기에는 수입 물량을 더 확대해 가격을 안정화시키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하니 그저 황당할 따름이다.

가뜩이나 양계농가들은 AI 피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2017년 당시 논란이 됐던 파동이 반면교사 삼아 농가와 유통 상 간 힘의 균형이 이뤄지길 기대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수입산에 기대면서 자체적인 수급방안을 강구하는 데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를 놓고 일각에서는 미국산 계란 수입이 일시적 조치가 아닌 사실상 시장 개방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그러한 이유다.

역대 최악의 AI 때문에 공급량이 일시적으로 부족해졌지만,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문제를 급하게 해결하려고 시장부터 개방해버리면, 가뜩이나 어려웠던 양계농가는 생존이 더 막막해질 수 있다.

아직 계란값은 요지부동이지만 흐름은 금세 바뀔 수 있다. 정부는 ‘제궤의혈(사소한 실수로 큰일을 망쳐버림)’을 되새겨야 한다.

김주경 기자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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