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칼럼] 저는 지난 칼럼에서 변호사가 사건에 임하는 경우 요건 사실에 대한 주장·증명을 잘해야 하지만 이와 동시에 요건 사실과는 무관한 사건의 동기나 배경 등도 중요하게 설명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동기 배경 등이 결국 우리가 사건을 이겨야만 하는 이유로 표출되는 경우를 가리켜 ‘명분’이라고 설명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명분’을 객관적으로 표현하면 ‘정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황’을 잘 설명하는 것이 중요할까요? 이것은 맞습니다. 결국 그 정황이 명분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황’이 중요한 것일까요? 이렇게 질문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정황 ‘사실’은 사건의 동기나 배경에 해당하거나 문제되는 직접 사실을 추단할 수 있는 간접 사실로서 사건의 실체를 확인하는데 아주 유용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정황 증거는 이러한 간접 사실을 증명하는 증거로서 결국 증거가 될 수 있는 자격(증거능력)이 있는지 또는 증명력(신빙성)이 있는지에 대한 판단을 거쳐야 비로소 증거로 쓰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에 정황 사실과 정황 증거는 서로 명확히 구별되어 언급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양 자를 혼동하여 정황이라고만 설명을 합니다. 이 때문에 정황 증거마저도 마치 정황 사실처럼 취급되어 그 증거능력이나 신빙성에 대한 판단을 거치지 아니한 채 마치 그 자체로 사실인 양 다루어지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정황 증거가 정황 사실처럼 잘못 취급된 예를 살피겠습니다. 한겨레의 2021. 7. 19.자 기사를 살피면, ‘윤석열, 2011년 삼부토건서 골프접대·향응·선물 받은 정황’이라는 표제 하에 윤석열 대통령 선거 예비후보가 조남욱 전 삼부토건 회장으로부터 골프접대 등을 받은 것이 의심되는 정황 ‘사실’이 있는 양 보도가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실제 소송 절차를 거치게 되면, 한겨레가 드는 정황은 모두 정황증거에 불과하게 됩니다. 우선 일정표의 기재만을 놓고 살피겠습니다.

① 한겨레는 조남욱 전 삼부토건 회장 비서실의 달력 일정표를 입수하였다고 주장하나, 이것이 실제로 삼부토건 회장 비서실의 달력 일정표인지 자체가 문제됩니다.

② 삼부토건 회장 비서실의 달력 일정표가 맞다고 하더라도, 그 기재 글씨가 조남욱 전 회장 또는 회장 비서실 구성원에 의하여 작성된 것인지도 문제가 됩니다. 제3자가 기재하였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③ 조남욱 전 회장 측이 그 글씨를 썼다고 하더라도, 그 글씨가 사실과 달리 작성되었을 수 있습니다. 사후에 작출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④ 사실에 부합하는 일정이 기록이 되었더라도, 실제로 그대로 일정이 수행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⑤ 2012. 3. 11.자 일정에는 윤석열 대통령 선거 예비후보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고, 그 일정이 결혼식으로 특정되어 있으나, 2011. 4. 2.자 일정에는 ‘윤검’, 2011. 8. 13.자 일정에는 ‘윤검사’라고 기재가 되어있는 바, 이 자체로 윤검 또는 윤검사가 윤석열 대통령 선거 예비후보일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위 달력 일정표의 내용이 제3자의 진술에 의하여 뒷받침된다고 하더라도, 이는 결국 ‘전문(傳聞)’에 해당하는 바, 그 진술자 본인의 진술이 확보되지 아니하는 한 민사에서는 신빙성이 인정되기 어려운 증거에 불과하고 형사에서는 그 자체로 증거능력이 없는 증거가 될 뿐입니다.

즉 한겨레 보도 내용의 근거가 된 것은 모두 당장 믿을 수 있는지 자체가 의심되는 정황 증거의 나열에 따른 추론이고 직접 증거에 의해 인정된 정황 사실이 아니며, 그 정황 증거가 증거로서 가치가 있는지 자체가 아직 검토되지 아니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한겨레의 보도 내용을 보면, ‘윤 전 총장이 대검 중수2과장으로 재직하던 2011년 4월 당시 조 전 회장과 골프 회동을 했다는 점은 그가 2019년 7월 8일 국회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답변한 내용과도 다소 배치된다.’ 라고 보도한 바, 이는 단순한 추측이나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 아니라 확언하여 2011년 4월 당시 골프회동이 있었다고 단언한 것인데, 이는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정황 증거만으로 사실을 단정한 것으로서 잘못된 것입니다.

반면 정황 사실이 결국 직접 사실에 대한 강한 근거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청와대 경호관이 김정숙 여사의 수영과외를 하였다는 조선일보의 보도가 그 예입니다.

청와대 경호처는 김정숙 여사가 청와대 경호관으로부터 수영강습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조선일보를 상대로 하여 정정보도 청구의 소를 제기하였습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청와대 신입 경호관이 선발부에서 2~3개월 근무 뒤 가족부로 배치된 점, 가족부는 수 년 경력의 베테랑이 주로 가는 자리라는 점, 위 신입 경호관은 한국체대를 졸업한 자로서 부서 이전 전 경호처 경호본부가 주최한 부서 대항 수영 대회에서 남성 경호관보다 뛰어난 실력을 발휘한 점을 근거로 들어, 청와대 신입 경호관이 김정숙 여사의 수영강습을 위하여 가족부로 배치된 것이라고 보도하였습니다.

위 사실들은 김정숙 여사가 청와대 신입 경호관으로부터 수영강습을 받았는지 여부와는 직접 관련 있는 사실이 아닙니다. 모두 정황 사실이 불과합니다. 그러나 이 정황 사실들은 모두 진실한 것으로서 더 이상의 신빙성의 판단을 받을 일이 아니었습니다.

김연기 변호사
김연기 변호사

그렇기에 법원은 위 사실에 더하여 청와대 경호처가 ‘올림픽 대비 조직 개편으로 신입 경호관이 선발부에서 2~3개월 근무 뒤 가족부로 배치된 다른 사례’를 제출하지도 않았고, 위 청와대 신입 경호관이 ‘뛰어난 수영 실력’ 외에 이례적으로 가족부로 배치될 수 있었던 다른 이유 역시도 제시하지 못한 것을 근거로 들어 2021. 7. 20.자 판결로 청와대 경호처의 조선일보에 대한 정정보도 청구를 기각하였습니다.

즉 조선일보의 보도는 모두 정황 사실에 의한 것으로서 증거능력 및 증명력이 제대로 검토되지도 않은 정황 증거의 나열로 주장을 마치 사실처럼 보도한 한겨레의 보도와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결국 증거로서의 가치가 없는 정황 증거는 증거가 아닙니다. 이것이 법원의 판결에 담기는 경우, 증거가 부족한 경우로 평가받습니다. 증거가 부족하다는 표현은 법원 역시 신이 아니므로 모든 진실을 알 수 없다는 한계 때문에 기재하는 겸손의 표현일 뿐, 실제를 살피면 주장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없는 경우와 같게 취급이 됩니다.

즉 증거로서의 가치가 없는 정황 증거의 나열로 주장을 하는 경우, 이는 증거 없이 주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소송에서 이러한 변론을 유지하는 경우, 그 어떤 변호사도 패소를 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 프로필

-연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우수 졸업

-아주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부동산)

-MBC시사매거진2580, 수원 T브로드, 경향신문 등에 자문

-現) 수원지방법원 민사조정위원

-現) 법률사무소 이김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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