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김웅식 기자] 종합일간지 양쪽 지면 전체를 공동주택 분양 내용이 덮고 있는 걸 종종 발견한다. 그 내용은 어디에서 분양을 하는데 입지 조건과 교통, 편의시설이 우수해 이곳 조합원이 되면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곳 공동주택을 분양받지 않으면 왠지 모르게 손해 볼 것 같은 생각에 씁쓸한 마음 지울 수 없다. 

“이곳 아파트를 A건설이 시공하는 게 맞나요?”

건설사 홍보실에 근무할 때 가끔 지역민으로부터 이런 전화를 받았다. 지역주택조합 조합원이 되고 싶은데, 시공사가 A건설이 맞는지 확인 차 전화를 한 것이었다. 담당 부서에 확인해 보면, 아직 시공 계약이 안 된 상태에서 지역주택조합이 조합원을 모집할 목적으로 대형 건설사를 내세워 광고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일부 지역주택조합은 ‘1군 건설사’의 시공이 확정됐다는 식으로 설명하지만 진짜로 시공사가 확정된 경우는 거의 없다. 조합원들은 가입 후에야 뒤늦게 계약 체결이 되지 않은 채 이름만 빌려온 ‘시공 예정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 토지 확보도 ‘90% 이상’ 완료됐다는 식의 광고는 의심해보는 것이 좋다. 이중 실제 토지거래 계약을 체결한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올해 초, 서울 동대문구의 A동 지역주택 업무대행사 회장과 용역업체 회장 등 11명이 지역주택조합사기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은 토지가 확보되지 않았는데도 토지확보율을 속여 조합원을 모집해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125명으로부터 60억원을 편취했다.

조합가입비 등의 명목으로 이들이 받아낸 계약금은 600억원 규모에 달하며 지역주택조합에 가입한 사람만 해도 900여명이나 됐다. 이들은 편취 분담금을 명품 구입이나 개인채무 변제, 변호사 비용 등 사적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주택조합은 6개월 이상 일정 지역에 거주한 무주택자나 전용 85㎡ 이하 소형주택 소유주들이 공동으로 짓는 주택이다. 시행사가 아닌 조합원이 직접 토지를 매입하고, 시공사를 선정해 아파트를 짓는 방식이다. 일반 재개발·재건축 사업과 다른 개념이다. ​

재개발 사업의 경우 입주까지 길게는 10년 이상 걸리지만 지역주택조합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시행사를 끼지 않고 조합원이 직접 토지를 매입하다 보니 시세보다 20~30%가량 저렴한 가격으로 새 아파트를 받는 점도 매력이다. 

사업 과정을 보면 조합 설립과 조합원 모집, 지구 단위 접수, 토지 구입, 사업계획 승인(건축심의), 철거 후 착공 순이다. 조합이나 업무대행사가 아파트 가구 수의 절반 이상을 조합원으로 모집하면 시공사와 도급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보통 가입비 명목으로 조합원에게 돈을 받은 뒤 이를 토지 구입에 활용한다. ​

하지만 실제로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는 매우 어렵고 오히려 허위, 과장 광고로 조합원들의 재산을 뺏어가는 지역주택조합사기가 성행하는 상황이다. 지역주택조합에 한 번 가입하면 탈퇴를 하거나 계약금을 돌려받기가 쉽지 않으며 사업이 추진된다고 해도 토지매입 등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아 실제 입주까지는 10년 이상 소요되어 막대한 부담을 초래하기 일쑤다. 당초 예상보다 사업 진행이 늦어지면 조합원들의 분담금이 몇 배로 급증하는 사례도 많다.

몇 년 전 B건설이 광주광역시 북구에서 지역주택사업을 하면서 “사업성도 괜찮고 진행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될 게 없다”면서 “건축심의 및 인·허가를 받으면 곧 착공이 가능하다”는 장밋빛 계획을 내세우며 조합원들을 안심시켰다.

문제는 B건설의 교묘한 ‘영업 행위’로 해당 사업장에서 조합에 가입한 지역 주민들로부터 분담금 수백억원을 거둬들이는 데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얘기다. 여기서 더 큰 문제는 B건설이 지역주택조합사업에서 발을 빼면서 사업이 무산 위기에 놓였고, 그간 들어간 사업추진 비용 등 분담금 129억원의 행방이 묘연해졌다는 점이다.

최근 부산 서구의 한 주택개발 구역에서 지역주택조합과 가로주택조합이 동시에 조합 설립 및 사업 승인을 받기 위해 조합원을 모집하면서 갈등을 빚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사전분양 광고 등 불법성 행위가 이뤄져 주민 피해가 우려된다.

전문가들은 지역주택조합 피해를 줄이려면 장기간 사업이 지연되는 조합의 해산을 강제할 수 있도록 하고, 조합원을 속이는 허위광고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웅식 편집국장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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