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김웅식 기자] ‘장애인고용 촉진 및 직업 재활법’에 따르면 국가·지방자치단체와 50인 이상 상시 근로자를 고용하는 공공기관은 정원의 3.4% 이상 의무적으로 장애인을 고용해야 한다. 

고용노동부는 매년 장애인 고용이 현저하게 낮은 공공기관·기업의 명단과 근무자 수 등을 구체적으로 공표한다. 현행법상 장애인 의무 고용비율을 못 맞출 경우 기업들은 고용노동부가 매년 조정 고시하는 기준에 따라 장애인 고용부담금을 내도록 돼 있다. 

최근 보도로 알려진 1037개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의 지난해 고용부담금 현황을 보면, 17개 시·도교육청이 400억 원으로 가장 많은 돈을 물었다. 중앙부처 가운데서는 교육부와 산하기관이 94억7000만 원으로 가장 많았고, 뒤이어 국방부와 산하기관도 52억9000만 원이나 됐다. 전체 부담금 총액은 892억 원이다.

특히 장애인 의무고용제를 관리하고 부담금도 받는 고용노동부와 산하기관은 3억8000만 원을 부과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상시 근로자 수가 50명이 넘어 장애인 의무고용 대상인 공공기관 가운데, 지난해 12월을 기준으로 예술경영지원센터,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태권도진흥재단, 한국원자력안전재단 등 8개 기관은 장애인을 단 한 명도 고용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기초과학연구원 등은 장애인 고용률이 0.5%에 그쳤다. 민간 부문에서도 장애인 고용을 늘려야 한다며 솔선수범하겠다던 정부, 정작 기존 제도도 제대로 안 지킨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지난 2019년 5월, SK그룹 최태원 회장은 사회취약 계층의 고용을 늘리기 위해 계열사 대표들에게 특명을 내린다. 

“올해부터는 장애인 의무 고용률 미달기업이 한 곳도 나와서는 안 된다.”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장애인 고용을 확대하라.” 

SK그룹의 결단에는 최태원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장애인고용 확대가 다소 늦은 결정인 것은 사실이었지만 당시 돋보이는 조치로 박수를 받을 만했다. 그동안 누구도 가보지 못했던 길을 민간 대기업 총수가 앞장서서 모범을 보이기로 한 것이다. 

국가기관이나 공공기관에서조차 법으로 정해 놓은 장애인고용 비율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게 우리 현실이다. 비장애인에 비해 능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선입견으로 장애인 채용에 소극적이다. 

우리 사회는 취약계층에 대한 배려를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있지만, 기업들이 이런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지는 의문이 든다. 통상 기업들은 그동안 장애인을 채용하기보다는 고용 부담금을 내는 쪽을 선택해 왔다. 사업장 특성에 따라 장애인이 일하기 어려운 강도 높은 업무가 있기 때문이라는 게 기업들 설명이었다. 

SK그룹은 재작년부터 장애인고용 확대에 이전과는 다르게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SK그룹 관계자는 “우리 회사에는 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사고방식 자체가 문제”라며 “만약 사업장 내에 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면 그에 맞는 일자리를 만들어서라도 장애인고용을 획기적으로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없는 일자리를 만들어서라도 장애인 채용을 늘리겠다는 데서 SK그룹의 진정성을 읽을 수 있다. SK그룹 계열사 최고경영자(CEO)가 ‘옷 벗을 각오’로 장애인고용에 적극 나설 것을 천명한 것이다.

SK그룹에 따르면, 2019년 기준 SK의 장애인 신규 채용은 1000명(고용인정 기준)을 넘었다. 전체 장애인 구성원은 2018년 1770명보다 60% 이상 증가하며 2800여명에 달했다. SK는 10년 만에 고용의무 불이행 공표 대상에서 빠졌고, 주요 계열사들은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초과 달성했다.

SK그룹의 장애인 채용은 다각도로 이뤄졌다. SK㈜는 2019년 장애인 바리스타 26명을 직접 채용했으며, 중증장애인 고용을 확대하기 위해 6개 관계사가 6개 자회사형 표준사업장을 만들었다. 표준사업장은 출자지분의 50%를 넘는 자회사가 전체 직원의 30% 이상, 10명 이상을 장애인으로 고용하면 모회사가 고용한 것으로 인정하는 제도다.

SK이노베이션은 식기·식음료 관리회사인 행복키움을 설립해 장애인 29명을 채용했고, SK텔레콤, SK실트론 등이 인쇄물 제작, 헬스케어, 조경 등 관련 표준사업장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SK㈜,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SK브로드밴드, SK머티리얼즈, SK실트론 등 6개사는 법정 의무고용률(민간기업) 3.1%를 넘겼다.

지난달 29일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번에 통과된 장애인고용촉진법에 따라 장애인 의무고용률(현재 3.4%)은 내년부터 2023년까지 3.6%로, 2024년 이후 3.8%로 점진적으로 오르게 된다. 공공부문의 장애인고용 확대를 통한 장애인 일자리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게 개정법률안의 취지다. 

우리 사회는 장애인의 취업과 관련해 제도적인 지원책을 갖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편견 없이 장애인에게 취업문을 개방하는 곳은 많지 않다. 장애인에게 대기업 취업은 여전히 높은 벽이다. 

장애인들이 꿈을 이뤄가기 위한 취업문이 크게 열리고, 이들이 희망의 날개를 달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야 할 것이다. 그러자면 여타 대기업, 그리고 공공기관도 SK그룹처럼 장애인고용에 전향적인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 

김웅식 편집국장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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