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칼럼] 의뢰인과 상담을 하다보면 의례 하게 되는 얘기가 있습니다. ‘승소 가능성이 얼마나 되냐?’ 라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의뢰인 입장에서는 변호사가 사건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 전략이 어떻게 되는지 등을 설명하는 것보다는 ‘이 사건은 이긴다.’라는 태도를 보여주기를 더욱 바랄 것입니다.

변호사의 사무 자체는 위임사무로서 사무처리에 그 목적이 있지 결과의 보장을 약속하는 것은 아니지만 의뢰인 입장에서는 당연히 이기기 위해서 변호사를 찾습니다. 변호사 역시 이것을 잘 알지만 동시에 발언에 책임을 져야 하므로, 설명에 고민을 더하기 마련입니다.

저는 변호사로서의 책임을 좀 더 중요시 생각하고, 이에 상담을 상당히 보수적으로 하는 편입니다. 이것이 결국은 의뢰인에게도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변호사가 처음 되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변한 바가 없습니다.

다만 승소 가능성을 설명하는 과정은 예전과 지금이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사실관계를 살피고, 제출 가능한 증거를 고려하며, 상대방의 예상되는 반박을 아울러 살펴 승소 가능성을 계산했습니다. 요건사실(권리의 발생, 장애, 소멸 등 각 법률효과의 발생요건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사실)을 따라가다 보면 당연히 결론이 나오기 마련이므로, 이를 잘 살피는 것이 중요하지 기타 당사자의 동기나 의도, 주변의 상황 등은 고려할 것이 아니라고 설명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설명을 많이 다르게 합니다. ‘판결은 사람이 하는 것이지 AI(인공지능)가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모든 판사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아는 판사들은 대부분 사건 전반의 내용을 살펴, 결론을 정하고 이유를 만든다고 합니다.

즉 우리가 다루는 것은 생각으로 구름처럼 떠 있는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두 다리를 땅에 디디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건이므로, 법원은 기계적으로 주장과 증거만을 살피지 아니하고, 그 사람의 입장, 동기나 의도, 사건의 상황 등까지도 아울러 고려를 하여 구체적으로 타당한 결론이 무엇인지까지도 고민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에 변호사는 마땅히 요건사실에 대한 주장·증명을 잘해야 하지만 이와 동시에 사건에 임하는 당사자를 위하여 요건사실과는 무관한 내용에 대하여도 의뢰인과 충분히 소통해야 하고, 법원이 의뢰인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도록 잘 설명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현재 제 생각은 이러하므로, 가끔은 예전에 당사자가 사건의 동기나 배경 등을 중요하게 설명하였던 경우, ‘그러한 주장은 법을 모르는 사람의 얘기에 불과하다. 증거를 따라가면 결론은 당연히 나온다.’라고 설명하였던 제 자신이 문득문득 부끄러워지기도 합니다.

저는 앞서 설명한 모든 것들을 통틀어 ‘명분’이라고 설명합니다. 결국 우리가 이겨야 할 ‘명분’이 있어야 하고, 법원에도 이 명분까지 잘 설명하여야 한다고 알립니다.

그 유명한 삼국지의 내용을 언급해보겠습니다. 유비는 본인이 전한 경제의 아들인 중산정왕 유승의 먼 후손, 즉 황족이라고 주장하였고, 촉한을 건국하면서도 400년 한나라의 계승을 천명했습니다. 이는 후한말의 한실부흥이라는 명분론에 근거한 것으로서 한나라는 전한과 후한을 합쳐 400년간 지속되었고, 이 기간의 통치로 인하여 한실에 대한 충성심을 갖고 있는 자들이 다수 있었으므로, 전한이 망하고 후한이 생겼듯이 후한이 망하고 촉한이 생기는 것 역시 한나라를 계승하는 것으로서 정통성이 있는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조조 역시 원소에 비하여 지극히 세력이 작았음에도, 헌제를 옹립하면서 황실의 보호자라는 명분을 얻었고, 이에 그 세력을 매우 확장시킬 수 있었으며, 헌제를 더 이상 옹립할 필요가 없어진 때까지도 끝까지 한나라의 신하로 남았습니다. 한나라가 가진 상징성과 조조가 애초에 추구한 명분을 결코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제갈량이 북벌을 감행한 이유는 유비 때부터의 대전략인 융중대(형주와 익주를 영유함으로써 조조, 손권과 함께 중국을 셋으로 나누는 것, 천하삼분지계)가 폐기됨에 따라 이를 대체하기 위하여 옹양주 겸병이 필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지만, 제갈량은 이러한 실질적인 필요를 언급하기보다는 ‘촉한은 후한을 계승한 왕조고 후한을 무너뜨린 위나라를 정벌해야 한다는 유비의 사명을 제갈량이 계승한다’는 명분을 더욱 강조하였습니다. 북벌에 들어가는 큰 비용과 이에 따른 부담을 유비의 사명을 잇는다는 명분으로 정당화한 것입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가장 국민의 입에 오르는 대선 후보는 누가 뭐라고 해도 윤석열 전 검찰총장일 것입니다. 여론조사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대체로 대선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이처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지지하는 이유는 그가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유재수 감찰무마 의혹’, ‘조국 일가 비리 의혹’, ‘김학의 불법출금 의혹’, ‘월성 원전 조기폐쇄 의혹’ 등과 관련하여 살아있는 권력과 맞서 싸웠기 때문이고,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으로부터 직무배제 결정, 징계 등을 받았음에도 법원으로부터 집행정지 등의 판단을 받아오며 본인의 직무집행과 관련한 정당성을 축적하여 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즉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는 살아있는 권력과 맞서 싸워오면서 정의와 공정을 추구하였다는 ‘축적된 명분’이 있습니다. 그 축적된 명분이 있었기에 그는 ‘검수완박은 부패완판’이라며 ‘이 사회가 어렵게 쌓아 올린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검찰에서 할 일은 여기까지’라고 하고 사퇴할 수 있었던 것이고, 그 사퇴에 많은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대서사가 없었다면, 사정기관의 장이 대선에 바로 출마하는 것에 많은 국민들이 공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더 큰 권력을 추구하기 위하여 대선에 출마하는 것일 뿐이라고 여기는 여론이 훨씬 많았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축적된 명분을 가리켜 정치를 하기 위한 쇼 아니었냐고 폄하하는 여론도 있기는 합니다.

물론 유비, 조조, 제갈량, 윤석열 등의 유명한 인물들의 명분을 갖고, 소송사건의 수행에 있어 명분의 제시 역시 중요하다고 설명하는 것이 어쩌면 지나친 비약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김연기 변호사
김연기 변호사

그러나 일반 시민의 경우, 아직도 평생 법원에 갈 일이 없는 것이 오히려 현실입니다. 각 의뢰인의 사건은 어찌 보면 법원의 그 수많은 사건 중 한 사건에 불과할 수도 있겠지만,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는 일생일대의 사건인 것이고, 건곤일척의 자세로 임할 수밖에 없는 사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이제는 사건의 명분 역시 충분히 살피고, 주장에 최대한 반영하려고 합니다. 제 일을 도와주는 변호사들에게도 요건사실에만 맞춰 서면을 간명히 쓰는 것은 학생 마인드라고 얘기하기도 합니다. 

제 변론의 방향이나 방법이 무조건 정답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배경의 설명에 치우쳐 진짜 중요한 법률상 주장을 놓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다만 법 기술에 매몰된 나머지 ‘법원이 우리 의뢰인의 손을 왜 들어줘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소홀히 하는 일 역시 없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역시 잘 설명할 수 있는 변호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해봅니다.

◆ 프로필

-연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우수 졸업

-아주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부동산)

-MBC시사매거진2580, 수원 T브로드, 경향신문 등에 자문

-現) 수원지방법원 민사조정위원

-現) 법률사무소 이김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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