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김웅식 기자] 선거철이 되면 정치인들은 공약(公約)이 아닌 공약(空約)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런 것이 유권자들에게 먹혀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는 바로 우리 정치의 후진성이라 할 수 있다.

일단 권력 게임에서 이기고 봐야 하는 정치가 지금 우리 앞에 있다. 여론조사 지지율만 높으면 되는 정치에 모두가 매진하고 있을 뿐이다. 

요즘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들이 청년들에게 뭉텅이 현금을 주자는 약속을 쏟아내고 있다. 4·7 재·보궐선거에서 이반현상이 뚜렷해진 20대, 특히 ‘이대남’을 어르려는 거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대학 안 가는 청년들에게 해외여행비 1000만원을 지원해 주는 건 어떤가”라고 제안했고,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제대할 때 사회출발자금 같은 것을 한 3000만 원 장만해 드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출생 때부터 20년간 국가가 적립해 사회초년생이 될 때 1억 원짜리 통장을 만들어주자고 한다.

지난 수년간 우리나라의 가계·기업·정부 각 부문은 채무 급증을 경험했다. 이는 근본적으로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및 부동산 정책실패가 가져온 참담한 결과다. 거듭된 실패에도 정부가 정책 개선은커녕 '퍼주기'에만 급급하면서 가계와 기업을 '빚내기'로 몰아갔기 때문이다.

대선에 두 번 출마했던 모 후보는 결혼하면 1억원을,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100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공약했다. 또 “외교관보다 연예인이 더 나라를 알린다. 주택이 없다면 주택을 지원해주고 아파트가 없으면 작은 평수라도 한 채씩 지원하겠다.” 연예인 생일에 10만원씩 주고, 생일케이크는 택배로 배달해 주겠다고도 했다. 

1992년 대선에서 정주영 후보는 “경부고속도로를 복층으로 만들고, 아파트는 반값에 분양하겠다”고 공약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지난 보궐선거에서 정부·여당은 가덕도신공항특별법만 통과시키면 선거 열세를 뒤집을 수 있다며 올인했지만 무위로 끝났다. 현재 여권에서 거론되는 2차 전 국민재난지원금에 대한 시민들 반응도 부정적이다. 피해 업종에 대한 두터운 지원이 시급하다는 여론이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는다. 

복지의 제도적 접근이 아닌 단순한 선거용 돈 풀기에 국민이 넘어갈 거라고 보면 오산이다. 대선이 임박할수록 포퓰리즘 공약이 넘쳐나겠지만 투표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걸 후보들은 깨달을 때가 됐다.

민주당은 다수의 서민층을 대변한다는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편 가르기 선거 전술을 구사해왔다. 민주당이 1가구 1주택자의 종합부동산세 부과 기준을 공시가 상위 2%로 변경하기로 당론을 정한 것도 국민을 2%와 98%로 나누는 계층 갈라치기다. 

정부와 여당이 2차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해 재난지원금을 지급할 때 최상위 고소득층을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 소득 하위 70% 가구에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고 전 국민에게는 신용카드 캐시백을 주는 패키지 지원 방안을 여당에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진표 민주당 부동산특위 위원장은 “이걸(상위 2% 종부세 부과안) 못해 서울·부산에서 100만 표를 잃으면 대선에서 이길 수 없다”고 주장했다. 내년 대선에서 승리할 수만 있다면 과세표준과 납세 의무자를 특정하지 못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발상이다.

고(故) 이건희 회장이 ‘정치는 4류’라고 한 지 26년이 흘렀건만 변한 게 없다. 외려 공인(公人)의 책임감도, 사인(私人)의 부끄러움도 상실한 ‘정치 건달들’이 더욱 판친다. 그들이 조선 예송논쟁 하듯 아무말 대잔치와 말꼬리 잡기로 허송한 세월이 얼마인가. 

선거 때만 되면 회자됐던 우스갯소리가 있다. 한 정치인이 지방 도시를 찾아 열변을 토했다. “제가 당선되면 이 세상에서 가장 튼튼하고 아름다운 다리를 놓아드리겠습니다.” 술렁이는 청중 속에서 한 청년이 용감하게 외쳤다. “우리 고장에는 강이 없는데요?” 그러자 그 정치인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답변했다. “그러면 강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당선이 전부인 정치인에게 강을 놓아주겠다는 허언(虛言)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김웅식 편집국장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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