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칼럼] 최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제철·닛산화학·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각하했습니다. 소의 각하(소 각하 판결)는 소 제기(법원에 판결을 해달라는 당사자의 신청)가 적법하기 위하여 갖추어야 하는 요건(소송요건)이 갖춰지지 아니한 경우 본안(사건의 내용)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아니하고 소 제기 자체를 배척하는 재판을 의미합니다.

위 서울중앙지방법원 재판부는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이나 일본 국민에 대해 보유한 개인 청구권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의해 소멸되거나 포기됐다고 볼 수 없지만, 소송으로 이를 행사하는 것은 제한된다”고 밝혀 소송요건 자체가 흠결되었다고 보았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가 승소해) 강제 집행까지 마칠 경우의 국제적 역효과까지 고려하면 강제집행은 국가의 안전 보장과 질서 유지라는 헌법상의 대원칙을 침해하는 것으로 권리 남용”이라고도 보았습니다.

이러한 위 서울중앙지방법원 재판부의 입장은 2018년에 있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내용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입니다.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한일 청구권 협정은 양국 간 재정적·민사적 채권, 채무 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며 “일본이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피해 배상을 부인했기 때문에 피해자 개인의 위자료 청구권이 협정에 포함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대법원 판결에 반하는 위 서울중앙지방법원 판결은 잘못된 것인지, 대법원 판결에 배치되는 하급심 판결이 존재할 수 있는지 등이 그것입니다.

법원조직법 제8조는 “상급심 재판의 기속력”이라는 제목 하에 “상급법원 재판에서의 판단은 해당 사건에 관하여 하급심(하급심)을 기속(기속)한다.”라고 정하고 있습니다. 이 조항에 따르면 대법원 판결은 해당 사건에 한하여 하급심만을 기속할 뿐입니다. 다른 사건에 있어서까지 대법원 판결이 기속력을 미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한편 법원조직법 제7조 제1항 제3호는 판례를 변경할 때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의하도록 하고 있는데, 대법원 1995. 8. 22. 선고 94다43078 판결에 따르면, “상고법원이 파기이유로 한 법률상의 판단은 항소심뿐만 아니라 상고법원도 기속하므로 당해 사건에 관하여 상고법원도 그와 다른 견해를 취할 수 없고, 이 경우 종전의 대법원판례와 배치되는 내용의 파기 환송판결이 전원합의체가 아닌 소부에서 행해졌다고 하더라도 파기이유로 한 법률상의 판단은 하급심 및 상고심을 모두 기속한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말인 즉슨 종전 대법원 판결에 반하는 파기 환송판결이 소부에서 행해진 경우, 이는 법원조직법 제7조 제1항 제3호에 위반되어 된 것이지만, 그럼에도 법원조직법 제8조에 따라 이 파기 환송판결이 당해 사건에 관하여 기속력을 가지고, 종전 대법원 판결은 일반적 기속력을 갖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법원조직법과 대법원의 판결은 스스로 대법원 판결이 일반적 기속력을 갖지 못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대법원 판결 간의 모순 역시도 인정할 수밖에 없음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대법원 판결 하나를 언급하겠습니다. 대법원 2020. 7. 16. 선고 2019도13328 판결입니다. 그 유명한 이재명 경기도지사 판결입니다.

대법원 다수 의견은 “후보자등이 후보자 토론회에 참여하여 질문·답변을 하거나 주장·반론을 하는 것은, 그것이 토론회의 주제나 맥락과 관련 없이 일방적으로 허위의 사실을 드러내어 알리려는 의도에서 적극적으로 허위사실을 표명한 것이라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 사건 조항에 의하여 허위사실공표죄로 처벌할 수 없다”라고 판시하였습니다. 반대해석을 하면 ‘후보자등이 후보자 토론회에 참여하여 질문·답변을 하거나 주장·반론을 하는 경우, 그것이 토론회의 주제나 맥락과 관련만 있으면 허위로 그 질문·답변을 하거나 주장·반론을 하더라도 허위사실공표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이 판결의 정치적 영향력이나 구체적인 사건의 내용을 차치하고 살피면, 이 판결은 공표의 사전적 개념을 지나치게 축소한 것으로 보입니다. 공표의 사전적 의미는 ‘여러 사람에게 널리 드러내어 알리다’라는 의미고, 여기에 질문·답변이나 주장·반론의 상황이 전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화자의 의도에 따라 공표의 의미가 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기에 이 판결은 다수의견(파기환송) 7명, 반대의견(상고기각) 5명으로 그 의견도 첨예하게 대립이 되었습니다. 대법원 판결이라고 하여 그 의미가 당연히 일반적인 이해를 불러일으키는 것도 아니고, 대법원의 대법관 간에도 그 의견이 당연히 다를 수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실제 법원의 재판을 살피면 당해 사건에서 결국 종전의 대법원 판결을 변경하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지 아니한다면, 법원은 이미 있은 대법원 판결의 논리에 구애받아 이와 다른 판단을 하지 아니하려고 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대부분의 변호사들 역시 대법원 판결을 또 하나의 금과옥조처럼 받아들이고 별도의 논증 없이 대법원 판결이 이러하니까 당연히 결론도 이에 따라야 한다는 변론을 합니다.

우리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라고 정하고 있습니다. 그 주체가 법원이 아니라 법관인 이유는 개개의 법관 스스로가 하나의 헌법기관으로서 독립하여 심판하도록 한 것이 우리 헌법 개정권자 , 국민들의 의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법관이 하급심 단계에서 종전 대법원 판결에만 구애받아 판단을 하고자 함은 무척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혹자들은 국민의 법 감정을 운운하며 판결을 비판하기도 하나 애초부터 법원의 재판 절차는 일반 국민 의사로부터의 독립을 예정하고 있으므로, 정당한 비판이 아닙니다. 

근대국가의 설립 이래 국가 사법 체계는 인치(人治)가 아닌 법치(法治)를 택하였고, 이는 개인의 의사에 기대는 체계는 지극히 불안할 수밖에 없으며, 시스템에 의하여 존속 가능한 국가야말로 국민 모두에게 이롭다는 만인의 합의가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하였던 것입니다. 국민들은 국민 스스로 다수결의 오류에서 벗어나 법치에 의한 재판절차의 보장을 바라였기에 법관의 독립을 헌법의 내용으로 삼은 것입니다.

그렇기에 법관이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심판하였다면 그 판결이 대법원 판결과 다르다고 하여 그 자체로 문제될 것이 결코 아닙니다.

김연기 변호사
김연기 변호사

 

우리 법 체제는 상소제도 및 심급제도를 두고 있어, 하급심 판결 간의 통일을 꾀하고 있고, 상소 과정에서 판결의 오류를 정정토록 하고 있습니다. 이번의 한일청구권협정과 관련하여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비판한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판결 역시 이러한 절차를 거칠 것입니다. 어쩌면 다시금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변경될 지도 모릅니다.

가정하여 이 서울중앙지방법원 판결이 항소심에서 취소된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로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법원 스스로가 대법원 판결에 계속하여 비판적 태도를 견지할 때 소송당사자의 입장에서도 새로운 견해의 제시에 어려움을 겪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법원 판결이 늘 옳은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 역시 1957년부터 2012년까지 55년의 기간 동안 그 입장을 188번 변경하여 왔습니다. 한 해 평균 3.4건입니다. 대법원 판결이 늘 옳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매 사건마다 실제를 고민하는 과정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 프로필

-연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우수 졸업

-아주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부동산)

-MBC시사매거진2580, 수원 T브로드, 경향신문 등에 자문

-現) 수원지방법원 민사조정위원

-現) 법률사무소 이김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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