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해도 전기료 안 오른다는 정부 정책과 다른 행보…국민에 전기 청구서 내밀어
전력 부족 현상을 원전 돌려 메워…‘필수 사용량 보장 공제’ 월 4000원→2000원 축소
탄소중립 위해 석탄발전 축소, 신재생에너지 정책으로는 전력 공백 메우지 못해 유턴
송영길 대표·안철수 대표·황교안 대표·원희룡 지사 등 정치권 “탈원전 정책” 문제 제기

월성 1호기 전경. /사진=연합뉴스
월성 1호기 전경. /사진=연합뉴스

[뉴스워치= 최양수 기자] 다음 달부터 전국 910만가구의 전기료가 인상된다. 7월부터 월 전기 요금이 현재보다 2000원씩 오르고 전기차 충전 요금도 20% 이상 오른다.

업계에 따르면 오는 21일 3분기 전기요금이 발표될 예정이다. 탈(脫)원전 정책을 추진해도 전기요금은 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던 문재인 정부가 결국 다음 달부터 전기요금을 실질적으로 인상한다.

정부가 전력 사용량이 적은 가구에 적용해 오던 할인 혜택과 전기차 충전 요금 할인 혜택을 축소하기 때문이다. 또 국제 유가 상승에 따라 3분기부터 전기 요금이 더 오를 가능성이 크다. 전기 요금 상승으로 일반 가정뿐 아니라 기업 부담이 늘어날 전망이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은 7월부터 월 200kWh(킬로와트시) 이하 전력을 사용하는 주택에 제공하던 ‘필수 사용량 보장 공제’ 혜택을 월 4000원에서 2000원으로 축소한다고 밝혔다.

당초 이 제도는 전력 사용량이 적은 저소득층의 전기 요금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도입한 것으로 전국 991만가구가 대상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1·2인가구가 주로 이 혜택을 보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취약 계층 81만가구를 제외한 910만가구의 할인 혜택을 절반으로 축소하기로 한 것이다.

이로 인해 약 910만가구가 다음 달부터 전기요금을 월 2000원 더 내야 한다. 취약 계층 81만가구는 그대로 혜택을 받지만 주로 20·30대와 노인층이 대부분인 1·2인 가구의 전기요금이 오르게 되면서 반발이 예상된다.

또 한전은 7월부터 전기차 충전용 전력에 부과하는 기본 요금 할인율을 현행 50%에서 25%로 줄이고 전기차 전력량 요금 할인율도 현행 30%에서 10%로 낮추기로 했다.

국내 자가용 운전자의 연간 평균 주행거리는 1만4000㎞ 정도인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이를 감안하면 7월부터 전기차 운전자는 소유 차량 연비에 따라 매달 1~2만원의 전기요금을 더 부담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기요금은 3분기에 더 오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전은 전력 생산에 쓰이는 연료비를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연료비 연동제’를 올해 1월부터 시행할 예정이었다. 정부는 물가 안정 등을 위해 일단 연료비 연동제 시행을 유보한 상태다.

하지만 최근 유가가 배럴당 70달러(7만8260원)를 넘어서 올 하반기엔 80달러(8만9440원)까지 치솟을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어 전기요금 인상 요인은 충분하다. 정부에서는 연료비 연동제에 따라 3분기 전기요금을 인상할지 여부를 오는 21일 최종 결정한다. 인상된 연료비가 전기 요금에 반영되면 월 350kWh를 사용하는 가구는 전기 요금을 월 최대 1050원 더 내게 된다.

전문가들은 탈원전으로 인해 값싼 전기를 생산하는 원전을 폐쇄하고 값비싼 액화석유가스(LPG·Liquefied Petroleum Gas)와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그 공백을 메우려고 해 전력 생산 비용 상승으로 인해 전기요금이 상승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해왔다. 경제성이 떨어지는 에너지 생산 방식의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고 우려했다.

결국 연료비가 올랐는데도 전기 요금을 안 올리면 그 부담은 당장엔 한전에 돌아가며 한전 부채는 결국 공적 자금 투입이나 전기 요금 인상으로 메워줄 수밖에 없는 구조다. 탈원전 부담을 결국 국민에게 떠넘기는 전기 청구서로 돌아왔다.

글로벌 에너지 컨설팅 업체인 우드매켄지는 “재생에너지 확대로 인해 2030년 한국 전기요금이 2020년 대비 24% 상승할 것이다”고 밝혔다. 정부에서는 2030년 전기요금이 2017년 대비 10.9% 인상될 것이란 예측했지만 2배가 넘는 인상폭이 될 것으로 분석됐다. 또 우드매켄지는 정부가 설정한 2030년 전력부문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탈원전에 따른 원전 비중 감축과 LNG 등 화석연료에 대한 높은 의존도 때문에 달성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또 지난해 한전이 사들인 원전 생산 전력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최대치를 기록하며 이전 정부 수준에 육박했다. 석탄 발전을 줄이면서 생긴 전력 공백을 가장 저렴한 발전원인 원전으로 채웠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윤영석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5일 한전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전이 지난해 발전 자회사와 민간발전소에서 사들인 전력은 총 52만9607GWh(기가와트시)였다. 국내 전력 인프라를 독점하고 있는 한전은 이를 소비자에게 판매한다.

원자력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은 15만2312GWh로 전체의 28.8%를 차지했다. 한전이 사들인 원전 생산 전력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2018년 12만6883GWh(23.1%)까지 낮아졌지만 2019년 13만8607GWh(25.6%)를 기록하며 다시 높아졌다. 지난해는 ‘탈원전’을 외치기 이전 수준인 2016년 15만4175GWh(29.7%)에 육박한다.

결국 문재인 정부가 내건 탈원전 정책 기조와는 반대되는 흐름을 보였다. 정부 의도와 달리 원전 의존도는 높아졌다. 온실가스 감축과 탄소 중립을 위해 석탄 발전을 축소하면서 대체 발전원으로 원전 가동을 늘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탈원전으로 인한 전기요금 인상은 이미 예견이 됐었다. 지난해 전기요금 체계 개편안이 발표되자 국민의힘은 “고통 받는 국민에게 탈원전 세금 고지서까지 내미는 비정한 정부”라고 반발했다. 당시 국민의힘은 “우려했던 탈원전 청구서가 국민 앞에 날아드는 것이다”며 “이는 세계적 기술을 보유하고 가격경쟁력이 있으며 탄소배출이 없는 멀쩡한 원전을 중단시키고 백두대간을 파헤쳐 중국산 부품의 저효율 태양광을 깔며 탄소 배출 주범인 고비용 LNG를 밀어붙인 에너지 정책 실패의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것이다”고 비판했다.

결국 올해 정치권에서 ‘탈원전 실패’에 대한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대권 행보에 나선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정부를 향해 ‘국민들 세금 뺏기 선수들’이라고 비난했다. 에너지 정책 실패의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원 지사는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걱정하던 전기요금 인상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며 “무리한 탈원전 정책으로 석탄 발전을 늘려 환경 망치고 한전의 적자만 악화시키더니 결국 전기요금 인상으로 서민들 주머니 털이에 나섰다”고 지적했다.

이어 “돌 하나로 보물같은 항아리 두 개를 깨뜨렸으니 보기 드문 실력”이라며 “월세가 늘어나는 걸 선진국형 임대시스템이라고 했는데 이제는 선진국형 전기요금체계로 개편중이라고 할 건가”라고 몰아세웠다. 또 “미국과 원전발전을 함께 하기로 한 지금 ‘판도라’라는 공포영화에서 벗어나 과학과 합리를 받아들이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지난 14일 당 최고위원회 회의를 열고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잘못된 산업정책의 대표 격”이라고 비판하며 “지금 당장 현 정권 국정운영의 오류와 구체적인 문제점을 바로잡지 않으면 정치가 변하기 전에 국정 자체가 먼저 파탄 날 수 있다”고 했다.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대표는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원전은 죄가 없습니다’라는 글을 통해 “정부의 대책 없는 탈원전 정책에 누군가는 삶이 걸려있음을 기억해야 한다”며 “단언컨대 원전은 경제적이고 친환경적”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 1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대통령님, 탈원전 부디 재고하시고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해주세요’란 글이 등장했다. 글이 등장하자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은 “현 정권에 가장 궁금한 것 중 하나가 ‘탈원전 왜했나’였다”라며 공감했다. 이어 15일 페이스북에 청원글 링크를 공유하며 “속시원하게 말 좀 해줬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김태흠 국민의힘 의원도 16일 페이스북을 통해 “문재인 정부가 그동안 선거를 의식하고 탈원전 실패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이라는 비난을 피하려고 전기요금 인상을 억누르더니 한계에 다다르자 슬쩍 할인 혜택부터 줄이며 전기요금 인상에 착수한 것이다”고 지적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6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재생에너지만으로는 완전한 탄소중립을 이루는 데 한계가 있다”며 “상당 기간 수소, 원자력, 재생에너지 등을 종합적으로 활용한 에너지 믹스 정책이 불가피하다”며 핵융합발전과 소형모듈원자로(Small Modular Reactor·SMR)를 강조했다. 또 2030세대의 민심을 되돌리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한편 탈원전 정책 등 문재인 정부와의 정책 차별화를 부각해 내년 대선에 대비하겠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이미 전국적으로 30도가 넘는 이른 무더위가 시작되면서 에어컨 가동 등 전기 수요 폭증하고 있으며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되면 전력예비율 문제도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여름이 시작되면 친환경에너지의 전력 생산량은 현저하게 떨어진다. 장마철엔 태양광을 사용할 수 없고 태풍 때에는 풍력은 무용지물이 된다. 탈원전 후폭풍을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친(親)서민 정책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양수 기자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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