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철 전 감독, ‘췌장암’으로 결국 하늘로 떠나…韓축구 최고의 멀티플레이어 ‘유비’
韓스포츠계, FIFA도 애도…日프로축구 요코하마 마리노스, 가시와 레이솔 등도 추모
‘췌장암 투병’ 중에도 2019 시즌 인천의 극적 잔류 이끌어내며 ‘약속의 대명사’ 등극
유소년축구 활성화 기여, 지도자로 활발히 활동…마지막 팀 인천, 임시분향소 운영

7일 오후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의 빈소에 고인의 영정이 놓여 있다. /사진=연합뉴스
7일 오후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의 빈소에 고인의 영정이 놓여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워치= 최양수 기자] 췌장암으로 투병 중이던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영웅인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이 ‘이겨내겠다’던 마지막 남은 약속을 끝내 지키지 못했다. 유 전 감독은 7일 오후 7시께 입원 중이던 서울아산병원에서 향년 50세에 병마를 끝내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유 전 감독은 성인 국가대표로만 124경기에 출전해 넣은 18골을 넣는 등 한국 축구의 대표적인 멀티 플레이어로 이름을 날린 ‘레전드’다. 빠른 판단력과 현명한 플레이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팬들은 ‘유비’라는 별명을 지어줘 무한 사랑을 표현했다. 가히 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멀티 플레이어란 호칭이 아깝지 않은 전설이다.

서울 응암초 4학년 때 처음 축구와 인연을 맺은 유 전 감독은 경신중과 경신고를 거치며 멀티포지션을 소화해냈다. 유 전 감독은 선수 시절 내내 정해진 포지션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위치에서 뛰며 다양한 역할을 맡는 팔방미인이어서 그를 지도한 많은 지도자의 총애를 받았다. 

화려한 플레이보다는 팀플레이가 좋은 선수로 평가받았다. 유 전 감독은 한국 축구에서 가장 멀티플레이에 능한 선수 중 한 명으로 정평이 났다. 공격수는 물론이고 중앙과 측면 미드필더, 중앙 수비수도 소화했다. 키 183㎝의 탄탄한 체구에서 비롯된 강철 체력은 물론 골 감각과 헤딩, 수비 능력 등을 두루 갖춰 필드 플레이어의 웬만한 위치에 설 수 있었다.

건국대를 졸업한 뒤 1994년 울산 현대 유니폼을 입고 프로 생활을 시작하고 2006년 현역에서 은퇴할 때까지 국내에서 한 팀에서만 뛰었다. 프로 첫해 수비수로 K리그 시즌 베스트 11에 선정됐고, 1998년엔 미드필더, 2002년엔 공격수로 베스트 11에 뽑힐 정도로 다양한 포지션에서 단순히 뛰는 것을 넘어 훌륭히 소화했다. 

유 전 감독은 대표팀과 소속팀 감독들의 입맛에 맞게 수비형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플레이메이커), 전방 공격수, 센터백을 오갔다. 당당한 체구와 축구 지능, 투쟁심을 두루 갖춘 유 전 감독의 존재 덕에 감독들은 경기 중에도 쉽게 전술을 바꿀 수 있었다. 프로에서는 1996년, 2005년에는 팀을 리그 정상에 올렸다. 1998년엔 K리그 득점왕(15골)을 차지했다. 

1994년 프로 입단과 함께 그해 A매치에도 데뷔한 유 전 감독은 일찌감치 유럽 무대에서도 통할만한 재목이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무릎 부상을 딛고 출전한 1998년 프랑스월드컵 벨기에와의 조별리그 3차전에 두고두고 회자되는 슬라이딩 슛으로 동점골을 성공시키며 처참한 성적에 아파하는 팬들의 마음을 달랬고 2002년 한일월드컵 폴란드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시원한 중거리포로 추가골을 성공해 한국에 월드컵 첫 승을 선물하는 등 태극마크를 달고도 굵직한 득점들을 남겼다. 

2002년 대표팀을 이끈 거스 히딩크 감독은 늘 “멀티 포지션 플레이어가 돼야 한다”는 말을 달고 살았는데 유 전 감독이 좋은 본보기였다. 당시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 대회를 앞두고 유 전 감독에 대해 “기량의 우수함은 물론 정신적인 면에서 후배들을 이끌 수 있는 선수다”고 말했다.

한일월드컵에선 히딩크 감독이 이끈 대표팀의 주축으로 ‘4강 신화’를 이끈 뒤 히바우두(브라질), 미하엘 발라크(독일) 등과 대회 올스타 미드필더 부문에 뽑히기도 했다.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이 7일 별세했다. 사진은 2002년 6월 22일 광주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일월드컵 한국-스페인 8강전에서 히딩크 감독의 격려를 받는 유상철. /사진=연합뉴스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이 7일 별세했다. 사진은 2002년 6월 22일 광주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일월드컵 한국-스페인 8강전에서 히딩크 감독의 격려를 받는 유상철. /사진=연합뉴스

유 전 감독은 센터백으로 선발 출전한 경기에서 최후방에만 머무르지 않고 적극적으로 오버래핑하는 플레이를 즐겼다. 공격 상황에선 날카로운 중거리 슛과 헤더로 골도 잘 넣었는데 특히 큰 대회, 큰 경기에 강했다. 한일월드컵 이후에는 대표팀 주장을 맡았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엔 와일드카드로 출전해 8강 진출에 기여했다.

이후 프로 선수로서 울산 외에 일본 J리그의 가시와 레이솔과 요코하마 마리노스에서 맹활약을 이어갔다. 일본 무대에선 특히 요코하마에서 4시즌을 뛰며 2003년, 2004년 리그 2연패 등에 힘을 보탰다. J리그에서 113경기 44골로 활약을 펼쳤다.

유 전 감독은 2005년 6월 3일 우즈베키스탄과의 독일 월드컵 최종예선 경기를 끝으로 화려한 국가대표 경력을 마무리했다. K리그에서는 울산에서만 활약한 유 전 감독은 2005년 울산의 마지막 리그 우승의 순간을 함께한 뒤 이듬해 은퇴했다. 유 전 감독은 K리그에서 울산에서만 뛰며 통산 142경기 37골 9도움을 남겼다.

은퇴 이후 유 전 감독은 지도자의 길로 들어선다. 유 전 감독은 방송 프로그램 ‘날아라 슛돌이’에서 어린 선수들을 지도하며 대중에 한층 친근하게 다가갔는데 당시 지도를 받은 대표적인 선수가 한국 축구의 미래로 성장한 이강인(발렌시아)이다.

2009년 춘천기계공고에서 본격적인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2011년 대전시티즌(현 대전하나시티즌)을 맡아 프로 사령탑으로 데뷔해서 이듬해까지 지휘했다. 2014년부터는 울산대 감독으로 경험을 쌓은 그는 2018년 전남 드래곤즈의 부름을 받아 프로 무대에 복귀했으나 8개월 만에 성적 부진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이후 2019년 5월 부임한 인천 유나이티드는 ‘축구인 유상철’이 몸담은 마지막 팀이 됐다. 최하위권을 맴돌던 인천의 1부 잔류라는 막중한 임무를 안고 매 경기 살얼음판 같은 생존 경쟁을 치러야 했다. 하지만 유 전 감독은 팬들과의 약속을 공약하고 하나씩 실천했다. 팬들 역시 유 전 감독을 ‘약속의 대명사’라고 부르면 그의 행보를 지지했다. 

시즌이 막바지이던 그해 10월 황달 증세로 입원한 유 전 감독은 11월 췌장암 4기 진단을 받았다고 공개한 뒤에도 벤치를 지키며 팀을 이끌었다. 선수 시절 그라운드에서 불태운 혼은 벤치에서 ‘열정의 리더십’으로 승화했다. 그는 병마와 싸우며 1부리그 생존을 위한 경쟁도 놓지 않았다. 당시 인천의 2부 리그 강등을 막아내며 만들어낸 ‘잔류 드라마’는 팀을 이끄는 유 전 감독의 상황과 맞물려 더 극적으로 펼쳐졌다.

K리그 현장은 물론 일본에서도 경기장에 걸개가 걸리는 등 ‘응원 물결’이 일어난 가운데 인천은 2019시즌 정규리그 최종전에서 경남 FC와 비겨 10위를 확정하며 1부리그 잔류를 결정지었다. 

인천의 잔류가 결정된 뒤 창원축구센터 관중석에는 ‘남은 약속 하나도 꼭 지켜줘’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1부리그 생존 경쟁에 이어 병마와의 싸움도 이겨내고 돌아오겠다고 다짐한 유 감독에게 힘을 싣는 인천 팬들의 메시지였다.

당시 ”마지막 남은 약속을 지켜달라는 팬 여러분의 외침에 보답할 수 있도록 반드시 완쾌해 건강한 모습으로 인사드리겠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의지력을 갖고 힘들더라도 잘 이겨내겠다“고 화답한 유 전 감독은 2020년 1월 초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당초 구단은 동행하겠단 방침을 세웠지만 유 전 감독이 팀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직접 사의를 표했다. 인천은 유 감독을 명예감독으로 선임하며 예우를 다했다. 명예감독으로 물러난 이후 마음으로 인천을 응원하며 병마와의 싸움에 돌입했다.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이 7일 별세했다. 사진은 2006년 5월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벌어진 한국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평가전 하프타임에 열린 국가대표 은퇴식에 참석한 유상철. /사진=연합뉴스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이 7일 별세했다. 사진은 2006년 5월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벌어진 한국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평가전 하프타임에 열린 국가대표 은퇴식에 참석한 유상철. /사진=연합뉴스

“꼭 돌아오겠다”는 약속과 함께 병에 전념해온 유 전 감독은 한때 호전된 시기도 있었다. 유 전 감독은 요코하마 마리노스의 경기장을 방문해 응원에 감사를 전하거나 방송에도 출연하는 등 이따금 모습을 드러냈고 인천의 부진이 이어질 땐 ‘전격 복귀설’이 나올 정도로 건강을 어느 정도 되찾은 듯했다.

올해 들어서도 상태가 악화했다는 보도에 반박을 내놓는 등 종종 근황을 전하곤 했으나 끝내 그는 마지막 하나의 약속은 지키지 못한 채 투병 1년 8개월여 만에 영면에 들었다. 

유 전 감독의 빈소는 7일 오후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자정이 다 된 시각에도 불구 황선홍 전 대전하나시티즌 감독, 최용수 전 FC서울 감독, 이천수 대한축구협회 사회공헌위원장, 김병지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등 유 전 감독과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이뤘던 멤버들이 모였다.

라이언 시티 세일러스(싱가포르) 지휘봉을 잡은 김도훈 전 울산 현대 감독, 이임생 전 수원 삼성 감독 등 현역 시절을 함께한 지도자들도 고인을 찾았다. 성남FC 골키퍼 김영광 등 후배들도 직접 빈소를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이밖에 유 전 감독의 지도를 받은 인천의 외국인 선수 무고사도 빈소를 찾아 조문 행렬에 동참했다.

또 유 전 감독이 별세에 애도의 물결이 일어났다. 그가 마지막으로 지휘했던 프로축구 K리그1 인천 유나이티드가 애도의 뜻을 전했다. 인천은 구단 공식 인스타그램에 “유상철 감독님, 당신의 열정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편히 쉬소서”라는 글을 남겼다. 인천은 고인을 위해 홈구장인 인천축구전용경기장 1층 VIP 출입구에 유 전 감독의 임시분향소를 운영한다.

K리그의 구단들도 추모의 글로 떠나는 그를 애도했다. 대한축구협회는 유 전 감독의 영면 소식을 공식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알리자 1시간 만에 2500여명의 팬들이 추모의 글을 남기며 추모의 마음을 전했다. 대표팀 후배 기성용은 SNS를 통해 고인을 추모했다

스포츠 스타들의 애도 행렬도 이어졌다. ‘야구 전설’ 이승엽, ‘테니스 전설’ 이형택 등 평소 친분이 있었던 스포츠 스타부터 메이저리그(MLB) 출신 투수 김병현과 현재 MLB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뛰고 있는 투수 양현종 등도 추모했다. 

국제축구연맹(FIFA)도 유 전 감독이 별세한 7일 오후 월드컵 공식 트위터 계정에 사진과 함께 그를 추모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FIFA는 “한 번 월드컵 영웅은 영원한 월드컵 영웅”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시작했다. 이어 “전 한국 축구대표팀 미드필더 유상철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지난 2002 한일월드컵 당시 태극전사로 활약하며 한국의 4강 진출을 이끌었다”고 전했다. FIFA는 “유족과 지인, 한국 축구계에 애도의 뜻을 전한다”면서 고인을 기렸다.

또 일본 J리그 요코하마 마리노스와 가시와 레이솔도 트위터에 애도의 글을 올리는 등 전세계적인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이 마지막으로 사령탑을 잡았던 인천에서 유 전 감독을 애도하는 메시지를 남겼다.(인천 유나이티드 인스타그램) /캡처=최양수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이 마지막으로 사령탑을 잡았던 인천에서 유 전 감독을 애도하는 메시지를 남겼다.(인천 유나이티드 인스타그램) /캡처=최양수

최양수 기자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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