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김웅식 기자] 대기업 계열 공익법인인 A문화재단은 국내 기업으로부터 거액의 주식 등을 출연(기부)받아 이 돈으로 공익사업에 맞게끔 장학금을 지급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국세청 조사 결과, A재단은 특수관계인 계열사의 임직원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줬다. 이렇게 특정계층에 혜택을 주는 것은 법상 금지행위다. 국세청은 A재단에 증여세 수억원을 추징했다. 

B재단은 실습공단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개발행위가 제한되는 토지를 출연 받았다. 그러나 출연 후 3년이 경과할 때까지 공익목적 사업에 사용하지 않고 방치했다. 부득이한 사유도 없었다. 이 출연재산에 대해 면제받은 증여세는 추징당했다. 

현행 상속·증여세법은 공익법인이 계열사 주식을 출연 받을 경우 이를 기부로 보고 총 발행주식의 5%까지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다. 성실공익법인으로 지정되면 비과세 상한선은 최대 10%까지다. 

대기업 소속 공익법인은 사회공헌사업을 통해 공익 증진에 기여하고 있으나 동시에 총수 일가의 지배력 확대, 경영권 승계의 수단으로 이용될 가능성도 상당하다고 평가한다. 

총수 일가는 공익법인의 이사장 등의 직책을 지배하고 있으며, 그룹 내 핵심‧2세 출자 회사의 지분을 집중 보유하고 있다. 총수 일가 및 계열회사와 공익법인 간 주식‧부동산‧상품‧용역 거래가 상당하나 현재 내부 통제 및 감시 장치는 미흡하다.

만약 재벌이 된다면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재산을 2세에게 대물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상속이나 증여할 돈으로 공익법인을 설립하고 세금을 면제받는다. 공익법인의 대표에 자식(재벌 2세)을 앉힌다. 공익법인 대표인 자식이 본연의 목적인 공익사업보다 부모가 대주주로 있는 기업의 주식을 취득한다. 공익법인이 해당 재벌기업의 주주권을 행사한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던가. 재벌이나 자산가들은 재산을 자자손손 물려주고 싶어 한다. 하지만 재산을 물려주려면 막대한 상속세나 증여세를 부담해야 하고, 이로 인해 자칫 회사가 흔들릴 수 있다. 그래서 재벌들은 공익법인을 설립하고 재산을 출연해 대물림하는 방법을 쓴다. 공익사업 실현이라는 정부와 재벌기업 간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 가능한 일이다.

국세청 조사에 따르면, 공익법인제도를 악용한 증여세 탈루 규모가 지난 3년간 수천억원에 달했다. 기부 받은 재산을 공익목적에 쓰지 않거나, 쓰더라도 특수관계인과의 거래를 통해 사실상 자신의 호주머니로 넣은 사례가 적발됐다. 

내년부터 대기업 공익법인과 계열사들은 상호 간 내부거래 내역을 공시해야 한다. 현재 기업집단 소속 회사들은 공익법인 등 비영리법인 전체와의 내부거래 총액만 공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공익법인 의결권 제한 조치를 통해 총수들이 지배력 강화를 위해 공익법인을 ‘거수기’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데 이어, 이번 공시의무는 사회적 감시를 통해 내부거래를 통제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그간 대기업 공익법인은 ‘사회공헌’이라는 목적과 달리 총수 일가 지배구조 강화에 활용한다는 의심을 받아왔다. 총수 일가가 비과세 혜택을 이용해 공익법인에 주식을 기부하면 공익법인은 총수 일가 입맛에 맞게 주식만큼 부여된 의결권을 행사한 정황이 공정위 실태조사에서 포착되기도 했다. 

대기업 공익법인은 내부거래에도 이용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기업 공익법인 165곳 중 60.6%는 계열사 또는 총수 일가와 상품용역 거래, 부동산 거래, 주식 거래, 자금 거래 등을 하고 있었다. 대기업 중 일부는 공익법인을 이용해 ‘일감 몰아주기 규제’도 회피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H그룹의 회장과 부회장 부자는 43.39%였던 자회사의 지분율을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시행된 이후 29.99%로 떨어뜨려 규제망에서 빠졌다. 이 과정에서 총수 일가는 그룹 내 공익법인에 자회사 지분 4.46%를 기부했다. 그 결과 총수 일가는 자회사에 대한 지배력은 유지하면서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게 됐다. 

대기업 공익법인에 대한 감시와 규제는 그간 전방위적으로 강화돼 왔다. 공정위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에서 공익법인의 의결권을 원칙적으로 제한했다. 국세청은 대기업 공익법인 탈세행위를 전수조사했다. 대기업 공익법인의 출연재산 등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한 바도 있다.

공익법인에 주식을 출연할 때 상속·증여세를 면제해 주는 것도 손볼 계획이라고 한다. 공익법인이 본연의 목적보다 계열사 지분을 사고팔면서 총수 일가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악용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어떤 전문가는 공익법인을 설립할 때 세금감면을 공익지출과 연계하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한다. 공익법인에 재산을 출연할 경우 일단 상속세나 증여세를 부과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3년 이내에 해당 공익법인이 공익사업 목적에 맞게 지출할 경우, 거기에 상응하는 세금을 돌려주자는 방안이다.

대기업 공익법인은 기업 이익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숭고한 사명을 띠고 존재한다. 재산 대물림, 편법 경영권 승계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선의의 목적을 가진 공익법인이 잘못된 길로 빠지게 수수방관해서는 안 될 것이다. 

김웅식 편집국장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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