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김웅식 기자] 서울 도산공원 곳곳에 도산 안창호의 명언이 새겨진 기념물이 많다. 눈길을 잡는 것은 도산의 인생 목표가 새겨진 비석이다. 비문 앞에 서면 그 문장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

‘나 하나를 건전(健全)한 인격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 민족(民族)을 건전하게 하는 유일(唯一)한 길이다.’

훌륭한 지도자는 동서고금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모두 스스로에게 리더인 사람들이었다. 리더는 자신의 일생 언행을 통해 묵묵히 보여주는 자다. 

우루과이 대통령을 지낸 호세 무히카(86)는 재임 시절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불렸다. 그는 취임 첫해인 2010년 본인 재산이 1800달러(203만원) 상당의 자동차 1대뿐이라고 신고했다. 이 차는 낡아빠진 1987년형 폭스바겐 ‘비틀’이다.​

무히카는 1960, 70년대 군사 독재 정권에 맞서 좌익 게릴라로 활동했다. 군정 종식 이후 주류 정치인으로 변신한 무히카는 농업장관 등을 거쳐 대통령까지 올랐다. 취임 후 대통령궁에 들어가지 않고 수도 몬테비데오 외곽에 있는 부인 소유의 농가에서 살았다. 비틀을 직접 몰고 출퇴근했고, 집에서는 아내와 함께 꽃을 재배했다.

우리나라 정치에서 대통령이 퇴임 후 머무를 사적 공간, 즉 사저(私邸)는 줄곧 논란의 대상이 돼왔다. 사저를 신축하거나 고치는 과정에서 어김없이 호화 주택이라는 프레임이 덧씌워졌다. 대통령의 잘못된 처신이 문제일 때도 있었지만 거의 다 정치공세였다. 지나고 나면 사라질 주장에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소진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봉하마을에 사저를 지었다가 아방궁 공세에 시달렸다.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은 봉하마을에 ‘노무현 타운’이 형성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작 이런 주장을 방조한 이명박 대통령은 아들 명의로 도곡동에 사저용 땅을 매입했다 배임과 부동산실명제 위반, 편법증여로 수사를 받았다. 

우리나라는 몇 분을 빼고 전직 대통령이 불행한 결말을 맞는 참으로 희한한 나라다. 그러기에 요즘 세상엔 부모들이 자식에게 “절대 대통령 되지 말라”고 당부한다는 우스갯소리가 회자될 정도다. 

전직 대통령 두 명이 중대 부패로 실형을 선고받아 감옥에 있다. 한 사람은 회삿돈 수백억원을 횡령했다. 두 사람 모두 재직 중 대기업으로부터 100억원에 가까운 뇌물을 받은 죄를 지었다. 30여 년 전, 군장성 출신 두 대통령은 당시 금액으로 수천억원 대의 뇌물죄를 저지르기도 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어떤 대통령도 임기가 끝나면 아무리 싫어도 권좌에서 내려와야 하고, 전직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도 국민의 한 사람이기에 잘못에 대한 처벌은 예외일 수는 없다. 이제는 ‘하야, 암살, 자살, 탄핵, 수감’의 전직 대통령 흑역사는 마감돼야 한다. 

퇴임을 앞둔 지도자가 눈여겨보았으면 하는 인물이 있다. 그 사람은 스웨덴의 타게 엘란데르 전 총리다. 다음은 이정규 스웨덴 대사가 얼마 전 SNS에 올린 내용이다. 

“그는 운동권 출신이었지만 23년간 총리를 하면서 각계각층 인물들과 스스럼없이 만나 대화와 타협을 했다. 11번 선거에서 승리했으나 권력의 절정에서 물러났다. 1969년 득표율 50%를 넘는 압승을 거두자 ‘지금은 새 인물이 필요하다’며 스스로 걸어 내려왔다. 그는 총리 관저에서 공식 집무만 보고 임대주택에 거주했다. 

막상 총리에서 퇴임하자 살 집이 없었다. 이를 안 국민들이 한적한 시골 마을에 별장을 지어주었다. 55년간 해로한 부인 아이나도 검소했다. 남편이 총리였지만 고등학교 화학교사를 계속했다. 그녀는 남편이 퇴임한 후 한 뭉치의 볼펜을 들고 총무 담당 장관을 찾아가 건네주었다. 볼펜에는 ‘스웨덴 정부’ 마크가 새겨져 있었다. 그녀는 ‘남편이 총리 때 쓰던 볼펜인데 이제 정부에 돌려주는 것이 맞다’고 했다.” 

퇴임을 1년여 앞둔 대통령도 역시 사저 논란을 피하지 못했다. 우리는 언제쯤 대통령 사저가 정치공세의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퇴임 후 잊혀지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조용한 삶을 원하는 대통령으로서는 억울할 법도 하다. 

김웅식 편집국장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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