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김웅식 기자] 언론인 출신 K형은 지난해 총선에 출마해 당선됐다. 언론인으로 명성을 쌓고 국민을 위해 봉사하며 ‘머슴’으로 살아보겠다고 출마의사를 굳힌 것이다. K형은 일찌감치 예비후보로 등록을 하고 이곳저곳 찾아다니며 도움의 손길을 보탠 끝에 ‘시민의 일꾼’으로 뽑히게 됐다. 

K형은 어깨띠 하나만 두른 채 혼자서 선거운동을 펼쳤다. 학생들 등굣길 안전지도를 하고, 복지관을 찾아 어르신 식사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다. 본인을 알리는 피켓은 보이지 않았다. 뽑아달라는 구호도 없었다. 그럼에도 적지 않은 시민이 그의 봉사정신과 진정성에 응원의 손길을 보냈다. 

이번 4·7 재보궐선거 유세장에서는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큰절을 올리는가 하면, 젊은 유권자들에게 미리 투표를 한 후 투표 당일에는 놀러 가라는 발언까지 나왔다. 단순히 생각하면 앞의 내용은 야당, 뒤의 내용은 여당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완전히 뒤바뀐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 전직 여당 대표가 국민을 향해 사과를 하고, 야당 대표는 사전투표를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유세 때만 큰절하고 선거가 끝나면 유권자를 하대하는 정치인이 어디 한둘인가. 세상은 이미 저만큼 앞서가고 있는데 우리만 우물 안 개구리처럼 철 지난 제왕적 정치인들에게 국가의 운명을 맡기고 있는 듯한 불편한 진실이 안타깝게 다가온다. 

아침 출근길 지하철역 입구가 소란스럽다. 이번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의 운동원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한 표를 호소하고 있다. 행인들의 반응은 무덤덤하다. 오늘은 낮은 자세로 ‘머슴’을 자처하지만 ‘완장’을 차고 나면 주인 행세를 하리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서울시장 후보들이 시민들을 위해 일하겠다고, 자신을 선택해 달라고 호소하지만 믿음이 가지 않아요. 상대 후보의 약점을 잡아 흠집 내기에 열중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말로만 하지 말고 시민들을 위해 일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네요. 표를 얻기 위해 오늘 유권자들에게 고개를 숙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요.”

사실 그간의 유력 서울시장 후보의 선거운동을 요약하면 ‘네거티브’와 ‘선거용 퍼주기’였다. 민주당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의 ‘내곡동 땅 셀프 보상’ 의혹에 치중했다. 오 후보 측도 박영선 민주당 후보의 도쿄 아파트 소유 논란을 키웠다. 

지하철역 쓰레기통에 서울시장 후보의 명함이 버려져 있다. 간혹은 바닥에 떨어져 행인들에게 밟히기도 한다. 명함은 건넨 사람의 얼굴이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버림을 받는 데는 우리가 일꾼으로 알고 뽑았던 ‘완장꾼들’이 자초한 면이 크다. 이제는 진정성 없어 보이는 후보자의 말과 행동에 짜증이 날 정도다. 

지난 2~3일 이틀 동안 진행된 사전투표에서 1216만1624명의 선거인 중 249만7959명이 투표를 마쳐 사전투표율이 역대 재보선 최고치인 20.54%를 기록했다. 서울시장 선거는 184만9324명이 참여해 21.95%를, 부산시장 선거는 54만7499명이 투표해 18.65%의 투표율을 보였다.

후보들의 막판 총력전을 기대한다. 다만 지금까지와는 달리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 

이틀 뒤인 7일 재보선 당일에도 많은 유권자가 투표에 참여해 ‘완장꾼’이 아닌 ‘시민의 머슴’이 선택되기를 기원해 본다. 

김웅식 편집국장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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