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국제아트센터건립공사 현장에 내걸렸던 안전표어. 논란이 되자 해당 안내판은 게시 당일 바로 철거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독자 제공
부산 국제아트센터건립공사 현장에 내걸렸던 안전표어. 논란이 되자 해당 안내판은 게시 당일 바로 철거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독자 제공

[뉴스워치= 김웅식 기자] 가벼운 농담의 말이라도 상대를 가려서 해야 한다. 하물며 사용자와 고용인의 계약 관계로 형성된 공사현장에서 오가는 부적절한 문자행위는 자칫 ‘갑질’로 오해받을 수 있기에 신중해야 한다. 

“3시30분까지 집합” “늦으면 초당 1000원” “현장 퇴출할 1호로 선정한다” “억울하면 계약특수조건 봐라” “상금 50만냥, 20만원어치만 쏘세요” 

이 문자 메시지는 몇 해 전 LH의 차장급 직원 A씨가 하도급 업체 현장 감독들에게 보낸 것이다. 언뜻 보기에 문제의 문자 메시지는 비슷한 연배의 사람에게 농담 삼아 보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LH 직원은 40대인 반면에 이 문자를 받은 현장소장들 중 두 명은 50~60대로 아버지뻘이었다.

A씨는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농담한 것”이라고 해명했다지만 평소 현장 직원들을 어떻게 대해 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공사 관계자 여러분! 작업장에서의 안전수칙을 지킵시다. 일단 사고가 나면 당신의 부인 옆에 다른 남자가 자고 있고, 그놈이 아이들을 두드려 패며 당신의 사고보상금을 써 없애는 꼴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 문구는 2016년 대구 황금동 아파트 공사현장에 실제로 게시됐던 안전표어로 현장 관리자들의 무신경하고 저급한 언어사용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2m 남짓 크기의 입간판에 적혔던 이 안전표어는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인데다 산업재해 책임을 근로자에게 지우는 듯한 인식을 깔고 있어 근로자들의 반발을 샀다. 현장 관리자들은 안전사고 예방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인터넷에 올라 있는 문구를 가져다 사용했다고 밝힌 바 있다. 

부적절한 언어사용으로 공분을 사는 일이 최근 부산의 한 공사현장에서도 일어났다. 

중견 건설사 T건설이 부산 시민공원 내 국제아트센터 건립공사 현장에 부적절한 안전표어를 내걸어 시민들의 반발을 샀다. 

지난 8일 부산 시민 A씨의 제보에 따르면, 이날 시민공원 내 부산국제아트센터 건립 공사 현장에는 이불을 뒤집어 쓴 여성 및 5만원권 다발 이미지와 함께 ‘사고 나면 당신 부인 옆엔 다른 남자가 누워 있고 당신의 보상금을 쓰고 있을 것입니다’라는 안전표어가 걸려 있었다.

해당 표어를 촬영한 사진을 A씨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개하자 시민들은 "성인지 감수성 교육 좀 받아야겠다" "몇 년 전에 욕먹었던 건데 아직도 저 모양이네" "표현이 너무 저열하다" 등 비판적인 반응을 쏟아냈다.

안전표어가 걸린 곳이 아파트나 오피스텔 등이 아닌 국제아트센터 공사현장이라는 점도 비판을 키웠다. 한 대학교수는 댓글을 통해 "웃고 넘길 카피가 아니다"며 "어찌 공공건물 건설에 저 따위 저질 문구를 (사용하느냐)"고 일갈했다.

해당 문구는 과거에 몇 차례 건설현장에 쓰여 논란이 됐다. 2016년 대구 아파트 시공현장에 이어, 2019년 초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 비슷한 안내판이 내걸려 온라인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당시 전국건설노동조합 측은 성명서를 내고, 해당 건설사를 비판한 바 있다.

건설노조는 “죽고 싶어서 일하는 사람은 없다. 간판 내용은 사고 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것”이라며, “사고가 나면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은 노동자 책임이라는 사용자 측 인식 때문에 저런 문구가 나온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시공사 측은 "사내 안전관리자들이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문구를 차용해 안전표지를 만든 것"이라며 문제의 입간판을 철거 조치한 바 있다. 

신중한 언어사용은 백번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듯이 말은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생활이 천국이 되기도 하고 지옥이 되기도 한다. 말과 글에는 평소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생각과 인식 수준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김웅식 편집국장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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