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박서하
그림=박서하

나무젓가락을 와리바시(わりばし, 割箸)라고 하시는 분들이 간혹 계십니다. 일본어 동사로 나눈다는 의미의 와루(わる,割る)와 '젓가락'이라는 의미의 하시(はし,箸)를 조합한 말입니다. 하지만 일본에서 와리바시라는 말은 일상에서는 거의 쓰지 않고 대신 미화어 오(お)를 붙여 오하시(お箸), 혹은 하시(箸)라는 말을 사용하죠.

와리바시는 젓가락을 통칭하거나 일회용 나무젓가락을 말할 때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참고로 나무젓가락을 둘로 자를 때 양옆으로 자르는 분들이 많은데 그러면 모양이 삐뚤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그보다 위아래로 자르면 실패 없이 깨끗하게 둘로 나뉘니 한 번 해보시길 바랍니다.

와리바시라는 말은 일본 문화사에서 보면 좀 더 깊은 뜻이 있습니다. 일본문화는 크게 하레(ハレ,晴れ,霽れ)와 케(ケ,褻)로 나눕니다. 하레라는 것은 한자로 갤 청(晴), 비 갤 제(霽)를 사용하는데 한자의 의미처럼 안 좋은 것들이 다 사라진, 때 묻지 않은 특별한 날이나 일을 말합니다.

다회, 새해, 결혼식, 입학식, 성인식 등 축하할 일이거나 신사(神事)에 관련한 행사를 하래노히(はれのひ,晴れの日) 즉, 때 묻지 않은 비일상적인 날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런 날에 입는 드레스나 기모노같이 특별한 옷을 하라기(はれぎ,晴れ着)라고 하죠. 한편 일상적인 것, 세속적인 것을 한자로 더러울 설자를 사용하여 케(ケ,褻)라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젓가락 두 개 중 하나는 하레의 젓가락(ハレ,晴れの箸), 또 다른 하나는 케의 젓가락(ケの箸)으로 이 두 개가 겹쳐 있는 것이 와리바시입니다. 와리바시에는 하레와 케가 함께 어우러져서 있는 것으로 이 두 개가 어우러져야 뭔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라 할 수 있죠. 하레만 가득한 삶도 케만 있는 삶도 없지만, 이 두 개가 적절하게 버무려져야 맛있는 식사가 가능한 것처럼 케도 하레도 삶의 일부라는 것을 와리바시는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왜 식당에서 일회용 나무젓가락을 사용하는 곳이 많을까요. 그리고 일본에서는 손님에서는 사용하던 젓가락을 내주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늘 상 오는 손님도 아닌데 새 젓가락을 꺼내주는 것도 과잉친절이 될 수 있으니 주로 일회용 나무젓가락을 손님용으로 내놓습니다. 나누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줌으로 위생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거죠.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나무젓가락을 둘로 나누는 것은 어떤 일을 시작한다는 의미가 있으니 식사를 시작한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일본에서는 일회용 나무젓가락을 사용한 경우에는 식사 후에 젓가락에 씌운 종이에 사용했던 젓가락을 도로 넣어두는 것이 예의입니다. 지저분한 것을 상대방에게 보이지 않으려는 마음에 기인한 겁니다.

젓가락을 둘로 나누는 행위는 때 묻지 않은 신성한 일을 '시작하다(事を始める)'라는 의미가 있어 신사에서 결혼식을 올릴 때, 새하얀 나무젓가락을 준비하여 둘로 나누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일본에는 이와이바시(祝箸,いわいばし)라는 것이 있습니다. 결혼식이나 돌잔치 등 어떤 일을 축하할 때 사용하는 젓가락으로 일반 나무젓가락과는 약간 모양이 다릅니다.

축하 자리에서 둘로 나뉘는 것을 불경스럽게 생각해서 나무젓가락인데 처음부터 둘로 나눠서 만든 겁니다. 손을 잡는 가운데 부분을 약간 통통하고 동그랗게 만드는 것이 특징인데 젓가락 하나는 신이 나머지 하나의 사람이 사용하는 젓가락으로 신과 인간이 공동으로 식사(神人共食)를 의미합니다.

축하하는 용도라서 절대로 부러져서는 안 되기 때문에 일회용이라도 단단한 버드나무로 만들어 사용하지만, 요즘에는 저가로도 안 부러지는 이와이바시를 만들기도 합니다. 흐드러진 이 봄날 두 개의 젓가락으로 좋은 행운을 많이 집으시고, 나쁜 것을 집어 멀리 던져 버리시길, 하레노비가 많이 들어있는 3월에 그런 행운을 빌어봅니다.

최유경 교수
최유경 교수

◇이화여자대학 졸업

◇오사카부립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서울대, 성균관대 등 다수대학에서 강의

◇서울대인문학연구원, 명지대 연구교수, 학술교수

저작권자 © 뉴스워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