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가도에 잠시 흥행 위한 ‘말의 성찬’ 보다 치열한 ‘정책 다툼’이 앞서길"

[뉴스워치=칼럼] 흔히 말하기를 정치는 ‘말’로 한다고 한다. 정치인의 정치적 행위는 곧 ‘말’로 시작되고 그 ‘말’에 따른 ‘행동과 실천’으로 옮겨져야 하기에, 특히나 정치인들에게는 ‘언행일치’가 도덕성과 신뢰성의 척도가 된다. 대중을 움직이고 대중을 설득하고 자신의 정치노선과 이념을  설파함에 있어서도 정치인의 ‘말’은 곧 ‘생명줄’과 같은 것이다. 그만큼 ‘말의 무게’와 ‘책임성’이 크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치인들의 말이 모두 이런 기준과 바램에 부합하지는 않는다. 아니 어쩌면 우리 정치 현실에서는 정치인의 말이 때론 국민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 ‘분노’를 자아내는 경우가 더 비일비재하다.

요즘 정치권에서 말로 이목을 끌고 있는 정치인이 있다. 한 때 보수 야당의 대선후보였지만 지난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대구에서 당선된 홍준표 의원이다. 그는 ‘국민의 힘’ 당 밖에 있지만 여전히 보수 야권의 ‘잠룡’으로 분류되고 대선 여론조사에서도 빠짐없이 오르는 정치인이다. 그만큼 홍의원의 말과 행동은 여느 정치인의 말보다 더 ‘파급력’과 ‘무게감’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그런데 홍의원의 입을 통해 오르내리는 말들이 정치권에서 한동안 듣지 못했던, 그러나 ‘익숙한 비속어’를 섞어 이재명 지사를 공격함으로써 세간의 이목을 모으고 있는데 대해 다들 ‘왜 저럴까’ 하는 궁금증을 유발시키고 있기도 하다.

당연히 국민에겐 홍의원이 대권을 지향하는 꿈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여권 대선주자이면 ‘대선 독주’ 가도를 달리는 이 지사에 대한 정치적 공격과 비판은 자연스러울 수 있지만, 비판에 동원된 용어 중 ‘양아치’라는 대목에 이르러선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이 지사에 대한 공격이 하루도 아니고 사나흘 이어지고 있다고도 한다. 정책이나 노선에 대한 본격적인 논쟁도 아닌 ‘신상’에 대한 험난한 말들로 ‘주목도 올리기’에 나선 것 같다는 평들이 지배적이다.

나아가 윤석렬 총장에 대해서도 ‘권력의 사냥개’가 되지 말라고 검찰 선배로서 충언(?)하는등 가히 홍의원의 ‘말의 성찬’은 현란하고 자극적이다. 홍 의원 역시 ‘정치검찰’의 쓴맛 단맛을 잘 아는 터이기에 하는 말이겠지만, 듣는 국민의 심사는 편치만은 않을 것 같다.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면서도 교훈처럼 여기는 ‘말’에 대한 신중함을 일깨우는 속담이 많다. 연일 쏟아내는 혹독한 용어들이 길어지면서 자칫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는 속담, 그리고 ‘말이 많은 집은 장맛도 나쁘다’ 라는 속담처럼 실익도 없으면서 괜스레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가벼움’만 더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 아닌 걱정이 들기도 한다.

이 지사 측이 왠만하면 격하게 반응할 만도 한데, 일언반구 대응도 없는 게 ‘뉴스’가 되기도 하고 있다. ‘얻어맞은 상대’가 조용하니 아마도 ‘때린 사람’은 재미가 없을 수도 있겠다. 아마도 대응 가치가 없다고 보는 듯하고 괜히 상대의 ‘주가’만 올려주는 ‘진흙탕 싸움’을 피하는 것 같기도 하다.

국민에게 알리고자 하는 진실과 사실 또는 정책의 시시비비가 있다면, 좀 더 ‘치열한 논쟁’과 ‘속이 찬 경쟁’으로 옮겨 가는 게 결국 국민 이익에 부합하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기에 유력 대선 주자의 공격과 비판의 도구에 ‘최소한의 품격’이 장착된 ‘정치인의 말’이라면 아마도 더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을까 싶지만, 아직 우리 정치 현실에선 공허한 바램인가 하는 생각도 드는 때이다.

정치인의 말은 곧 생명이요 길이다. 설저유부(舌底有斧)라는 말이 있다. ‘혀 밑에 도끼 있다’는 뜻이다. 정치인이든 대권주자든 소시민이든 누구나 ‘말’로 인해 덕을 보기도 하고 화를 입기도 하는게 인생사이다. 누구나 혀 밑에 ‘도끼’를 품고 사는 건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혀를 잘 쓰면 도끼가 될 일은 없을 것이다.

◇박동규 前 청와대 행정관
◇독립기념관  前 사무처장
◇ 現 한반도 미래전략 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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