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김웅식 기자] 국민연금에는 강력한 채찍이 주어져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라는 채찍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국민연금, 자산운용사 같은 기관투자자들이 고객의 자산을 맡아 관리하는 집사(스튜어드)처럼 고객을 대신해 투자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 고객의 자산을 충실하고 선량하게 관리하도록 하는 자율지침을 말한다. 

국민연금의 섣부른 경영 참여 결정은 글로벌 시장에서의 기업가치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되며, 이는 곧 기금의 수익성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남의 돈으로 투자해 수익을 올려야 하는 기관이 사기업에 경영 인력까지 파견해 경영까지 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곤란한 일이다. 

국민연금이 기업가치를 높이려고 주주권 행사를 한다는 것은 내가 낸 곗돈이 내 집 살림을 간섭하는 것과 비슷하다 하겠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곗돈을 처음부터 내지 않았을 것이란 불만도 나올 만하다. 계주의 눈 밖에 난 회원 몇 명을 손봐야 한다는 말도 있지만, 왜 남의 살림살이에 간섭하느냐는 불평이 설득력을 얻기도 한다.     

3월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주주 간 이해관계가 대립하고 있다. 주로 행동주의 펀드들이 투자기업에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다양한 개선 방안들을 요구하면서 어느 때보다 주총을 뜨겁게 달굴 것으로 예상된다.

걱정스러운 것은 국민연금의 과도한 ESG 관련 업무 추진이다. ESG는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를 뜻하는 말로, 투자 의사결정 시 기업의 재무적 요소와 함께 고려하게 된다. 

국민연금은 2019년부터 ESG 평가를 투자 결정에 반영했고, 2022년까지 ESG 가치 반영 자산을 전체 자산의 50%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반영 방법이 매우 과격하다. 기업의 사외이사 추천까지 시도할 조짐을 보이기 때문이다.

발단은 지난 1월에 열린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위원 7명이 갑작스레 포스코와 CJ대한통운, KB금융, 우리금융지주, 신한지주, 하나금융지주, 삼성물산 등 7개 회사에 대해 주주제안으로 사외이사를 추천하는 안건을 발의한 것이다. 

이들 기업을 중대재해 발생, 사모펀드 소비자 피해, 지배구조 문제 등과 관련된 ESG 문제기업이라고 지목하면서, ‘심각한 기업가치 훼손’이 있었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포스코의 경우는 대기오염물질 과다 배출 문제가 언론에 보도됐다. 그러나 포스코는 세계 표준에 따른 대기오염방지 시설을 설치해 운영하고 있고, 오염물질도 환경부 배출허용 기준 미만을 유지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융회사들은 사모펀드 부실 판매가 문제가 됐는데, 결재 라인에서 배제돼 펀드 판매에 관여할 수 없었던 지주사 회장 및 은행장들이 속죄양이 되어 직무정지·문책경고 등 중징계를 통보받았다. 사모펀드 부실 판매는 오히려 감독기관의 감독 부실이 여론의 질책을 받고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한국지배구조원 2021년 1분기 ESG 평가’에서 포스코, CJ대한통운, 삼성물산, 하나금융지주는 모두 A, KB금융과 신한지주는 모두 A+를 받았다. 그리고 이들 기업이 ESG 대응이 부실해서 기업가치가 폭락하고 주가가 폭락했다는 증거는 없다. 그런데도 국민연금은 이들 기업에 주주제안을 통해 사외이사를 파견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현재 국민연금 기금운용위 위원 20명 중에 사용자(기업)를 대표하는 위원은 3명뿐이다. 이미 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기업의 이사까지 선임하겠다고 나선다면 누가 수긍하겠는가.

연기금의 ‘기업가치 제고와 주가부양’이란 본연의 역할이 부각돼야 하는데, 이미 정치·사회적으로 ‘기업 길들이기’, ‘경영권 빼앗기’ 등의 논란이 제기되는 순간 경제활동에 위험성은 커진다. 그래서 많은 전문가가 경영참여를 위한 주주권 행사는 기업 경영권과 자율성 침해 우려가 있으므로 신중하게 행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을 한다.

김웅식 편집국장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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