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8월 영천북방 보현산 전투 중 전사..."12년만에 신원확인"
발굴 전사자 유해 신원확인 위해 유가족 유전자 시료 확보 절실

고 손중철 일병 생전 모습./사진=국방부
고 손중철 일병 생전 모습./사진=국방부

[뉴스워치= 윤영의 기자] 6·25 당시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두고 전쟁터로 나갔던 한 국군 용사가 유해 발굴 12년만에 신원이 확인됐다.

18일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은 경북 포항 지동리 일대에서 지난 2009년 6월 16일 발굴한 6·25 전사자 유해가 고(故) 손중철 일병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는 2000년 4월 6·25전사자 유해발굴사업 첫 삽을 뜬 후 161번째다. 이번 신원확인은 고인의 유가족인 칠순 아들의 유전자 시료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유해를 발굴한지 10년이 경과한 2019년 7월 고인의 아들인 손태규(73)씨는 6·25전쟁에 참전 후 돌아오지 못한 아버지를 평생 그리워하며 지내던 중 TV에서 ‘6·25 전사자 유가족을 찾습니다’라는 시료채취 홍보 문구를 보게 됐다. 이후 국유단을 통해 시료채취에 참여했으며 유전자 비교분석을 통해 가족관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고인은 국군 제 8사단 소속으로 6․25전쟁에 참전, 영천북방 보현산 전투(1950년 8월13∼9월4일)중 전사했다. 당시 국군 제 8사단은 북한군 제15사단을 저지하기 위해 보현산, 고모산, 수석봉, 봉화봉 일대에서 방어작전을 펼치는데 주력했다. 하지만  결국 공세에 몰려 영천으로 철수하게 됐다. 이후 59년이 지나고서야 고인은 완전한 유해의 형태로 전투화 등 유품  7종과 함께 후배전우들에게 수습됐다.

고인은 1930년 1월 29일 경북 안동시 일직면 일대에서 3남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집안은 대대로 농사일을 이어오던 전형적인 농가에서 장남의 책임을 다하며 살다 1949년 19세가 되던 해 배우자 이말례씨를 만나 혼인한 후 슬하에 아들 한 명을 뒀다.

고 손중철 일병은 가정을 이룬 기쁨도 잠시, 아내와 어린 외아들을 남겨 둔 채 국가를 위해 전쟁에 참전했으며 아내는 남편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렸지만 지난 1995년 결국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의 아들 손태규씨는 “전사자 유가족 시료채취를 통해 설마 아버지를 찾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진짜 이렇게 아버지를 만나게 되니 그저 기쁨의 눈물만 날 뿐”이라고 심경을 밝혔다.

국방부에 따르면 현재 유전자 시료채취에 동참한 유가족은 4만 5000여 명으로 미수습전사자에 비해 시료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유해를 발굴해도 누구의 유해인지 알 수 있는 전사자 위치 정보나 단서(인식표 등)가 대부분 없기 때문, 유가족 시료를 확보 해야만 유해와 유가족 유전자 검사를 통해 신원확인이 가능하다.

고 손 일병의 경우도 2009년 유해를 발굴한 후 신원을 확인하지 못하다 유가족인 아들인 손 씨의 2019년 시료채취에 참여함으로써 신원확인이 가능했다.

국유단은 유가족과 협의를 거쳐 신원확인 결과 통보를 위한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를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준수한 가운데 거행한 후 국립현충원에 안장할 예정이다.

윤영의 기자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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