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박서하
그림=박서하

어제로 아쉬운 설 연휴가 끝났네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과 함께해야 했던 이번 설에는 친지를 찾아보기보다는, 보고픈 마음을 선물로 대신해서 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 듯합니다. 명절이라 과일이나 고기, 생선 등의 선물이 주를 이루었을 것 같습니다만 지인 중에는 이번에는 찾아뵙지 못하니까 특별한 마음을 담아 선물을 하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저의 경우는 지갑을 선물한 적이 많습니다. 지갑은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재질, 색깔 디자인의 차이가 크지 않아 고르기 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갑을 선물할 때 지갑만 덩그러니 선물하자니 그렇고 그렇다고 그 속에 돈을 넣어주기에도 얼마를 넣어야 할지 고민하는 때도 있는데 일본에서는 그런 고민은 무효!! 지갑 속에 빨간색 리본을 묶은 오 엔짜리 동전(5円玉)을 넣어주는 센스를 발휘하는 것으로 끝입니다.

지갑에 오엔(5円) 동전을 넣은 것은 오 엔의 일본어 발음 때문입니다. 오 엔은 고엔(ごえん)이라고 발음하는데 고엔은 인연을 의미하는 고엔(ご縁,ごえん)가 같기 때문입니다. 좋은 인연을 부르는 오엔 동전은 동전 부적으로 지갑을 선물할 때 꼭 넣어주는 필수 아이템인 거죠. 이처럼 복을 부르는 돈을 복전, 즉 후쿠센(福銭,ふくせん)이라고 합니다.

그럼 빨간 리본(赤い紐)은 왜 묶느냐. 요즘은 빨간색 외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색으로 동전을 묶는 사람도 많지만, 빨간색은 악운을 물리치는 색으로 인식하기에 빨간색을 선호하는 것이지요. 그러고 나서 끈으로 돈과의 인연을 무스부(結ぶ), 즉 연결하는 거죠. 평소에도 늘 돈과 인연을 맺기 위해서 5엔짜리 동전을 꼭 지갑에 넣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는데 자신이 태어난 해에 만들어진 동전을 넣고 다니면 효과가 크다는 설도 있습니다.

후쿠센으로 인식되는 오엔 동전은 신사에서 소원을 비는 새전(賽銭)으로도 사용되는데 하나는 연이 있기를, 두 개는 연이 거듭되기를, 3개는 충분한 연이 있기를, 4개는 좋은 인연이 있기를, 5개는 이중으로 연이 있기를, 6개는 '주변 사람에게도 연이 있기를', 뭐 이렇게 95개까지 설명하기도 합니다. 대체로 고통스러운 인연을 사라지고 좋은 인연만 가득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는 거죠.

오엔 동전처럼 일본인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일본어 발음과 어떤 사물을 연결하여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얼핏 말장난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왠지 찝찝한 것은 피하고자 하는 인간의 심리가 작용한 것인데, 길조를 상징하는 것들을 엔기모노(縁起物), 즉 인연을 만들어주는 물건이라고 합니다.

일본인의 삶에는 다양한 엔기모노가 있는데 일식집에서 어서 오라고 손을 흔드는 고양이도 엔기모노 중 하나입니다. 엔기모노를 함부로 대하거나 무시하면 재수가 없다는 의미로 엔기가 와루이(縁起がわるい), 라고도 하고 재수가 좋다는 의미로 엔기가 이이(縁起がいい)라고 합니다.

2021년에는 여러분 모두에게 좋은 연(ごえん)이 있으셔서 '엔기가 이이(縁起がいい)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자신의 운은 스스로 개척할 수밖에 없겠지만 인간의 노력과 과학이 발전이 무력해지는 한 해를 보내고 보니 어느새 엔기모노에 마음을 의지해 보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최유경 교수
최유경 교수

◇이화여자대학 졸업

◇오사카부립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서울대, 성균관대 등 다수대학에서 강의

◇서울대인문학연구원, 명지대 연구교수, 학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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