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박서하
그림=박서하

이번 주에는 설 명절이 들어있네요. 음력설을 지내는 나라는 세계에서 우리나라, 중국, 몽골, 베트남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도 우리처럼 근대이전까지는 음력을 사용했었지만, 서구화를 추진하는 명치 정부는 1873년1월부터 음력 대신 양력, 즉 태양력을 사용한다고 신문에 발표를 해버리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국민으로서는 그야말로 어느 날 갑자기 음력이 사라진 거죠. 당황스러웠지만 그다지 반발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절기는 음력으로 지내고 있죠. 지금도 이사 가는 날, 장 담그는 날은 음력으로 좋은 날을 택하는 어르신이 집안에 계신 댁들도 많을 겁니다. 한국인에게 음력은 아마 날자 이상의 의미를 지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설을 신정, 구정이라고 말하는 것을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 표현은 설을 정월(正月)이라고 부르는 일본어와 아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총독부는 일본처럼 양력설을 지내기를 권장하면서 1월 1일을 새해로 지정하면서 음력은 버려야 할 구습으로 치부했습니다.

1936년2월1일부터 열흘 동안 '동아일보'에는 [旧正(구정)을 노리는 迷信魔(미신마)]라는 제목의 기사가 연재될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한국인은 여전히 음력설을 지냈었습니다. 2개의 설이 생기면서 양력설을 신정(新正月), 음력설을 구정(旧正月)이라고 부르게 된 거죠.

일본에서 설은 1월을 의미하는 정월에 존경을 나타내는 오(お)자를 붙여 오쇼우가츠(お正月)라고 합니다. 일본사람들은 12월31일을 오미소카(大晦日,おおみそか)라고 하고 대청소(大掃除)를 합니다. 설날은 새로운 한 해의 신을 맞이하는 날이기에 미리 깨끗하게 청소를 하고 신을 맞이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날 밤에는 한 해를 넘긴다는 의미의 토시코시(年越し)라는 이름을 붙인 토시코시소바(そば)를 먹습니다.

소바를 먹는 것은 가늘고 긴 소바 면처럼 건강하게 오래 살고, 올해의 나쁜 운을 없애고 새해에는 금전운이 상승하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았다고 합니다. 코시코시소바를 먹고 나서 제야의 종을 듣고 아침을 먹고 집 근처 혹은 유명한 신사로 참배하러 갑니다. 한 해 첫날에 신사참배를 한다고 하여 하츠모데(初詣)라고 합니다.

신사참배라고 해서 뭐 특별한 종교적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종교와 상관없이 한 해 좋은 운수를 기원하고 한 해의 운을 점치고 나쁜 운을 버리기 위한 일본인의 풍습입니다. 신사 주변에는 12월 31일 저녁부터 각종 놀이, 각종 길거리 음식과 술을 파는 노점상이 즐비하게 들어섭니다. 최근에는 주로 아침 식사 후에 가족과 함께 신사참배를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원래는 새해가 막 시작되는 밤 12시부터 신사를 찾는 사람들이 더 많았습니다.

일본인은 우리처럼 제사를 지내지는 않지만, 일본의 가정집에는 조상의 위패를 모시는 가미타나(かみだな,神棚)라는 것이 있는 집이 많습니다. 그곳에 카가미모치(かがみもち,鏡餅)를 올려놓습니다. 카가미모치란 한자에서 알 수 있듯이 쟁반처럼 크고 동그란 거울 모양의 흰 쌀로 만든 떡입니다.

일본의 창조신인 아마테라스의 상징이 거울이고 일본인에게 쌀을 전해준 신이기 때문에 신년에 쌀로 만든 카가미모치를 바치는데, 그 떡에 신이 깃들여있다고 해서 바로는 먹지 않고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한 10일 뒤에 거울 떡을 나무망치로 깨는데 이것을 카가미아케(鏡開け), 즉 거울 열기라고 합니다. 이제 떡에서 신이 떠났으니 그 떡을 잘게 부숴서 떡국으로 끓여 먹습니다.

그럼 설날 아침에는 뭘 먹을까요. 가족들이 모여앉아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의미인 아케마시테 오메데토 고자이마스(明けまして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라고 인사를 나눕니다. 새해가 밝았으니 축하한다는 뜻이죠. 그러고 나서 크고 네모난 여러 겹으로 쌓아 올린 도시락통에 각종 음식을 넣은 오세치요리(おせち料理)를 먹습니다.

이 도시락통에는 주로 악을 물리친다고 믿는 검은콩, 다산을 상징하는 날치알, 하나로 합해져 부부 금실을 의미하는 대합 조림 등을 넣습니다. 그리고 일본어로 타이(鯛)인 도미는 축하한다의 메데타이(めでたい), 일본어로 코부(こぶ)라고 하는 다시마는 기쁨을 의미하는 요로코부(よろこぶ)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도시락에 넣어 먹습니다.

새해 아이들이 가장 기대하는 세뱃돈이 일본에도 있죠. 오토시다마(お年玉)라고 하는데 작고 귀여운 봉투에 넣어 아이들에게 주지만 우리처럼 세배는 하지 않습니다. 주면서 덕담 정도는 하겠죠. 모쪼록 새해에는 즐거운 일만 가득하시길, 그리고 마스크를 벗고 정겹게 마주할 날을 기대해봅니다.

최유경 교수
최유경 교수

◇이화여자대학 졸업

◇오사카부립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서울대, 성균관대 등 다수대학에서 강의

◇서울대인문학연구원, 명지대 연구교수, 학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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