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노동 피해 176건'...취객 폭언‧폭행 가장 많고 마스크 착용 요청 폭력도

사진=서울교통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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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워치= 현성식 기자]  # 지난해 4월 2일 12시 10분께 열차 운행이 종료된 이후 술에 취해 1호선 서울역에 찾아온 한 승객이 “지하철 운행이 왜 벌써 끊겼냐”며 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서울역 직원 A씨는 승객에게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대비하기 위해 방역, 소독 등에 충분한 시간이 필요해서”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승객은 계속해서 “내가 타고 갈 지하철을 내놓으라”라는 무리한 요구를 계속한 끝에 급기야 A씨를 폭행했다. 이에 견디다 못한 A씨는 결국 승객을 폭행죄 등으로 고소했으며 해당 사건은 검찰로 송치(기소 의견)됐다.

지난해 서울 지하철역 직원에게 발생한 ‘감성노동’ 피해사례가 총 176건으로 월평균 14건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중 가장 많은 유형은 취객의 폭언‧폭행이었다. 역사나 전동차 내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기물을 파손하는 취객이 주를 이뤘으나 마스크 착용을 요청하는 직원에 대한 폭언‧폭행도 많았다.

감정노동은 업무 과정에서 노동자가 자신의 감정 상태를 통제하고 고객에게 맞출 것을 요구받는 형태의 노동을 의미한다.

피해사례 중 가장 많은 유형을 차지한 것은 취객 안내 시 폭언, 폭행이었다. 술에 취해 역사나 전동차 내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기물을 파손하는 난폭한 모습을 보이는 승객이 이를 제지하는 직원에게 욕설 등 모욕적 언행과 물리적 폭력을 가하는 경우가 많았다.

부정승차로 적발돼 부과금을 내야 하는 상황에 앙심을 품어 폭언을 내뱉고 심지어 도주하는 승객을 붙잡자 “성추행으로 맞고소를 하겠다”며 협박하거나 지속적인 업무방해 행위를 이어가며 직원을 괴롭히는 사례도 있었다.

실제 지난해 2월 13일 9시께 3호선 남부터미널역 직원 B씨가 무단으로 지하철을 탑승한 승객을 발견하고 이를 단속, 부과금 납부를 요청했다. 승객은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기에 부과금을 납부할 수 없고 오히려 직원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과금을 납부하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할 수밖에 없다"는 B씨의 말에 승객은 B씨에게 욕설을 내뱉었고 경찰에 신고 시 맞고소할 것이며 “업무를 똑바로 하지 않는다”며 “감찰부서에 고발하겠다”는 협박성 언행도 이어갔다. B씨는 승객을 폭언 등을 이유로 고소했으나 승객은 기소유예죄 처분을 받았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렸던 지난해 만큼 마스크 미착용 신고를 받고 전동차 안 등 현장으로 출동해 마스크 착용을 요청하는 직원에게 폭언을 내뱉거나 폭행을 가하는 사례도 많았다.

이밖에 개인 유튜브 중계 등을 위해 상습적으로 역사 내에서 시위를 진행해 다른 승객에게 불편을 주는 질서 저해자를 제지하다 오히려 이들에게 폭언, 폭행을 당하는 등 다양한 피해 사례들이 있었다.

서울교통공사가 ‘감정노동보호전담TF’ 신설 1주년을 맞아 2일 발표한 ‘2020년 감정노동 피해 현황과 관련 지원 내용’에 따르면 심리상담 69건, 치료비 지원 27건, 경찰서 동행 및 전화상담 338건 등 총 434건으로 나타났다. 공사는 지난해 2월 도시철도 업계 최초로 ‘TF’를 신설, 감정노동 피해직원에 대해 업무분리, 심리상담, 고소 진행 시 경찰서 동행, 치료비까지 전문적‧체계적인 지원을 해왔다.

감정노동 피해를 당한 역직원은 심신 안정을 위해 즉시 업무에서 분리시켰으며 고소로 이어질 경우 심리안정휴가 3일을 부여했다. 또 공사 내 임상심리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후유증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진단서 발급비용, 치료비 등 금전적 지원도 병행했다. 

감정노동의 중요성은 2010년대 이후 크게 부각됐다. 이에 따라 감정노동 종사자에 대한 보호가 사회적인 공감대를 얻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사회적 안전망이 마련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결과가 지난 2018년 10월 18일 ‘감정노동자보호법’이라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의 새로운 시행이다. 법 개정에 따라 사업주는 고객의 폭언, 폭행 등으로 인한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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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2016년 1월 ‘서울특별시 감정노동 종사자의 권리보호 등에 관한 조례’ 등을 제정, 노동환경 개선계획 발표해 실태조사, 권리보장교육 등을 시행하기도 했다. 공사 역시 이같은 흐름에 발맞춰 노동조합과 함께 논의한 끝에 도시철도 업계 최초로 감정노동 업무를 수행하는 직원을 전문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감정노동보호전담TF’을 신설, 활동을 개시했다.

지자체에서 감정노동 업무 종사자를 위한 조직, 단체를 신설, 운영한 경우는 있었으나 도시철도 업계에서 감정노동 업무 종사자만을 전담하는 조직을 신설한 것은 이번이 최초다. TF 활동을 거쳐 심리상담을 받은 직원이 69명, 치료비 지원이 27건이었다. 감정노동 전임 직원이 경찰서 동행, 전화 상담 등으로 피해 직원을 지원한 사례는 총 338건이었다.

감정노동 피해 발생 시 공사는 우선 피해 직원을 업무에서 곧바로 분리시켜 심신의 안정을 우선 취할 수 있도록 휴식을 부여한다. 이후 고소 진행 시 3일 간의 심리안정휴가를 부여하고 진단서 발급비용, 치료비 등 금전적 지원도 병행키로 했다.

최영도 공사 보건환경처장은 “지하철은 하루 수백만 명이 이용하는 거대한 공간인 만큼 고객과 접점이 많아 감정노동 빈도와 강도가 매우 높은 편”이라며 “여전히 감정노동 피해 사례가 발생 중인 만큼 제도 보완을 위해 역량을 집중 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성식 기자 newswa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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