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박서하
그림=박서하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원하는 굿즈를 사기 위해, 아니면 TV에서 본 맛집을 가 보기 위해 1박 2일, 혹은 당일치기로 일본여행을 다녀오는 젊은이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이 같은 배경에는 저가 항공사(LCC)의 등장이 가장 큰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겨우 2시간밖에 걸리지 않은 인천에서 나리타의 편도 표 요금이 50-60만 원대에 판매될 정도로 비싸 일본여행은 일상화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시절에도 한국의 중년여성분을 중심으로 부산에서 배나 비행기를 타고 일본온천을 즐기기 위해 규슈의 벳푸, 다자이후로 떠나는 일은 상당히 많았습니다.

한국에 IMF가 터졌을 때, 규슈의 관광사업이 위태로울 정도였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한국인이 온천여행을 즐기기 위해 규슈에 갔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규슈를 방문하는 한국인이 많아서인지, 늘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느낌을 풍기는 일본의 세관 직원조차 후쿠오카공항에서는 한국어로 '안녕하세요'라고 반갑게 인사해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또한, 지금처럼 한류가 유행하던 시기도 아니었는데도, 규슈지역에는 가는 곳마다 한글로 안내문이 적혀있을 만큼 규슈는 한국에 매우 친화적인 태도를 보이는 곳입니다.

규슈와 한국은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으로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는 곳입니다. 규슈에서 발굴된 무덤, 패총, 유적지에서는 수많은 한국 관련 유물이 출토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규슈가 한국과 연이 깊은 것은 시모노세키, 나가사키, 사가 등 규슈의 항구도시는 한국에서 일본에는 가는 가장 빠른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역으로도 그렇습니다. 임진왜란 때에도 일제강점기 때에도 규슈의 항구도시에서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관부연락선입니다. 지금도 부산과 시모노세키시 오가는 관부훼리가 다니고 있습니다만 일제강점기에는 상당히 많은 한국인이 두 나라를 연결하는 관부연락선(関釜連絡船)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시모노세키항과 인접하고 있고 독자적으로 하카타항도 있는 후쿠오카는 히로시마, 나가사키와 더불어 군사 물자공장이 있던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강제징용된 많은 노동자가 규슈에 살게 되었는데 그 흔적이 후쿠오카의 식문화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일본인들이 명란 마요, 명란 주먹밥, 명란 스파게티 등 다양한 요리로 변용시키며 정말 즐겨 먹는 명란젓입니다. 지금 일본인들은 후쿠오카(福岡)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사실, 이 음식은 일제강점기, 일본에 건너온 한국인에 의해 전해진 음식입니다. 그건 명란젓을 일본어로 멘타이코(明太子), 명태의 아이라고 부르는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지금도 일본인들은 생태를 먹지 않습니다. 물론 생태를 명태라고 부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멘타이코라고 한다는 것은 이 음식이 한식에서 유래했다는 방증입니다.

또 하나 후쿠오카를 대표하는 돈코츠라면입니다. 우리가 즐겨 먹는 인스탄트라면은 물론 생라면, 그리고 라면이라는 말 또한 일본어 라멘에서 온 겁니다. 그렇다고 라면이 고유한 일본어는 아닙니다. 1910년경까지는 일본에 라면이라는 음식이 없었기 때문이죠. 지금의 라면과는 다르지만, 라면 비슷한 것이 1860년경 요코하마나 하코다테처럼 외국인이 출입이 많은 항구도시에서 처음 등장했다고 전해집니다.

화교들에 의해 만들어져 처음에는 중화소바라고 불렀는데 소비대상이 일본으로 변화면서 라면이라는 말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면은 중국어의 면이지만 라가 뭘 뜻하는지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처음 도쿄에 등장한 라면은 간장과 된장으로 맛을 낸 2가지가 전부였는데요. 최근 도쿄의 번화가에 가면 [하카타라면(博多ラーメン)]이라는 간판을 내건 가게들이 더 눈에 띕니다.

하카타라는 것은 후쿠오카의 옛 이름으로 후쿠오카에 가면 라면 거리가 있을 정도로 하카타라면은 후쿠오카의 명물로 꼽힙니다. 그런데 이 라면은 일본에서는 특이하게도 돼지 뼈를 고아 국물을 낸 라면입니다. 하카타라면 전문점이 아닌 곳에서는 돼지 뼈 라면이라는 의미로 돈코츠라멘(とんこつラーメン)이라고 합니다.

일본 음식에는 한국처럼 뼈를 고아서 먹는 음식이 전혀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 뽀얀 돼지 뼈 국물로 만드는 하카타라면 이야말로 한국의 식문화에서 만들어진 요리라고 봐야 할 겁니다.

더군다나 이 라면은 1937년에 만들어졌다고 하니, 한국인들이 전해준 음식이 맞겠죠? 특히 오사카에는 한국 관광객에게도 인기가 있는 킨류라면(金龍ラーメン)집이 있는데 그곳에는 밥과 김치, 부추김치가 무한 리필되니 언젠가 꼭 드셔보시길.

최유경 교수
최유경 교수

◇이화여자대학 졸업

◇오사카부립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서울대, 성균관대 등 다수대학에서 강의

◇서울대인문학연구원, 명지대 연구교수, 학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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