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호 / 동덕여대 교수

4월 13일 실시되는 총선을 앞두고 많은 후보들이 당선을 위하여 그동안 준비하였던 공약을 발표하였다. 180만이 넘는 외국인 이주민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서인지 그중에는 다문화와 관련한 공약들도 눈에 띈다. 이주민 중 귀화한 사람은 당연히 선거권을 행사하게 된다.

여성가족부 자료에 의하면 2015년 현재 한국인과 결혼해 한국 국적을 취득한 '혼인 귀화자'가 9만 2316명(30.2%), 기타 사유로 국적을 취득자는 6만5748명(21.6%)이다.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외국인에게도 제한적이지만 선거권이 허용된다. 2006년 5월 31일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에 외국인 참정권자는 6726명이었는데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는 1만 1680명,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외국인 유권자 수는 4만 8428명이었다.

2005년 8월 공직선거법이 개정돼 외국인이더라도 영주권 취득 후 3년이 지난 19세 이상의 영주권자는 총선이나 대선에서는 제외되지만 지방선거에서는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국에선 영주권(F-5)을 획득하는데 상당히 조건이 엄격한 편이라 6500만 원 이상의 재산을 지니며 7년 이상 한국에 체류(F-2)해야 한다. 결혼이민자의 경우에도 3천만 원 이상의 재산 관계를 입증해야 한다.

예전에는 일부 특권계층에게만 참정권이 부여되었으나, 18~19세기 프랑스와 미국의 인권선언을 계기로 그 이후에는 많은 민주주의국가에서 일반국민들에게 평등하게 참정권을 인정하였다.

참정권은 국민 개인의 불가양(不可讓)·불가침의 권리로 인해 외국인의 참정권 허용 여부에 대하여는 나라마다 취하는 태도가 다르다. 미국은 외국인에게 대선, 총선, 지방선거 모두 허용하지 않는다.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는 지방선거 참정권이 인정되며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아이슬란드는 특정 연수 이상 거주한 외국인에게 지방참정권의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허용한다. 칠레와 우루과이는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 모두에 선거권을 인정하며 5년 이상 거주한 경우에 한해 투표권이 주어진다.

과거 식민지 시절의 관계를 고려하여 참정권을 달리 부여하는 나라도 있다. 브라질은 포르투갈 국민에 한해서,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브라질인과 일부 스페인어 권 국가 주민들에게 대선과 총선의 선거권 등을 인정한다.

영연방소속여부에 따라 참정권을 달리 부여하기도 한다. 캐나다는 영연방 소속 외국인에게 지방선거 선거권을 일부 주에서, 호주는 영연방에 한하여 총선과 지방선거 선거권을 일부 주에서, 뉴질랜드는 1년 이상 거주한 외국인이나 영국인에게 총선과 지방선거의 선거권을 인정한다. 아일랜드는 영국인의 경우엔 총선의 선거권과 지방선거의 선거권, 피선거권을 인정하며 그 외 외국인은 지방선거의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인정한다. 다만 대선은 다만 영국인이라도 허용되지 않는다.

EU 출신여부에 따라 참정권을 달리 부여하기도 한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는 EU 회원국민일 경우엔 지방선거의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인정하며 네덜란드, 벨기에, 그리스는 EU 출신에겐 지방참정권의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인정하며 그 외 외국인에겐 지방참정권의 선거권만 인정한다.

우리의 경우에도 정치적 권리의 부여는 한국 사회에 적응 가능성의 여부, 정착 가능성의 여부 등을 고려하여 판단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기 때문에 이주민들에 대한 권리 부여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차별과 억압은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가장 큰 장애요인이며, 이를 철폐하지 않고는 통합을 논할 수 없다. 차별과 억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다문화 이주자들에게 정치적 권리의 부여를 통해서 합법적 권리를 취득하도록 도움을 주고, 그렇지 못한 경우는 보편적 인권의식을 기반으로 이들의 권리를 보호해 주어야 한다.

우리의 경우 지방자치가 본격화된 지 이미 2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통치와 행정의 중심은 중앙이고, 과도한 법적·재정적 권한과 기능이 중앙정부에 집중되어 있다. 또한 다문화정책의 중요한 방향은 중앙정부에서 정해진다.

그런데 이주민의 선거권을 총선, 대선에는 제한하고 지방자치선거에서만 주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장차 이주민이 늘어 수백만 명에 이르기 전에 이주민의 참정권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필요하다.

저작권자 © 뉴스워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