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오피니언 외부칼럼
미얀마에서 온 편지(32) 버마전선의 통곡 #1. 딴퓨자옛, 1942년 가을티처 정 / 미얀마 기독교엔지오 Mecc 고문
▲ 방콕에서 양곤까지 일본군이 해상 보급로를 대신하기 위해 만든 죽음의 철도공사 중 가장 혹독했던 '콰이강의 다리'. 영화로 유명해진 콰이 강의 다리는 현재 관광객들의 명소가 돼 있다.

때로는 쓰고싶지 않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이야기의 장소가 모두 관광지가 되었지만, 그 시절을 돌이키면 가슴이 아프다가도 울분이 치밉니다. 하지만 70년이 지난 사건이라 생각하고 마음을 추스리며 노트북을 엽니다.

당시 버마 1942년부터 1945년까지의 3년. 전쟁 중이긴 하지만 이 기간에 ‘유태인 학살’에 비견할 만한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모두 일본의 버마전선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이 기간은 버마가 일본 강점기에 있었습니다.

1. 버마 딴퓨자옛에서 태국 농뿔라둑을 잇는 이른바 죽음의 철도공사에서 일본군의 가혹행위로 전쟁포로 포함 민간인 11만6천여 명이 사망했다

2. 버마 미찌나 지역 등에 2,800여 명의 한국인 위안부가 소위 집중파견되었는데 그 생사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3. 강점기의 버마 양곤버마 국민들에게 자행된 고문과 여성학대그리고 버마독립군의 희생들

▲ 박물관에 남아있는 당시 철도건설에 사용된 도구들.

딴퓨자옛(Thanbyuzayat). 양곤에서 남부로 조금더 내려가면, 해안과 태국 국경 사이에 있는 도시입니다. 1942년 3월에 양곤이 일본군에 의해 초토화되면서 버마는 일본의 수중으로 들어갑니다. 그해 9월에 이 도시와 태국의 농뿔라둑(Nong Pladuk)을 잇는 415km의 철로공사가 시작됩니다. 태국 구간 303km, 버마 구간 112km.

이 구간은 방콕에서 양곤까지, 일본군이 해상 보급로를 대신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버마는 인도로 나아가는 전초기지입니다. 연합군의 공격으로 해상보급로가 차단되자, 전쟁 군수물자를 육로로 버마전선까지 운반하는 철로입니다. 당시 영국 군사전문가들은 철도공사를 최소 5년으로 예상했지만 43년 12월에 완공, 14개월만에 공사를 마쳤습니다.

▲ 버마전선에서 철도공사에 동원된 미얀마 양민들.

이 구간은 강을 따라 이어지고, 가파른 절벽과 산들을 통과하는 험난한 지형임에도 짧은 공사기간으로 끝냈습니다. 27만명이 동원되어 손과 곡괭이만으로 강행했습니다. 하루 16시간의 중노동과 일상적인 고문이 가해졌습니다. 과로사, 영양실조, 탈진과 말라리아 등의 질병으로 11만6천여 명이 사망했습니다. 공사중 기진해 절벽에서 떨어져 죽거나 굶어서 죽은 이들이 많았습니다. 전쟁포로가 1만6천여 명, 민간인이 약 10만여 명이 희생되었습니다.

공사에 투입된 인원은 전쟁포로들과 인도차이나의 민간인들이었습니다. 영국, 네덜란드, 호주와 미국 등 전쟁포로와 미얀마 민간인, 태국의 죄수, 징용된 한국인 등. 그중 유럽인 중에는 영국인이 6천5백여 명으로 가장 많이 희생되었습니다. 민간인 중에는 버마인들이 가장 많습니다. 사망자들은 태국의 깐짜나부리(kanchanaburi)와 버마의 딴퓨자옛에 각각 묻혔습니다.

태국 구간의 ‘콰이강의 다리’는 가장 혹독했던 공사중의 하나였습니다. 영화로 만들어지기까지 했습니다. 태국의 <  Hellfire Pass Memorial Museum>에 가면 당시의 공사과정과 자료, 그리고 참혹한 노동자들의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갈비뼈가 드러난 가슴. 채찍질 하는 가혹장면 등. 야간에 공사를 위해 불을 밝힌 모습이 마치 지옥의 횃불처럼 보인다 해서 ‘Hellfire Pass’입니다.

‘3.5미터’마다 한사람씩 죽어나간 죽음의 철도와 콰이강의 다리는 결국 연합군의 폭격으로 무너졌습니다. 

▲ 현재 태국 - 버마철도노선의 태국쪽 종착역인 남 톡 사이욕 노이 역.

태국 구간은 이 ‘죽음의 철도’를 콰이강의 다리를 이용한 관광상품으로 개발하였지만, 미얀마 구간은 오랜 세월 동안 그대로 방치해두었습니다. 최근엔 묘지를 단장하고 딴퓨자옛 역을 보수하는 작업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많은 세월이 지나 콰이강의 다리 앞에서 한 만남이 있었습니다. 당시 가혹행위를 했던 일본 헌병과 가혹한 고문을 당한 영국군 포로 로멕스 노인. 80세가 넘은 나이가 돼서야 두 사람이 그 다리 앞에서 용서를 빌고 화해를 해주는 상봉 장면입니다.

아직도 희생당한 미얀마인의 정확한 숫자는 파악되지 않습니다. 태국은 일본과 동맹을 유지했기에 피해가 덜 하지만, 미얀마인이 가장 많이 동원되고 희생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미얀마로 돌아오지 못한 노동자들도 있습니다. 아직도 ‘죽음의 철도’가 이어지는 태국의 강 주변에는, 미얀마 몬족의 후예들이 이방인으로 비참하게 살고 있습니다.

 

----티처 정 프로필-----

강원도 삼척시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일요신문 사회부장
경향신문 기획팀장
MBN 투자회사 엔터비즈 대표이사
현 희망마을 사회적 협동조합 고문
현 미얀마 고아와 난민을 위한 기독교엔지오 Mecc 고문으로 양곤에서 근무
e-mail: mpr8882@hanmail.net

뉴스워치  webmaster@newswatch.kr

<저작권자 © 뉴스워치,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뉴스워치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