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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에서 온 편지(24) 아름다운 동행법 --- 듣기, 보내기, 가보기티처 정 / 미얀마 기독교엔지오 Mecc 고문
▲ 양곤의 일몰

한국은 이달부터 휴가철입니다. 직장인들에겐 손꼽아 기다린 휴가입니다. 하지만 선진국에 비해 휴가가 너무 짧습니다. 이때가 되면 생각나는 일이 있습니다. 중간 간부 시절입니다. 앞만 보고 달리던 어느 날, 제가 깊은 슬럼프에 빠졌습니다.

일에 의욕도 없고, 사는 게 우울합니다.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생각을 거듭한 끝에 사표를 써가지고 다니다 휴가 전날 동료에게 주었습니다. “사표수리하는데 시간이 걸리니 내가 휴가가 끝나고도 안돌아오면 제출해줘. 안돌아온다고. 아주 쉰다고.”

저는 직업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공부를 새로 해서 다시 출발하자’ 하는 마음으로 떠난 곳이 울릉도입니다. 우선 쉬면서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울릉도는 저의 부친께서 살다가 돌아가신 곳입니다.

▲ 미얀마 전형적인 황토길

저의 어머니가 암으로 일찍 돌아가신 후, 아버지는 그곳으로 이주해서 일하며 평생 사셨습니다. 너무 먼 곳이라 제가 대학졸업 무렵 교생 실습도 거기로 갔습니다. 아버지를 보기 위해서죠. 울릉도에 교생이 처음 왔다고 조회를 한 기억이 납니다.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와 얘기를 나누다보니, 아버지 인생이 참 기구합니다. 어린 5남매를 낳고 아내가 갑자기 떠날 줄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마치 죄인인양 낯선 섬으로 와서 자식들을 위해오징어를 말리며 살게 되기까지. 아버지는 전쟁 시절 평양에 가장 먼저 진격한 사단의 장교 출신입니다. 많은 부하들을 지휘해본 사람입니다.

인생은 참 애매하며 불투명합니다. 정확하게 가려 해도 부정확해집니다. 사랑하는 가족도 언제 떠날지 모릅니다. 원하는 직업이 있어도 엉뚱한 일을 합니다. 그게 인생이다. 아버지는 계속 말을 잇습니다. 그러니 네 마음 가는대로 하거라. 어느 길이 좋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게 있다. 너도 언젠가 사람들을 지휘할 때가 있을 거야. 전쟁하고 같아. 사람을 갈라지게 해선 안돼. 그걸 위해선 2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먼저 들어주는 것. 또하나는 힘든 사람이 있으면 그 집에 가봐라.

▲ 양곤 쉐다곤 파고다 저녁풍경

휴가가 지나고 보름이 지났습니다. 회사동료에게 전화를 해보니 사표는 전달했는데, 제 전화만 오길 기다렸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국장께서 사표는 찢어버리셨고, 어제께 ‘네가 받을 통장 알아내고 한달만 쉬고 오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렇게 제 직장생활 20년 중에 한달의 휴가가 있었습니다.그분은 저 때문에 윗분들에게 혼이 났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지만 지금도 서로 카톡을 하는 오랜 사이가 되었습니다.

직장은 함께 가야하는 곳입니다. 별별일이 다 생깁니다. 쉴새없이 떠나고 들어오고, 사고로 세상을 떠나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슬플 때도 많습니다. 가만히 생각하니 정말 전쟁입니다. 두 분의 멘토로 인해 제가 얻은 게 너무 많습니다.

한 매체에서 국장으로 근무할 때였습니다. 어느날 다른 부서의 국장이 심각해져서 찾아왔습니다. “자네 부서는 왜 이직이 없는 거지. 우리 부서는 이직이 잦아 사장이 자네 부서에 가서 공부 좀 하라고 하네. 그 비결이 뭔가?” 저는 우리 부서에 이직이 있다없다는 생각을 안해봐서, 곰곰이 생각하니 2년 가까이 없었던 거 같습니다. 무슨 비결이 있었나.

비결이라면 아버지 말대로 ‘들어주기’를 한 거 같습니다. 그리고 힘든 직원이 있으면 집에 가본 거 같습니다. 그리고 휴가를 붙여서, 원하는 시기에 보름씩 준 거 같습니다. 두 멘토께서 주신 비결입니다. 휴가건은 누가 보고했는지 일년만에 발각이 되어서, 그것 때문에 제가 경위서에다 감봉조치를 받았습니다.

저는 여직원들이 ‘좀 얘기할 게 있어요’ 하면 무언가 심각한 일이 있음을 직감합니다. 폭발 직전의 상태가 틀림없습니다. 차장과 부장을 무시하고 저를 찾는다는 것은. 회사가 파하고 아무도 없는 사무실. 마주앉은 자리. 그때부터 들어줍니다.

▲ 바간의 풍경

여직원은 1시간을 넘기면서부터 눈물을 글썽이며 감정이 드러납니다. 저도 그 시절을 겪었기에 애처롭습니다. 맞대고 일하는 차장 혹은 부장과의 갈등, 승진문제, 애정문제도 있습니다. 보통 2시간이 가까이 되면서 진정이 되기 시작합니다.

저도 그 시간이 괴롭지만 남녀는 다른 거 같습니다. 여직원들은 섬세합니다. 그걸 다 듣지 않으면대화 안한 거와 같습니다. 끝까지 다 들어주어도 제가 어떤 결론을 줄 수 없습니다. 차장을 해직시킬 수도 없고, 내 앞의 직원을 다시 승진시킬 수도 없습니다. 그래도 여직원은 들어준 것만으로 자신의 마음을 정리할 줄 아는 지혜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자들은 다릅니다. 들어주거나 설득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해결해주려는 동행이 필요합니다. 제가 하루는 직원이 중요한 일을 미루고 결근을 했길래 밤에 집에 찾아가보았습니다. 남자들은 말을 잘 안합니다. 가보니까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가 누워 계시는데, 아픈 정도가 아니라 우울증이 심해져 공황장애까지 왔습니다.

▲ 라오스 메콩강 일몰

유산이 있어 재산은 많은데 무슨 이유일까요. 그 직원과 늦게까지 얘기를 나눴습니다. 어머니는 ‘남편의 의존도’가 높은 분이셨습니다. 다음날 둘이서 전문병원을 수소문해서 어머니를 옮겼습니다. 그 직원은 결근한 그날, 회사를 그만둘 생각이었습니다.

제 얘기를 다 듣고난 그 국장이 메모를 했습니다. 옆에서 보니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여직원 1시간 30분에서 2시간 들어주기, 남직원 결근시 집에 가보기, 휴가 붙여서 확실히 보내주기>.

수첩을 접으면서 그가 말했습니다. “휴가는 안되겠네, 그건 못하겠어.” 제가 속으로 말했습니다. “휴가, 그게 가장 중요한데. 휴가가 너무 짧아.”

 

----티처 정 프로필-----

강원도 삼척시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일요신문 사회부장
경향신문 기획팀장
MBN 투자회사 엔터비즈 대표이사
현 희망마을 사회적 협동조합 고문
현 미얀마 고아와 난민을 위한 기독교엔지오 Mecc 고문으로 양곤에서 근무
e-mail: mpr8882@hanmail.net

뉴스워치  webmaster@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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