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종군은 강등이 아닌 경고...실제로 지휘관 역할

▲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 11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청에서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 관련 입장을 밝힌 후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사진제공=연합뉴스

[뉴스워치=김도형 기자] 검찰의 기소 결정이 내려진 이재명 경기지사에 대한 더불어민주당 징계는 일단 멈춰졌다. 재판에서 유죄 판결이 나오지 않는 이상 이 지사의 출당 혹은 제명 등 당 차원의 조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이 지사가 스스로 모든 당직을 내려놓고 ‘백의종군’하겠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를 당 지도부가 받아들여 ‘사실상 당원권 정지’로 논란을 봉합했다.

이로 인해 ‘백의종군(白衣從軍)’이라는 단어가 유명세를 타고 있다. 백의종군은 명종왕조실록에서부터 시작돼 그동안 조선왕조실록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되는 단어다.

백의종군은 흰옷을 입고 군대를 따라 전쟁터에 나간다는 말이다. 죄를 지은 장수를 처형하는 대신 싸움터에 내보내 공을 세워 속죄할 기회를 주는 처분이다.

그런데 흔히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백의종군’은 장수가 일개 졸병으로 전쟁터에 나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조선왕조실록 어디에도 ‘백의종군’ 처분이 내려진 ‘장수’가 '일개 졸병' 신분으로 전쟁터에 나갔다는 기록은 없다.

백의종군은 범죄를 저지른 장수를 사면하기에는 아깝기 때문에 종군을 조건으로 하는 것을 말하며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 ‘백의영직(白衣領職)’에서 유래됐다. 즉, 흰 옷을 입고 직무를 수행한다는 뜻에서 유래된 말이 백의종군이다.

백의종군으로 중국에서 유명세를 탄 인물은 당나라 장수 유인궤이다. 당나라 고종이 처음 고구려 정벌에 나설 때 유인궤는 군량 수송을 담당했는데 배가 침몰하면서 수많은 사상자를 냈고, 고종은 처형 대신 백의종군을 명했으며, 고구려 멸망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즉, 백의종군은 공을 세우게 되면 다시 관직에 복직되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하는 일종의 사면과 같다.

이순신 장군 역시 두 번이나 백의종군을 경험했다. 1587년 조산 만호 시절 녹둔도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백의종군 처분을 받았지만 그 이후 전투에서 공을 세워 복직됐다.

1597년 정유재란 당시 가토 기요사마(加藤淸正)가 바다를 건넌다는 첩보를 무시하면서 기회를 놓쳤다는 이유로 처형 위기에 놓여있지만 백의종군 처분이 내려졌고, 원균이 칠천량 전투에서 패배한 후 통제사로 복귀를 했고, 명량대첩에서 대승을 거뒀다.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이나 어느 기록에서도 이순신 장군이 군졸로 싸웠다는 내용은 없다. 정유재란 당시 백의종군 했을 때에도 권율 지휘부에서 전직 통제사 직함을 달고 야전군 지휘부에서 참모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수군 지휘부로부터 정식적인 보고를 받아 지휘했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백의종군이 모든 직책을 내놓고 일개 군졸 신분으로 전투에 참여한다는 것을 착각에 불과하다. 임금이 장수를 죽이기 아깝기에 내놓은 고육지책이 ‘백의종군’이며 기회를 주기 위한 방편이다.

이 지사가 더불어민주당에서 백의종군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사실상 당원권 정지로 해석을 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상 당원권 정지가 됐다고 해도 당원 신분은 유지되는 것이다. 출당시키기 아까운 당 지도부는 이 지사에게 기회를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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