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남 사장 “조속한 노력과 작업장 관리 충분치 않아” 공식 사과

▲ 지난 7월 25일 오후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인근 반올림 농성장에서 열린 농성 해단 문화제에 고 황유미씨의 영장사진과 꽃 한송이, 축하떡이 놓여져있다. 삼성전자-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조정위 3자가 제2차 조정재개 및 중재방식에 합의함에 따라 반올림은 농성을 시작한 지 1023일 만에 농성을 해제했다./사진제공=연합뉴스

[뉴스워치=어기선 기자] 삼성전자가 이른바 ‘반도체 백혈병’ 분쟁과 관련해서 조속한 해결을 위한 노력과 작업장 관리 등이 충분하지 못했다고 23일 공식 사과를 했다. 그리고 관련 피해자들에 대한 충분한 보상 절차를 밟겠다는 뜻을 밝혔다.

2007년 황유미씨 사망사건을 계기로 촉발된 ‘삼성 반도체 백혈병’ 분쟁은 이제 그 일단락을 지게 됐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백혈병에 대한 책임 있는 자세를 취하겠다고 밝히면서 오랫동안 이끌어온 지난(至難)한 싸움은 종지부를 찍었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반도체 백혈병 분쟁에 대한 공식 사과는 앞으로 대한항공 여승무원 백혈병 문제로 불똥이 튈 가능성도 있다.

지난 7월 25일 오후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인근 농성장에서 열린 반올림 해단 문화제에서 고 황유미씨 아버지 황상기씨가 나두식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장와 포옹을 하고 있다./사진제공=연합뉴스

11년만의 사과 “안전한 일터로 거듭나겠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사업부 대표이사인 김기남 사장은 2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중재 판정 이행 합의 협약식’에서 “소중한 동료와 그 가족들이 오랫동안 고통받았는데 이를 일찍부터 성심껏 보살펴 드리지 못했다”고 사과했다.

또한 “그 아픔을 충분히 배려하고 조속하게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아울러 “그동안 반도체 및 LCD 사업장에서 건강유해인자에 의한 위험에 대해 충분하고 완전하게 관리하지 못했다”면서 그동안의 잘못을 인정했다.

김 사장은 “병으로 고통받은 근로자와 그 가족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면서 “이번 일을 계기로 더욱 건강하고 안전한 일터로 거듭나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김 사장의 공식 사과로 삼성전자는 피해 노동자들에 대한 구체적인 보상 방안 논의는 제3의 독립기관인 법무법인 ‘지평’에 위탁키로 했다.

이에 지원보상위원장은 김지형 대표변호사가 맡기로 했고, 세부사항에 따라 2028년까지 보상이 차질 없이 이뤄지도록 할 계획이다.

지난 2014년 개봉한 영화 '또 하나의 약속'.

황유미씨 사망...영화 ‘또 하나의 약속’으로 사회적 이슈화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분쟁은 지난 2007년 3월 삼성전자 기흥공장 여성 노동자 황유미씨가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하면서 논란이 촉발됐다.

백혈병 등의 질환을 반도체 제조와 관련된 직업병으로 볼 것인지 논란이 일어났고, 2008년 3월 시민단체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가 발족됐다.

이후 한국산업안전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과 서울대 보건대학원 백도명 교수팀 등이 조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삼성전자는 2012년 반올림 측에 대화를 제안하면서 ‘사과·보상·예방’을 둘러싼 양측의 싸움은 오랫동안 지속됐다.

이런 도중 2014년에는 삼성전자 백혈병 발병 노동자 황유미와 그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개봉됐다.

‘또 하나의 약속’은 삼성전자가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것에 대해 대중문화를 통해 문제를 삼았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또한 제작 금액을 모으기 위해 제작 두레 방식을 선택했고, 1만명이 참여해 제작이 됐으며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관객의 호응이 이어졌으며 전회 매진을 이뤘다.

그만큼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2014년 4월 삼섬전자 권오현 대표이사는 사과 기자회견을 열었고, 그해 12월 조정위원회가 구성돼 2015년 7월 1차 조정권고안이 발표됐지만 합의에 실패했다.

같은 해 9월 삼성전자는 1천억원 규모의 기금을 마련하고 자체 보상안을 내놓았지만 10월 반올림은 자체 보상안을 거부했고, 천막농성에 들어갔다.

그리고 올해 7월 24일 반올림과 삼성전자 양측은 조정위원회 중재안을 무조건 수용하겠다고 서명을 하면서 11년 동안 끌어왔던 분쟁은 사실상 종결됐고, 이날 합의안에 서명을 하면서 종식됐다.

지난 7월 24일 오후 반올림 농성장에 1022일 째 농성을 알리는 알림판이 걸려 있다./사진제공=연합뉴스

삼성 백혈병 분쟁, 대한항공으로 번지나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분쟁은 이제 종식됐지만 이 종식이 대한항공으로 불똥이 옮겨 붙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 국회 국정감사 기간 동안 더불어민주당 박재호 의원은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를 공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동안 대한항공 소속 운항승무원과 객실승무원의 연평균 우주방사선 피폭선량은 각각 2.150mSv(밀리시버트)와 2.828밀리시버트로, 같은 기간 각각 0.481mSv와 0.572mSv를 나타낸 에어부산 승무원들 보다 4~5배가량 높았다.

이는 7개 국제항공운송사업자 전체의 연평균 피폭선량과 비교해도 2배 정도 높은 수치다. 전체 운항승무원 연평균 피폭선량은 1.165밀리시버트, 객실승무원은 1.358밀리시버트다.

원자력안전법에는 항공승무원의 연간 피폭량이 50밀리시버트를 넘지 않도록 되어 있지만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는 유럽 기준에 맞춘 ‘생활주변방사선 안전관리를 위한 안전지침을 통해 연간 선량한도(20밀리시버트)의 30%인 6밀리시버트를 넘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다.

대한항공 승무원의 피폭량이 원안위의 권고인 6밀리시버트를 초과하지 않았지만 그 권고 수준에 근접했고 타 항공사에 비해 높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6월 대한항공에서 일하다 급성골수성백혈병에 걸려 퇴사한 전직 승무원이 산업재해를 신청했다.

따라서 이 승무원이 걸린 급성골수성백혈병이 우주방사선 피폭과 연관이 돼 있는지 조사에 착수할 계획이다.

지난 8일 국회에서 김철민·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신용현 바른미래당 의원 주최로 열린 ‘승무원 우주방사선 피폭 안전관리 개선을 위한 토론회’에서 김성호 대한항공 운항기술부 부장은 “실측 조사를 벌여 프로그램의 신뢰성 논란을 끝냈으면 한다”고 밝혔다.

김종하 아시아나항공 안전예방팀 부장도 “FAA와 이해관계자가 동의한 공정한 실측 조사 계획이 나오면 수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두 대형 항공사가 우주방사선 실측 조사에 동의를 하면서 앞으로 이 결과에 따라 대한항공 백혈병 분쟁의 방향도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가운데 삼성전자가 ‘백혈병 분쟁’에 대해 종지부를 찍으면서 대한항공 백혈병 분쟁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된다.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분쟁 일지

▲ 2005년 6월

삼성전자 기흥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여성노동자 황유미씨, 급성 백혈병 진단

▲ 2007년 3월

황유미 씨 사망

▲ 2007년 6월

황유미 씨 부친 황상기 씨, 산업재해보상보험 유족급여 신청

▲ 2007년 11월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규명과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반올림) 발족

2008년 4월

삼성 반도체 백혈병 피해자 4명, 집단 산업재해 신청

▲ 2008년 5월

노동부, 반도체 사업장 백혈병 발병과 화학물질 실태 조사

▲ 2009년 7월

백혈병 피해자 산업재해 심사청구 제기

▲ 2010년 1월

백혈병 피해자 5명, 서울행정법원 소송 제기

▲ 2010년 11월

백혈병 행정소송 첫 공개변론

▲ 2012년 11월

삼성전자, DS부문 김종중 사장 명의로 대화제의

▲ 2012년 12월

반올림, 김종중 사장 앞으로 대화수용 의사 밝히는 공문 발송

▲ 2013년 1월

반올림, 삼성전자 대화제의 공식 수용

▲ 2013년 12월

삼성전자-반올림, 첫 본협상으로 직접 협상 시작

▲ 2014년 2월

황유미 씨의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 ‘또 하나의 약속’ 개봉

▲ 2014년 5월

삼성전자, 사과 후 '제3 중재기구가 정하는 보상 기준 따른다 계획' 발표

▲ 2014년 12월

조정위원회 구성 및 1차 조정 시작

▲ 2015년 7월

조정권고안 발표, 조정 과정에서 합의 실패

▲ 2015년 9월

삼성전자, 1천억원 규모 기금 마련해 자체 보상 시작

▲ 2015년 10월

반올림, 삼성전자 자체 보상 거부하고 천막 농성 시작

▲ 2018년 7월

조정위원회, 2차 조정 재개 제안. 삼성전자·반올림, ‘무조건 수용’ 의사 각각 전달

▲ 2018년 11월

중재 판정 이행 합의 협약식 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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