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패스는 감기처럼 옮는 게 아니다

▲ 정의의 여신상./사진제공=연합뉴스

[뉴스워치] MBC 수목드라마 ‘이리와 안아줘’의 반향이 크다. 연쇄 살인마 아버지를 둔 남자와, 연쇄 살인마로부터 부모를 잃은 여자의 애절한 사랑이 주된 내용이다. 그 안에 선과 악에 대한 지속적인 시선 역시 호평이 잇따르며 시청률 반등의 요인이 됐다.

이 드라마의 첫회, 인상적 대사가 등장한다. 연쇄살인범의 아들로 경찰이 되고자 하는 남자는 경찰대를 수석졸업하고 면접관 앞에 선다. 거기서 정체가 밝혀지고 면접자들이 대기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은 남자는 “사이코패스 그런 건 감기처럼 옮는 게 아니다”면서 “아무리 제가 피해자 유가족에 말 뿐인 속죄밖엔 못하는 입장이지만…연좌제도 없어진 지 오래 아니냐”고 자신과 아버지를 따로 두고 생각해달라는 말을 한다. 그러나 이후에도 그와 아버지를 별개로 놓고 생각해주는 이들은 극히 드물다.

이러한 반응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대중은 범인의 가족에 대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과 함께 살았다면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를 우려한다. 범죄자의 유전자가 고스란히 옮겨간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도 한다. 평생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피해자 다음 순서로 꼽을 피해자가 가해자의 가족일 수도 있다. 가족끼리도 모르는 얼굴을 가질 때가 있다. 가족이라고 해서 구성원의 모든 면을 알 수는 없다. 범인의 가족이 범인의 이면에 가장 충격 받은 또 한명의 피해자일 수 있다.

전세계를 뜨악하게 했던 한 살인마의 엄마도 또 한 명의 피해자였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라는 책을 낸 수 클리볼드는 미국 총기난사사건의 가장 충격적 사건이라 불리는 콜럼바인 고등학교 가해자 두 명 중 한명인 딜런의 어머니다. 세상 사람 모두가 기억하는 딜런의 얼굴은 악마의 것이지만 수 클리볼드에게 그 얼굴은 자신이 사랑으로 키워낸 아들의 것이기도 했다.

수 클리볼드는 책을 통해 많은 이들을 죽인 가해자의 엄마가 느끼는 감정들을 그 어떤 소설이나 영화보다도 극적이고 절절하게 전한다.

인생의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했던 50대 초반의 여자가 인생을 통째로 들어내는 사건과 맞닥뜨리고 세상에 버티며 느끼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얼마나 걷잡을 수 없는 것인지, 생살을 드러내듯 적나라하게 서술돼 있다.

죽을 때까지 없어지지 않을 고통과 족쇄는 아들이 남긴 것이다. 그러나 수 클리볼드는 오히려 그렇기에 자신의 아들이 어릴 때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함께 한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했던 것인지 현실과 정반대의 추억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그렇게 2년이 지나서야 수 클리볼드는 아들의 고통과 마주한다. 경찰에서 뒤늦게 아들의 쪽지와 일기를 전해준 탓도 있었지만 세상의 비난에 두 발로 딛고 서 있기도 힘들었기에 아들의 고통은 뒤늦게야 살펴볼 여력이 생긴 것이기도 했다.

아들의 우울증을 몰랐던 어머니의 회한은 묵직한 울림을 전한다. 자신의 일상을 살아나가고 어머니를 위로하던 아들은 사실 온몸으로 자신의 위기를 말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남편의 건강, 집안의 재정문제에 신경 쓰느라 생전 처음 문제를 일으킨 아들이 “잘 해나가겠다”는 말을 믿고 넘긴다. 아들과 조금 멀어져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우선순위의 걱정은 아니었다.

아들은 학살자가 되기 전날까지도 성실하게 일상을 살아나가는 자식이었다. 그렇게 수 클리볼드는 실상은 하루를 겨우겨우 버텨내면서도 부모가 알지 못하게 자신을 감추는 아이들도 있다고 지적한다. 아들의 아픔, 행적을 되짚으며 수 클리볼드는 세상 모든 흉악범죄의 가해자 부모가 무조건 자식의 문제를 알고도 방치한 방관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세상의 선입견에 대한 변명은 아니다. 세상의 흉악범을 보며 자신마저 ‘어떻게 키웠길래’라는 생각을 했지만 정말로 부모가 아이의 전부를 알 수 없는 순간이 있다고, 그렇기에 아이의 작은 변화마저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한다. 가해자 부모로서 핑계가 아니라 아들의 사건을 계기로 뇌건강 분야 전문가로 거듭난 저자가 당부의 마음으로 쓴 책인 셈이다.

수 클리볼드는 책을 통해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고 변명을 하지는 않는다. 그저 가해자의 부모가 겪는 감정, 뒤늦은 후회에 대해 전하며 부디 세상의 모든 부모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당부한다. 주변인들에게 잘 자란 아들, 착한 아들로 평가받다 어느 순간 돌변해 학살자의 얼굴로 자살해버린 아들. 그에 대한 모든 책임을 떠안게 된 그는 아들이 죽었다는 것, 그것이 자살이었다는 것, 많은 이들의 삶을 빼앗았다는 진실을 한 번에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수 클리볼드 역시 한 아이의 엄마이기에 아들의 마음과 뇌가 아팠고 그렇기에 벌어진 일이라고 해명을 거듭한다. 자식을 감싸주고 싶은 그 마음은 어쩔 수 없이 튀어나오며 그의 아들 딜런과 함께 일을 벌인 에릭의 사이코패스적 면모를 강조할 때 더욱 잘 드러난다. 가해자의 부모로서 자신의 찢어진 심정을 드러내면서 쓴 책이지만 어쩔 수 없게도 에릭을 방패삼아 아들을 두둔하는 엄마의 마음이 드러난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결국 수 클리볼드는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학살자의 엄마라는 것이다. 수의 남편이었던 톰(결국 두 사람은 이혼했다)이 묘비명에 쓰겠다던 말이 가해자 가족의 아픔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제 끝이라니 감사합니다”

문서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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