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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에서 온 편지(17) 난민일기 #2. 쿠알라룸푸르의 기도티처 정 / 미얀마 기독교엔지오 Mecc 고문
▲ 친주 크리스찬들의 기도모임.

2007년 7월 4일. 인천공항에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가는 비행기 안에는 한 선교사 부부가 타고 있었습니다. 이 분은 한국에서 교회를 개척해 목회를 하다 해외 선교사로 떠난 지 7년만에 새로운 선교지로 떠나는 중입니다.

첫 선교지인 호주. 두번째 선교지인 중국. 이제 새로운 땅으로 가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호주에선 집없이 떠도는 홈리스 피플들과 마치 난민처럼 살았습니다. 중국에선 국제학교를 통해서 말씀을 전하며 학교를 운영했습니다. 이젠 뼈를 묻을 선교지로 가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와 산상 기도원에서 기도한지 6개월만에 응답을 받았습니다. 새로운 땅, 영어를 하는 나라로 가라는.

▲ 친주의 아이들이 나무를 실으러 가며...

그렇습니다. 말레이시아는 자기 나라말이 있지만 영어가 일상화된 나라입니다. 이렇게 하여 이 분의 난민을 위한 사역은 시작되었습니다. 가난하게 살아본 사람이 가난한 사람을 돌볼 줄 압니다. 난민처럼 살아봐야 난민을 세심하게 돌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분을 훈련하시고 단련시킨 후 난민교회와 난민학교를 맡기셨습니다.

처음 미얀마 난민들은 쿠알라룸푸르 인근 정글 속에서 숨어 지냈습니다. 당시 말레이시아 경찰은 난민들을 체포하면 1인당 50링기의 수당을 받았습니다. 그랬기에 난민들은 무서워서 깊은 정글속에서 희망없는 하루하루를 보내야만 했습니다. 선교사들이 몰래 가져다주는 쌀과 티셔츠와 의약품과 영양제에 의존하고 살았습니다. 열매와 풀을 먹고 살아야 했습니다.

영양실조로 쓰러지고 병드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난민들은 도시로 내려와 상가 꼭대기 옥탑방에 모여 살았습니다. 올라오는 계단은 나무나 쓰레기로 위장하고, 먹지도 입지도 않고 조그만 방에 빼곡하게 붙어 구조만을 기다리는 상황입니다.

경찰들은 난민 아이가 밖에 나왔다 들어가는 뒤를 밟아 위치를 확인한 후, 밤에 급습해 망치로 문을 부수고 고구마 줄기처럼 20명, 30명씩 엮어서 잡아 갔습니다. 처음에는 난민수용소로 보내고 추방도 했지만 나중에는 태국 인신매매 조직에게 파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태국의 에이전시(여기선 이렇게 부른다)들은 넘겨받은 난민의 친구나 가족들에게 돈을 가져오면 보내준다고 연락을 합니다. 경찰에게 풀려나려면 약 70만원, 태국 에지전시에서 풀려나려면 약 300만원을 내야 합니다.

▲ 친주의 아낙네들이 나무를 팔기위해 가고있다.

목숨을 걸고 들어온 난민들은 결코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붙잡힌 사람들을 구조하기 위한 돈이 없습니다. 돈을 가져가지 않으면 남자들은 피싱보트로 팔아버리고 여자들은 매춘조직에 넘기기도 합니다. 난민들은 필사적으로 돈을 거두거나 불법으로 일하는 동포들에게 돈을 빌려 이들을 구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선교사들도 턱없이 부족한 선교기금을 구조비용으로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2002년 유엔이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미얀마 난민들에게 난민으로 인정하는 유엔난민카드를 발급해 보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약 10만명이 난민카드를 받았고 난민카드를 받길 기다리며 불법체류하고 있는 난민이 약 20만명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중 친주에 살던 부족 5만명에게 난민카드가 나왔고 그중 1만 5천명 정도가 미국, 호주, 일본, 노르웨이, 뉴질랜드, 덴마크 등지로 이주했습니다. 미국으로 가장 많이 갔습니다. 유엔이 난민으로 인정하는 심사에는 10가지 항목이 있습니다. 종교적인 박해가 있었는지, 소수부족에 대한 인종차별이 있었는지, 정치적인 인권탄압이 있었는지, 강제적인 노역이 있었는지, 학교와 병원 등의 기초생활 지원에 대한 유린이 있었는지, 성적인 학대가 있었는지 등. 

▲ 쿠알라룸푸르 난민들이 집에 모여 구역예배 모임을 갖고있다.

2010년부터 말레이지아 당국은 난민을 붙잡아 국경으로 보내지 않고 수용소에 3달 내지 1년간 수용하고 있습니다. 정글 속에서, 상가 옥탑방에서,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난민 부모들에겐 딱 한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그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일입니다. 이 나라에 사는 건 불법이니 학교를 보낼 수 없습니다. 제대로 먹이질 못하다보니 어린이 영양제가 가장 필요합니다.

한국 선교사들과 중국계 교회도 나섰습니다. 이렇게 하여 쿠알라룸푸르에 난민학교와 난민교회가 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앞서 말한 이 분이 정글 속에서 최초로 시작한 난민학교도 도시로 내려왔습니다. 유엔이 인정하는 난민학교 Mecc(Myanmar Education Christian Center)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분이 바로 조수아 선교사입니다. 또한 Mecc를 세운 회장목사입니다. 그리고 6곳의 난민교회를 세웠습니다. 이제 쿠알라룸푸르에서 미얀마 난민들의 합심기도가 울려퍼지기 시작했습니다.

 

----티처 정 프로필-----

강원도 삼척시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일요신문 사회부장
경향신문 기획팀장
MBN 투자회사 엔터비즈 대표이사
현 희망마을 사회적 협동조합 고문
현 미얀마 고아와 난민을 위한 기독교엔지오 Mecc 고문으로 양곤에서 근무
e-mail: mpr8882@hanmail.net

뉴스워치  webmaster@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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