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 끝까지 완수 의지 밝혀…10월 EU에 시정 조치안 제출
EU 화물 분야 점유율 독과점 해소 방안 요구에 연매출 3조원 화물사업 매물설
EU 측에 당초 제시된 조건보다 더 많은 여객 슬롯 반납 방안 제출 등을 검토 중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 실패 시 심각한 후폭풍 예상…리더십 상처·경영권 흔들
항공업계, ‘제 살 깎아먹기式’ 무리한 합병 조건 전망…항공산업 국부 유출 우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사진=대한항공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사진=대한항공

[뉴스워치= 최양수 기자]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인수합병(M&A·Mergers & Acquisitions)을 위해 올인(All in)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항공업계에서는 조 회장이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면서 무리수를 투척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이고 있다.

항공업계에 따르면 조 회장은 지난 3년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인수합병을 위해 사력을 다했지만 유럽연합(EU), 미국, 일본 등 해외 경쟁당국의 승인 심사에서 난항을 겪으며 합병 일정에 차질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대한항공은 지난 2020년 11월부터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 계획을 발표하고 본격적으로 인수 작업에 돌입했다. 2021년 당시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한 뒤 바로 합병하지 않고 2년 정도 통합 준비 기간을 가진 뒤인 2024년에 합치기로 했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을 추진하면서 한국을 포함한 미국, EU, 중국, 일본, 터키, 대만, 태국, 베트남 등 14개국으로부터 기업결합심사를 필수적으로 신고해야 했다.

현재 EU, 미국, 일본의 승인만 남겨 놓은 상황이지만 EU와 미국이 양사 합병에 대해 부정적인 뜻을 나타내면서 기업결합에 대한 전망이 밝지만은 않아 합병 계획에 차질이 우려 되는 상황이다. 특히 현재 두 기업 간 통합은 EU의 몽니(음흉하고 심술궂게 욕심부리는 성질)로 심사 및 결정이 차일피일 연기되면서 진행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 신고를 심사하는 EU 집행위원회(EC)는 올해 2월 2단계 심사로 넘어간 뒤 3월과 6월 두 번에 걸쳐 심사기간을 연장했다. 지난 5월 대한항공에 합병 시 유럽 노선에서 승객·화물 운송 경쟁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를 담은 심사보고서(SO·Statement of Objections)를 통보한 바 있다. 지난 7월 23일에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과 관련된 조사를 일시 중단하고 8월 3일 예정된 합병 승인 여부 발표를 두 달간 연기했다.

결국 EU는 양사가 합병할 경우 한국~유럽 일부 노선의 여객과 화물 수송에서 가격 상승, 서비스 품질 하락 등의 독과점이 나타날 수 있다는 이유로 심사 진행을 미뤄왔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사진=대한항공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사진=대한항공

앞서 지난 6월 5일(현지시간) 조 회장은 미국 블룸버그TV 등 외신과의 인터뷰 통해 올 연말까지 기업결합은 성사될 것이고 무엇을 포기하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간의 합병을 꼭 성사시킬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에 100%를 걸었다며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대한항공은 합병 자금으로 1조원을 이미 투입했으며 2020년 12월부터 올해까지 국내·외 로펌과 자문사 비용으로만 1000억원이 넘는 금액을 쓴 만큼 아시아나항공과 합병을 성사시키기 위해 올인 전략을 펼 가능성이 제기된다.

조 회장이 추진 중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 성패는 곧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한항공은 오는 10월 중 EU 집행위원회 측에 최종 시정 조치안을 확정해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대한항공이 시정안을 제출하면 EU는 승인 여부 발표 시기를 공지하게 된다. 항공업계에서는 EU 경쟁당국의 심사 기한은 약 한 달가량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고려하면 오는 11월 전후로 EU의 결정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EU 측이 승인할 경우 미국과 일본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심사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아직 심사가 진행 중인 미국에서도 화물 부문 독점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미국 법무부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막기 위해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현지 보도가 나오는 등 부정적인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심사 결과를 내놓지 않은 미국과 일본이 EU의 심사 결과를 참고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돼 EU 심사 결과가 합병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 따르면 EU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 조 회장이 많은 부분에서 양보를 했을 것으로 예측된다. EU 측에서 심사 기한을 연장한 만큼 대한항공이 제출했던 첫 제시안보다 강도 높은 시정조치를 요구했을 가능성이 크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과의 합병을 위해 EU 측에 당초 제시했던 조건보다 더 많은 여객 슬롯(SLOT·특정 공항에 이착륙할 수 있도록 배정된 시간대)을 유럽 기반 항공사에 넘겨야 하는 조건을 담은 ‘여객 슬롯 조정안’이나 항공 화물의 시장 점유율을 낮추기 위해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 전체를 매각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항공업계 안팎에서도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과의 합병을 위한 EU 승인에 막바지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 대한항공이 제출할 시정안에는 유럽노선 슬롯 조정과 화물전용 항공사 확대 통한 독점적 점유율을 낮추는 방안이 포함됐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화물은 아시아나항공의 알짜 사업이었다. 아시아나항공의 지난해 화물 사업 매출은 3조원에 가깝다. 올해 반기 기준 화물 사업 실적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24%)은 국제여객(62%) 다음으로 높다. 대한항공은 영국·중국 등 각국 경쟁당국 심사에서 상당수의 슬롯을 반납한 데 이어 알짜 사업마저 포기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셈이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국내 항공업계는 EU 경쟁당국을 설득하기 위해 독과점 우려를 줄이는 조치를 담은 시정서에서 아시아나항공의 알짜 사업들을 대부분 매각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어 ‘차포’(車砲) 뗀 무리수 투척으로 인해 실속이 없고 실효성이 떨어지는 ‘쭉정이 합병’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한항공의 무리한 인수합병에는 조 회장의 경영권 방어와 관련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2020년 11월 한진칼 경영권 분쟁 시기에 조 회장은 산업은행이 투자한 10.58%의 지분으로 경영권 방어에 성공한 사례가 있다.

당시 산업은행은 지분 투자 대가로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대한항공에 제안했다. 대한항공을 계열사로 둔 한진칼의 경영권을 두고 당시 사모펀드 케이씨지아이(KCGI)-반도건설-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3자 연합)과 지분 경쟁을 하고 있었는데 산업은행이 아시아나항공 인수 지원을 위해 한진칼에 8000억원을 투자하며 강력한 우호 주주로 등장한 것이다. 3자 연합은 산업은행의 등장에 경영권 다툼에서 물러났다.

만약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지 못한다면 산업은행은 한진칼에 투자한 지분을 처분할 가능성이 있다. 한진칼 경영권 분쟁이 재발할 수도 있는 셈이다. 결국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이 실패로 돌아간다면 리더십의 상처뿐만 아니라 경영권까지 흔들리는 심각한 후폭풍 예상된다. 이를 막기 위해 조 회장이 인수합병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 진행이 교착 상태인 가운데 최근 3자 매각설, 한화그룹 구원투수 등판설 등 다양한 이슈들이 터지면서 회사 내부에서는 위기감이 증폭되는 모습이다. 해프닝으로 일단락됐지만 여진은 계속되는 분위기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현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EU 합병 승인을 위해 ‘제 살 깎아먹기식’의 무리한 합병 조건을 제시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며 “EU 화물 분야 점유율 독과점 해소 방안 요구에 한 해 연매출이 3조원에 이르는 화물사업 매물설이 흘러나오고 있으며 이는 국내 항공산업의 국부 유출로 보여진다”고 밝혔다.

이어 “국내 항공업계에서는 결국 아무런 이득과 실속이 없는 합병으로 가는 게 아닌지 의심이 된다”며 “오너의 경영권을 위해 무리하게 추진되는 합병이라면 국민경제 전반에 돌이킬 수 없는 악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고 지적했다.

최양수 기자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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