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오토리사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애니메이션 참조
그림 오토리사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애니메이션 참조


 [뉴스워치= 칼럼] 일본에는 불교의 사찰 외에도 일본의 신을 모시는 신사가 있습니다. 신사는 가미(かみ, 神)라고 불리는 일본의 신이 사는 장소라는 의미로 일본어로 진자(じんじゃ、神社)라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일제 강점기 일본의 황국신민이 되라며 신사참배(神社参拝)를 강요하고, 침략전쟁의 전범 유해를 합사한 야수쿠니신사(靖国神社)에 일본 정치인의 참배 등으로 한국인에게 신사는 그저 이웃 나라의 종교시설로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풍요, 사랑, 공부, 안전 등 인간의 길흉화복을 주관하는 각기 다른 신들을 모시는 신사는 일본문화, 문학,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곳이죠.

특히, 한국에서도 아주 많은 팬을 가지고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도 어김없이 신사는 등장합니다. 우리의 어린 시절을 표상하는 따뜻하고 가슴 시린 풍경들로 가득한 「토나리노 토토로(となりのトトロ, 이웃집 토토로)」의 주인공, 숲의 주인(森の主)인 토토로(トトロ)가 사는 곳도 이나리 신사(稲荷神社)라는 곳입니다. 기억하실지 모르지만 갑작스럽게 비가 내리자 버스 정류장으로 아버지를 마중 나간 언니 사츠키(サツキ)가 잠든 여동생 메이(メイ)를 엎고 아버지를 기다리다가 우산을 든 토토로를 만난 것도 이나리 신사 앞(稲荷前)이라는 정류장입니다. 

한자 벼 도(稲) 자를 쓰는 이나리(稲荷)신은 곡물, 농경을 주관하는 가미로 토토로는 이나리신의 화신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이나리신을 모시는 이나리 신사는 거의 동네마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친근한 신사입니다. 영화에서는 등장하지 않지만, 이나리 신사를 지키는 것은 여우, 기츠네(狐,きつね)입니다. 그런데 곡물의 신, 이나리신을 지키는 여우는 튀김 두부를 좋아한다고 알려져서 일본인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두부를 기름에 튀긴 유부를 이나리 신사에 받쳤습니다.

유부는 기름을 의미하는 아부라(油,あぶら)에 튀긴다는 의미의 아게루(揚げる,あげる)를 합쳐 아부라게(油らげ), 혹은 아부라아게(あぶらあげ)라고 하는데 유부초밥은 아부라게(油らげ)스시가 아니라 이나리스시(稲荷寿司,いなりすし)라고 합니다. 그리고 유부가 들어간 우동을 여우가 좋아하는 유부를 넣은 우동이니까 여우 우동, 즉 기츠네우동(きつねうどん)이라고 합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千と千尋の神隠し)」에서는 신사의 모습은 등장하지 않지만, 신사로 들어가는 문을 상징하는 도리이(鳥居,とりい)는 여러 차례 등장하죠. 도리이는 “자 드디어 신의 세계로 들어갑니다”라고 알려주는 문, 다시 말하면 인간 세계와 신의 세계를 이어주는 켓카이(けっかい, 結界, Siimaabandha)의 표식인 셈이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미야자키 영화 중 일본의 가미가 가장 많이 나오는 영화일 겁니다. 가미는 아니지만 거의 일본인들이 가미로 인식하는 오지죠사마(おじぞうさま, お地蔵様)는 여러 장면에서 등장합니다. 치히로의 가족이 터널로 들어갈 때 입구에는 빙그레 웃는 오지죠사마가 있었고, 터널 너머 원래 테마파크였다고 하는 들판에도 이끼를 가득 낀 여러 개의 오지죠사마가 등장했습니다. 이 신은 원래 불교에서 대지의 신으로 불리는 자비심이 많은 지장보살(地蔵菩薩)인데, 일본인들은 친숙함을 담아 지장의 일본식 발음이 지죠(地蔵)에 존경의 오(お)를 붙이고, 님을 의미하는 사마(さま,様)를 붙여 오지죠사마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지금도 일본의 골목골목마다 친숙하게 볼 수 있는 오지죠사마는 그 지역을 역병과 불운, 재난 등에서 막아주는 신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특히 이 신은 아이가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아이들을 지켜주는 가미라고 하여 아주 작고 귀여운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빨간 배냇저고리를 입고 있기도 합니다. 「토나리노 토토로(となりのトトロ)」에게서도 길을 잃은 메이를 언니 사츠키가 찾은 곳도 지죠사마가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아이들의 신인 오지죠사마가 숲의 주인인 토토로가 올 때까지 메이를 지켜주고 있었던 거죠.

그 외에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千と千尋の神隠し)」에는 무의 모습을 한 오시라사마(おしら様), 오물 신인 오쿠사레사마(オクサレ様), 인형의 신인 카스가사마(春日様,かすがさま) 등 다양한 신이 등장하지만, 그중에서도 오오토리사마(オオトリ様)라는 신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영화에서는 엄청 귀여운 병아리 모습으로 묘사되었지만, 사실은 부화도 하기 전에 죽는 달걀, 닭으로 성장하기 전에 잡혀 먹인 병아리나 어린 닭이 죽어서 된 신입니다.

근대이전까지 일본은 두 발 달린 짐승을 먹는 것을 금했기 때문에 닭요리가 발달했습니다. 닭을 너무 많이 잡아먹은 것이 못내 미안해서 이렇게라도 닭을 추모하며 만든 신이라고 하는데, 그런 마음을 2차 세계 대전으로 무고하게 희생된 사람들에게도 갖기를 바라봅니다. 병아리에게도 갖는 측은지심을 소녀상에도 갖게 되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피지도 못하고 봄비에 길바닥으로 가득 떨어져 버린 벚꽃잎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최유경 교수
최유경 교수

◇  이화여자대학 졸업

◇오사카부립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 서울대, 성균관대 등 다수대학에서 강의

◇ 서울대인문학연구원, 명지대 연구교수, 학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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