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오피니언 외부칼럼 핫뉴스
미얀마에서 온 편지(2) 깔로의 여인 미밍티처 정 / 미얀마 기독교엔지오 Mecc 고문
▲ 깔로 깊은 산속에 있는 부족마을

뉴욕에서 잘나가는 저명한 한 변호사가 가족에게 아무런 설명없이 갑자기 행방불명됩니다. 어느날 그의 딸이 아빠의 짐속에서 의문의 편지를 발견하고 그 편지의 주소인 미얀마 깔로로 향합니다.
 
소설 The art of hearing heartbbeats(심장박동을 듣는 기술)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러브스토리치고는 좀 특이한 소설제목인데요. 독일 슈테른지 미얀마 특파원을 지낸 독일인이 작가라 독일인다운 제목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소설을 읽다보면 그 제목이 충분히 이해는 되지만 그래도 저라면 소설무대인 지명 깔로, 또는 여주인공 미밍(Miming)이라는 제목을달았을 겁니다. 이 소설은 미얀마를 무대로 했다는 것도 돋보이지만 미얀마 여인의 모습을 잘 그려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다림에 익숙한 삶, 아주 강한 가족애 등.

여주인공 미밍은 사랑하는 한 남자를 50년간 기다립니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두사람의 순수한 유년의 사랑. 심장의 박동소리마저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처럼 들을 수 있던 그런 시절이 우리 누구나에게도 한번쯤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이 소설은 읽는 사람들의 입으로 전해져 전세계 베스트셀러가 되었지요.
 
전 지금 이 소설의 무대 깔로(Kalaw)에 있습니다. 미얀마 중부지방의 산골마을입니다.

한국서 얼마전 번역된 이 소설을 가져와 여기서 읽으니 느낌이 남다릅니다. 반바지에 헐렁한 배낭을 메고 양곤에서 고속버스로 10시간 달려왔습니다. 유럽사람들이 즐겨찾는 깔로 트레킹을 답사해서 그 자료를 한국으로 보내야 합니다 깔로는 해발 1320미터라서 선선한 지역입니다. 영국 식민지 시절 영국인들의 휴양지로 알려진 이곳. 한마디로 황토빛으로 채색된 마을입니다. 트레킹 코스는 깔로 ㅡ 인레호수 ㅡ 낭쉐로 이어집니다. 가도가도 끝없는 황토빛 길, 그 길이 끝나는 곳에 넓디넓은 인레호수가 펼쳐집니다.
 
혼자 이 길고 가느다란 황토빛 숲길을 걸어갑니다.
살다보면 우리는 가고싶지 않은 길도 있지만 ‘가지 않은 길’(Not taken road 프루스트의 시 제목)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길은 여러 갈래가 있습니다. 삶의 갖가지 짐이 많은 사람은 결코 떠날 수 없는 ‘가지 않는 길’이 얼마나 많을까요?
 
깔로에서 7불짜리 레일로드호텔(Railroad hotel)에 짐을 풉니다. 저렴하지만 목조의 깔끔한 숙소입니다. 주인 부부가 친절하게 운영하는 여긴 유럽 젊은이들이 넘쳐납니다. 오늘 체크인한 방명록을 보니 네덜란드, 영국, 독일, 멀리 칠레에서도 왔네요. 한국 젊은이들은 보기 힘들다고 합니다.
 
남부인 양곤에서 중부지방 깔로까지 오려면 저녁에 고속버스를 타고 새벽에 내리게 됩니다. 미얀마는 동남아에선 가장 넓은 나라인지라 고속버스가 오후에 떠나 새벽에 도착하도록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통 8시간에서 12시간 걸리는 도시가 많습니다. 모두 고속버스 안에서 하룻밤을 잡니다. 정차하는 곳도 없이. 그래서 처음 여행할 때 화장실 가는 거 어떡하나 참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참 간단하더군요. 깊은 밤 기사에게 차를 세워달라고 하면 고속도로변에 세워줍니다. 그때 용변이 필요한 사람들이 같이 내립니다. 여긴 남자들도 론지(전통치마)를 입으니까 모두 간단히 앉아서...

긴 이동시간 속에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이 나라 사람들을 보며 저도 어느 날 결심을 했습니다. 시간과 속도를 아예 내려놓자, 현지인처럼 살고자 한다면 시간과 속도를 아예 버리자. 또하나의 사랑할 나라니까요. 제 안에는 너무나 빠른 '한국의 시간과 속도'가 살아 있었습니다.
 
깔로의 재래시장에는 소설 속에 묘사된 것처럼 갖가지 채소, 열대과일, 공예품, 손으로 말아만든 잎담배들을 팝니다. 깔로의 여인 미밍이 잎담배를 말며 기다리던 그 기나긴 시간과, 뉴욕 맨해튼에서 성공의 속도 속에 산 한 남자가 죽을 때야 서로 만난 깔로.

깔로는 오늘도 고즈넉하기만 합니다.

 

----정선교 프로필-----

강원도 삼척시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일요신문 사회부장
경향신문 기획팀장
MBN 투자회사 엔터비즈 대표이사
현 희망마을 사회적 협동조합 고문
현 미얀마 고아와 난민을 위한 기독교엔지오 Mecc 고문으로 양곤에서 근무
e-mail: mpr8882@hanmail.net

뉴스워치  webmaster@newswatch.kr

<저작권자 © 뉴스워치,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뉴스워치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